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패닉상태에 빠지다…
한나라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전시작통권 문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로 비판으로 일관하다 주적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꼴이 가관도 아니다. 게다가 전쟁중임도 지도부나 최전방이나 일사분란한 대오를 갖추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파열음만 만들어내고 있다.
그 극한 상황을 정확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2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자리였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윤광웅 국방장관에 보낸 서신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작통권 환수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한나라당 전체 의원 명의의 '결의안'도 채택할 예정이었다.
정국 최대 현안에 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회의였던만치 토론 자체는 매우 진지했지만 한나라당의 정치적 스팩트럼이 지나치게 넓어 서로 같이 할 수 있는 공유점이 없음을 보여준 면도 없지 않았고, 사전준비가 부족했는지 전술적인 대응방안에서조차 사사건건 대립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지도부가 상정한 ‘전시 작전통제권 논의 중단 촉구 결의안’을 두고 당내 혼란상이 재연됐다. 먼저 결의안에 포함된 ‘중단’이란 어휘가 불씨가 됐다. 이명규 의원은 "작통권 논의 '중단'이라는 표현은 한나라당이 작통권 환수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져, '사대주의적'이라는 비난을 살 수 있는 만큼 중단이 아니라 '연기'라는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고, 박계동 의원도 “당이 부분적 대응을 하기보다는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정세에 대해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응이 감정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가세했다.
그러자 송영선 의원은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한다. '작통권 환수를 적당한 시기에 논의한다'는 인상을 주면,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등 여권의) 아류에 불과하다. 철저하게 중단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미국을 붙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고, 김용갑 의원은 “송의원은 애국자다, 애국자”라고 거들었다.
박진 의원도 “한·미 간에 손뼉이 맞는 와중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은 잘못된 패배주의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미국에 할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박진 의원의 주장에 대해 다시 박계동 의원은 "'미국이 잘못하고 있으니 교정을 하겠다'는 자세는 미국으로 하여금 오히려 우리를 과소평가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미국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논의는 점차 본류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단과 연기라는 용어 문제로 파생된 갈등은 작통권 환수 저지를 위해 미국을 직접 설득하자는 주장을 거친 뒤, 다시 방향을 틀어 선거 정국으로까지 외연을 확대해간다. 홍준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작통권 환수 추진은 한나라당을 '외세파'로 몰아 내년 대선을 '자주파 대 외세파'의 구도로 끌고 가려는 것인데, 한나라당이 '보수ㆍ수구 꼴통'이라는 질곡을 우려해 작통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수권정당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당운을 걸다시피 한 중요한 사안이라면서도 이끌어가는 집행부나 따르는 의원들이나 도대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뜨뜻미지근한 자세로 일관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작통권 환수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뒤, 국회 본청 계단 앞에 의원들을 모아 놓고 이를 낭독할 계획이었지만 안건 의결에 필요한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결의안 채택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의원들이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의총이 당초 예정보다 늦게 시작된 데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오찬 약속이 있는지 자리를 뜨는 의원들이 늘어나 회의장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졌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오늘 결의문을 채택해 '세레모니'를 하려 했는데 숫자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다음에 의원들이 많이 모였을 때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행사를 하도록 하겠다"며 '의총 종료'를 선언했고 아무 결론도 없이 회의가 종료되자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에 찬 고성들이 터져 나왔다.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 나간 뒤 박종근 의원이 김 원내대표에게 한 말이 한나라당의 오늘을 말해준다 "세레모니는 세레모니고, 여기서 결의가 돼야지. 당을 이렇게 되는대로 끌어가면 되나…"
이렇게 이날 한나라당 의총은 당운을 걸고 대정부 투쟁과 대국민호소에 나선다는 결의를 무색케하는 코메디로 끝남으로써 수권정당으로서 한나라당의 능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날 의총에서 나온 주장이 한나라당의 모든 의견이 아니라는데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2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마치 친북세력이 정부에 있고 그들이 작통권 환수로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건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 현 정부의 외교·대미 정책을 책임지는 몇몇 젊은 진보 교수가 말해온 ‘작통권 환수를 통해 국방주권을 갖춰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꿔야 북한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의 흔적이 (작통권 환수 주장의)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고 밝혔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미국의 (작통권 이양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다”고 말했으며, 전날 강재섭 대표도 “한나라당은 (작통권을 가져오려는) 한국과 (이양하려는) 미국을 동시에 말려야 할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 대해 고진화 의원은 평소 “우리 당의 주장에는 ‘전시 작전통제권을 가져오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동맹 약화와 안보 공백을 초래할 것이다’ 같은 전제가 있는데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등 열린당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한나라당이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 변화를 읽고 있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다. 안보문제를 정치쟁점화함으로써 용산기지 이전 협상 때처럼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미 협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 문제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내부에서도 ‘논의 중단’과 ‘논의 연기’ 등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색깔론’을 연상시키는 발언과 ‘대미 비판’이 잇따르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주요 한나라당 관계자의 발언을 요약해보자면 “노 정권이 작통권 문제를 자주니 주권회복으로 포장하여 선동해왔으며, 그 배후에는 친묵세력의 대북관게 개선 수단화 의지가 숨어 있음에도, 이를 갑작스레 수용하겠다는 미국측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반대론을 펴고 있는 한나라당이 결국 미국을 ‘원망’하고 나서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반대논거도 수차 바뀌고 있는데, 초기에는 ‘안보불안론’과 ‘한미동맹약화론’이 가장 중요한 논거였다. “미국이 작통권 조기이양을 제기하는 것은 한·미관계가 삐그덕거리고 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주한미군도 철수하게 되고 한·미동맹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작통권을 환수하지 말자는 것이냐”는 여론이 일자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시기상조론과 주권무관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종국에는 작통권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맞으나 안보불안 해소 등 준비시간이 필요하며 미국과 충분히 협의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것과 “작통권 문제는 주권이 아닌 국익의 문제”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자주장사론’과 ‘국방비증액론’이 등장했다. 강재섭 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자주’ ‘주권회복’ 등 국민 감성에 호소해 작통권을 정부·여당의 선동도구로 삼아 정권 재창출을 시도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선시나리오론’까지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미국이 작통권을 한국에 이양하더라도 한·미동맹은 견고하고 한반도 안보불안 요인이 없다고 천명하자 아예 작통권 논의 중단론을 폈다. 강재섭 대표는 이를 위해 영수회담을 제의했으나 거부당하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작통권 이양을 하지 말도록 하자는 ‘대미읍소론’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미국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기본적으로 친미주의 내지는 숭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보수우익정당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당내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통권 ‘환수’ 대신에 ‘단독행사’라는 표현을 택하기도 했는데, 환수라는 단어가 자주권을 회복한다는 식의 정치적 수사로 들리고 미국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얼마 전 한나라당이 개최하는 작통권 환수반대 토론회에서 한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나라당이 ‘작통권 덫’에라도 걸린 듯한 모습이다.
이날 의총이 보여주듯 한나라당은 지금 제 앞가림도 못한 채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거대 공룡처럼 비춰지고 있다. 이런 비참한 결과는 한나라당이 겉으로는 작통권에 모든 것을 걸고 대정부 투쟁과 국민여론에 호소하는 것 같지만 내부의 통일된 역사의식이나 사상적 응집력도 없고, 지도력마저 부재한 상태에서 그저 정부 실정에 반사이익만 누리는 현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철저한 내부토론과 대응전략을 통해 내부 응집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 계파별로, 또는 개인의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보니 지난달 작통권 환수 논란이 불거진 이래 한나라당의 반대 논리는 백가쟁명식으로 변해오고 있다. 안보불안론에서 시작해 한·미동맹 약화론, 주권무관론, ‘자주 장사론’이 나오더니 급기야는 ‘대선시나리오론’고 공성진 의원의 ‘색깔론’까지 불거졌다. 그때마다 헷갈리는 반대논리로 생산적 논의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지경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직면한 혼돈의 근인(根因)은 작통권 환수 문제를 내년 대선과 연계한 ‘대여 투쟁적 시각’에서 접근한 데서 찾아진다. 이 때문에 경제적 부담 최소화 및 대북 억지력 약화 방지 방안,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안 모색 등 제1야당다운 생산적 논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조기 환수 반대’를 주장하며 갈등만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계류중이던 법률안을 일괄 상정하여 통과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전략은 사학법 등과 연계시켜 협상카드로 쓰겠다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러한 내분에 가까운 행태는 당나라 군대식 행태여서 정치 코메디로 보도된 것이다. 작통권 문제 뿐만 아니라 각종 현안에 대해 무엇 하나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웰빙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하겠다. 열린당과 노무현의 급진적이고 혁명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민생은 외면한 채 자기들의 사욕만 채우는 국정운영이 싫어서 한나라당을 뜬금없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이야말로 만고역적이 아닐까 생각하니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