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꿈을 많이 꾸는 듯하다. 예전에는 꿈을 꿔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가끔 몇 몇장면의 꿈들이 영화 스크린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인생의 압박강도에 따라 꿈도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한다면 지금의 내가 그런 압박을 받고 있는 반증이기도 하겠지. 결코 즐겁게만 받아 들을 수 없는 것 같다. 근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지금 함께 공부하는 친구 녀석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인들간에는 텔레파시라던지 사랑의 감정이라고 좋아 하겠지만 썩 좋아할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너무 나태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 쇠는 안쓰면 녹슬고 고여 있는 물은 썩어버리며 게으름은 정신의 활력을 앗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게을러진 나의 모습을 오늘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설날의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당췌 평균적인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렇게 늦게 잠이 드니 꿈 또한 뒤숭생숭한 거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평소보다 늦게( 대략 2시간에서 3시간 사이) 일어났다. 늦게 일어 난 만큼 당연히 오늘의 할애된 시간도 줄어둘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줄어둔 시간의 꽁무니를 쫏아 나의 몸도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무언가의 틀에 맞혀 질려면 그 만큼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싫던 좋던간에 말이지. 오늘도 그만한
댓가를 지불했다고 본다. 나의 육신의 피로 사이로 말이다.
항상 전철은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 도서관을 소사역에 위치해 있는 '시립 도서관' 으로 바꾸고 난 뒤 이동수단으로 전철을 이용하는데 이 안에서 나는 인생을 간접적으로 배운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곳에는 '인간이 산다.' 이동하는 거리만큼의 시간과 함께 말이다. 어김없이 그 곳으로 찾아 드는 불나방같은 존재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우리들을 불구덩이 속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며' 라고 시작하는 선교사들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입에 달고 이 전동칸에서 저 전동칸으로 옮겨 다니며 중생들을 현혹하고 전철 세일즈맨의 등장과 함께 좌중을 한번에 휘어잡는 현란한 입놀림에 내 옆자석에 있던 한 젊은 커플중에 그는 '나는 저런 사람들의 물건을 절대 사지 않아 왜인지 알어? ' 라며 그녀에게 귓속말로 수근댔다.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기에 그가 한 말을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핵심은 이 것이었다. 얼마전에 자기가 음이온 팔찌를 하나 구입했다는 것인데 그 음이온 팔찌는 유명 회사에 납품하는 하도급업체의 제품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명회사의 음이온 팔찌를 원가에 판매하는 것이라고 홍보했고 때마침 자신도 그 제품에 관심이 있어서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입하고 얼마후에 색이 바랬다는 것이다. 어떻게 음이온 팔찌가 색이 바랜다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뉴스에는 시중의 90%이상의 제품이 가짜라는 보도를 했었다. 그런데 한참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음이온은 어떤 광물(게르마늄과 같은)에 전기분해를 했을 떄 얻어지는 전극이라는 걸로 알고 있다. 다시말해 그는 음이온을 그냥 은에서 나오는 무슨 전파정도로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은이 어떻게 바랠 수 있느냐고 말했던거 같다.사실 은이나 금도 상황에 따라 색깔이 변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같은 상황을 몰랐던 며 칠 사이엔 음이온이 나의 몸을 치유해준다는 믿음으로 행복해 했을거 아닌가? 이럴땐 모르는 것이 때론 약이 될수도 있다.
아무튼 그의 생각이 그러해서 구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일리는 있을 것도 같다. 어차피 선택이라함은 필요에 위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다반사가 아니던가. 아차 그 분을 빠트리면 안되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노년의 할아버지 말이다. 나의 위치에서 보면 반대편 출입구쪽 좌석에 앉아 계셨는데 수염은 영화 '더 록'에 나오는 '숀코네리'와 흡사했고 그 멋드러진 수염에 어울리는 선글라스와 중절모를 착용했는데 그와 대조적인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자태로 보아선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복장에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 ( 약간 해지고 낡은 듯한 이름없는)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처음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해서 그런 운동화가 오히려 더 멋드러지게 꾸며주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왜 이 분을 잊지 못하는가 하면 그 분의 창에 있다. 일반인들은 알아 들을 수 없는 그 분만의 창인 듯했다. 솔직히 나도 창에 대해선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유명한 창들은 대충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르더라도 창을 들으면 대충 어떤 창의 한 대목이구나 정도는 환경적으로 알 수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구사하는 창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흡사 한편의 전위예술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걔중에 어떤이 (대부분이 그분의 나이대와 맞아 떨어지는 노년층)는 '얼씨구' '절씨구' 와 같은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구기고 했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한 창이 끝나고 난 뒤 난 그 분의 창을 들을 수가 있었다.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 창은 소위 요즘세대가 즐겨 부르는 랩과 같이 인생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너인가? 너가 나인가? 우리는 우리인가?' 라는 대목이라던지 '한 많은 인생지사 한만 품고 가다보면 남는 것은 푸념뿐이네' 라는 대목에서는 나의 예상이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그 외에 많은 대목들이 있었지만 나의 기억력의 한계로 이것밖에 얻지 못했다. 참으로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메모지라도 있었다면 기록이라도 했을텐데. 하여간 세대간에는 어쩔 수 없는 숨은 장벽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동한 거리만큼의 시간의 차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항상 도원역에서 하차해 그 어두컴컴한 길을 나혼자 걸어 내려온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도원 야구장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던 야구장 매표소 앞을 항상 지나오는데 수북히 쌓인 먼지가 그 곳의 상태를 말해주는 듯 했다. 그 많던 노점상들의 점포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그래도 역사가 묻어 있는 곳인데 이렇게 방치해두다니 필요가 상실되면 선택또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인지? 바람은 아무말 없이 거센 한 숨을 몰아쉬며 어지런운 세상을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