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
요즘 내 삶, 그리고 내 나이 또래 모두의 최고의 화두.
그것이 무엇이 문제이고 또 나의 삶에 행동에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인식하고 있는 나도,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도 적확히 어떠하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다.
한창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된장녀의 하루는 어쩌면 이시대 모두의 생활사.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그에 대해 어떻고 어떻고 하는 식의 식상한 입장이나 서로에 대한 험담 아슬아슬한 대안들을 내놓지만 결국 그것은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꼬집에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해야 하는 삶의 방향의 문제이다.
적어도 나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의 생각은 그랬다.
된장녀로는 살지 않기로.
체 게바라의 말처럼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고 20대에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는자 없다는 칼 포퍼의 말처럼 무언가 현실에 한 발짝 다가선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그 때에도, 되돌아 보고있는 지금도 얼토당토 않은 얼치기 생각이긴 하지만 나의 환경이나 다른 욕구들과는 달리 적어도 이것은 꽤나 나에겐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시험기간에도 빠짐없이 옷장앞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앞도 잘 안보이는 렌즈를 학교에 끼고 가는 나는, 커피전문점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시켜놓곤 몇시간이고 앉아서 수다를 떠는 나는, 가끔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러야 하는 나는, 본의 아니게 전공서적 또는 되도 않는 서양 미술사나 미학오디세이 같은 책들을 끼고 다니는 나는 어쩔수 없이 그대들에게는 된장녀 일 수 밖에 없다. 치졸하게 '그건 최소한의 자기관리에요'라고 변명해 왔지만 스스로에게 묻자. 그것들이 정말 최소한 이었니?라고. 그리고 나는 더이상 변명할 것이 없다. 적어도 내가 환멸을 느낀 그 생활들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고 아직 익숙해지진 않았다면 막연한 동경쯤은 가졌을 테니까.
된장녀의 생활은 사치스럽지만 일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많은 것들이 내재해 있다. 그건 어쩌면 영원히 혼자인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친구들과 전연 다른 시간표, 수강신청이 잘못되 늘어버린 공강시간, 그야말로 주변인 일수 밖에 없는 대학생의 삶. 커피전문점에서 혼자 영자신문이나 치크릿 소설을 할짝댈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외로움. 핸드폰은 그걸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된장녀에게 돌만을 던지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것은 한번 쯤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얼마전 강연에서 한 아나운서가 그렇게 말했다. 선배에게 빌붙으니까 된장녀지 떳떳하게 자신이 번 돈으로 커피 사 마시고 레스토랑 가는거라면 그건 커리어 우먼인거라고. 일부 동의는 하지만 일부는 동의 할 수 없기도 하다. 이건 그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당연한거라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가장 무책임한 말과 같은 류의 주장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적어도 다르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된장녀라는 것이다.
물론 이 개념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충분히 필요하다. 엄연히 비 인격적이고 성 차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러한 대학생의 생활을 '된장녀'라고 명명한다면, 그래 일면 동의 한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면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고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갈만한 일들에 가슴 뛰어해야 하지 않겠는가.
강연회에 참여하겠다 최대한 많이, 그것들을 접하고 공부하고 알아가며 그들을 위해서 다달이 용돈이 아닌 내 지위를 적절히 이용해 번 돈으로 그들을 돕겠다. 내가 그들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도움정도는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갑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날엔 나에게 손벌리는 굽은 등의 사람들에게 조금 나누는 정겨움도 홀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시대에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된장녀로 살아야 한다면 나의 양심만은 깨끗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