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좋아하는브랜드에 형이 쓴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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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삼성전자 면접에서 떨어진 그날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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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지만 군대이야기.
아마도 밤이면 영하 20도 정도쯤으로 내려갔던 99년 겨울 이었을
것이다.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내무실에 내려왔는데
내무실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고
고참들과 후임들이 씨발씨발을 입에 달고 있었다.
뭔일인지 몰랐고, 당시 상병 선임쯤이었던지라
조용히 다른 상병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당직사관 꼴통 색기가
영하 20도의 밖에다 빤쓰 바람에 집합시켜놓고
잘때 쓰레빠 줄이 안맞았다고 존내 갈궜다는것이다.
내무실에 불이 꺼져있는데도 쓰레빠 줄이 맞춰져 있길
바랬던 그 꼴통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뭐 그날 마누리랑
싸웠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나 그날 밤 어느 고참 색기가 그 일이 존내 가슴에
사묻혔는지 그 당직사관을 상급부대에 소원수리를 찔러 버렸다.
원래 군대라는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것이 누가 하나 죽어나가지 않는한 조용히 대대급에서
마무리 하는것이 전통이고 설사 부대원중 하나가
탈영을 하더라도 대대급에서 사람들을 수소문해
그색기를 찾아내고 적당히 죄명을 붙여서 영창에 보내는것이
정상이라면 정상인것이다. 그것은 중대장, 아니 대대장의
인사에도 크게 관계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벌에 관한한 왠만하면 대대급예하에서 처리하는것이
보통이라는것이다.
그런데 그 병장색기가 찌른곳은 다름아닌 국방부였음이
문제가 되었다.
대대도 아니고 여단도 아니고 공군본부도 아니고 국방부라니
그색기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국방부 소원수리게시판에
조용히 찔러버렸고 이것은 이틀후 국방부에서 공군으로
공군에서 방공포사령부로 사령부에서 여단으로
여단에서 대대로 대대에서 포대로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부대원70명 짜리 좃만한 부대에서
지난겨울에는 미사일을 인천한복판에 쏴버리더니
올해는 가혹행위 발생 부대라는 어줍잖은 죄목으로
공군 전체의 망신을 주게 된것이다.
당연히 포대장은 씨발 좃됐구나라고 한것이고
아니나 다를까 가뜩이나 주요 사고부대로 찍혔던 탓에
중령이었던 대대장은 여단본부까지 끌려가 헌병단장한테
존내 갈굼당하고 그날로 우리 포대까지 찾아온것이다.
평소에도 가끔 포대에 방문하면 목아지가 터지도록
경례를 때렸던 그색기이고 그렇게 하지않으면
바로 군기 교육대였던지라 왠만하면 피했던 인물이었었다.
사실 그 다음날 여단에서 집단 조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대대장은 분을 참지 못하고 그 늦은 시간에
직접 여주에서 인천까지 차를 몰고 우리를 갈구러
올라온것이다.
밤 11시쯤 식당에 부대원 전부를 집합 시켜놓고
"이런 씨발색기들, 너희가 사람색기냐.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하면 대대장이 그런거쯤 들어주지
못할 개색기더냐. 이 모래알 같은 색기들아.
그러니까 미사일날리고 병신 부대 소리듣는거지
이 씨발색기들아"
이런식으로 욕을 미친듯이 해대는것이다.
차피 다음날 여단헌병대에서 조사를 해야하는 관계로
앞으로 대대장의 진급에는 많은 에로사항이 꽃피는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으나.
" 내일 부터 대대장 명령이 있을때까지 부대 stop,
완전 군장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산을 오르내리도록 할것이다.
포대장은 엠뷸런스 대기시키고 , 애들 굴려"
그렇다. 완전 좃됀것이다.
가뜩이나 경사가 심한 산꼭대기 부대고, 일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우리 고참들은 완전 울상이었다.
내가 자대에 오기전 구타사고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완전군장으로 산타기 구보를 하다가 5명이 닝겔 꼿고
근처 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대장의 마지막 언급
지금 당장 내무실로 올라가서
여태까지 자대생활하면서 있었던 모든 비리에 대해서
이름 적지말고 다 적어 내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12시쯤 내무실에 올라갔는데
이미 내무실 분위기는 내일 부터 좃됐구나 라는
분위기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였었다.
에이포지 한장을 받아들고
내 침상 앞에 앉아 곰곰히 생각을 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이 모두 분명
'우리 역시 억울합니다. 저희는 지난 미사일 오발사고도
잘 해쳐나갔으며 부대원 전체가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린점 죄송합니다.'
라는 식으로 쓸것임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대대장이 원하는것은 그런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한것이 혈서였다.
대대장이 원하는것은 어쩌면 흐리멍텅한 말보다는
어떤 미친놈이 나와서 우리 부대는 그런 부대 아니라고
해주길 바랬었는지도 몰랐었다.
생각을 정하고 칼을 꺼내 새끼손가락을 베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쓰는 혈서라 그런지 손이 덜덜 떨렸다.
해본 사람은 알지 모르지만
자기스스로가 자신의 의식으로 자기의 몸에 상처를
낸다는것만큼 힘든일이 없다.
그래도 고3때 손깨물어서 혈서 쓰던 것보다는 쉬웠는데
아무튼 종이가 작아 몇글자 쓰지는 못했으나
어렵사리 제출을하고
대대장의 반응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부대의 전 간부들이 내무실을 돌면서
필적 조사를 했고 내가 불려나갔다.
작전준사관이 너임마 왜그런짓을 했냐며 혀를 끌끌 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좃됐구나, 내생각이 틀렸었나 보다.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며 대대장이 있던 사무실로 들어섰는데
대대장이 실실 쪼개면서
너같은 색기가 있어서 대대장이 기쁘다
이색기 당장 옷입혀서 휴가 보내
하며 혈서를 손에 꼭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부대 스탑은 없었다.
당연히도 완전군장 산악구보는 안했음은 물론이었다.
나는 한방에 영웅이 됬고 당당하게 휴가를 받아
집에돌아왔다.
후에 휴가 복귀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혈서는 여단장을 거쳐 사령부까지 올라갔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게임이었다.
우리가 가진 패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우리가 가진 칩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상대역시 스티풀을 잡았는지 이번 판에 올인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이 상황에 걸 수 있는것은 오직 내가 강패를 쥔것같은
뻥카 뿐이었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진 마지막 모든칩을 걸고 뻥카를 쳤을 뿐이다.
늘 무난한 삶을 바라지만 그렇지 않게 살아오고 있다.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 , 아차 하는 잘못된 선택들이
켜켜히 쌓이고 쌓여 지금의 위기로 나를 몰아올때마다
나는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왔다고 믿는다.
때로 내가 가진 패는 무늬도 뒤죽박죽에 숫자역시 얼토당토않은
5원페어의 낮은 패일 때도 있었다.
지금 ,
그리고 저기.
미니멈 배팅 620 의 테이블에서
잠시나마 멀어졌지만 곧 다시 앉을 생각이다.
나는
힘들때 힘이 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터무니 없이 낮은패로 오직 자신만을 믿으며
상대에게 초고액 레이스라는 압박만으로 이기는 기술
속칭 뻥카,
도박 용어로 블러핑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