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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꿈꾸는 자의 내일

이성주 |2006.08.26 21:34
조회 33 |추천 1

사실 인간이 언제부터 '오늘의 생존'을 지나쳐, '내일의 실현'을 꿈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리 오래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인 생활수준이 확립된 이후에도 모든 인간 가운데서, 당장 현실에 추격당하는 이들이 꿈을 꾸는 이들보다 많았으니까. 그것은 인간의 두 눈은 한곳만을 바라보기에, 내일을 보는 것과 함께 현실은 곧잘 외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현실을 등한시 하는게 어리석은 행동과 연관되니까.

 

시대는 바뀌었다. 그것도 짧은 시간동안 가장 큰 폭으로.

아버지 세대가 만든 세상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평등하고, 삶의 질은 놀라울 만큼 향상되었으니까 말이다. 신분제도와 같은 '꿈꾸는 것을 비웃는 법'은 아버지들의 피와, 어머니들의 눈물로 무너졌다. 아직 확률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평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000의 1. 또는 100000000의 1의 가능성이라도,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기회가 있기에 우리 세대의 많은 친구들은 꿈을 꾸곤 한다. 정점에 이르는 거창한 꿈이 아니라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나의 희망으로 스스로 옮겨가는 것, 그것을 우리 세대는 꿈이라고 말한다.

 

꿈은 앞으로 저만치에 점을 찍어두고 그것을 쫓게하는 희망이자, 자양분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끔 절망이나 슬픔 따위의 부정적인 것들로 변질되기도 한다.

다행히 보통의 경우에는 꿈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노력이 되곤 한다. 그래서 환경적 요인으로 절망에 불시착하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 스스로 책임을 지고 또다른 내일을 맞게 된다. 만일 아버지 세대처럼 시대가 앞을 막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꿈을 꾸는 자들은 그저 미친놈들일 뿐이지 않을까.

 

20살이 되면서 내가 주위의 많은 친구들에게 발견하는 것은, 꿈보다 약한 의지다.

꿈을 바라보면서 그 눈부심에 잠시 주춤한 것을 스스로 절망이라 오인한다면, 그 의지로 계속 걸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꿈을 가진 자의 내일은 의지를 가진 자의 내일이잖아.

 

우리 세대의 모든 꿈꾸는 친구들. 그리고 아직 꿈을 꾸고있는 아버지 세대의 몽상가들.

꿈은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미 꿈을 지닌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과 다르게 가진 의무는, 정점의 서는 것이 아니다. 단지 꿈을 향해 계속 걸어나가는 의지의 발현이다.

 

꿈꾸는 자의 내일은, 오늘보다 그곳에 스스로의 의지만큼 한걸음 나아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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