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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정, 그녀의 진솔한 인터뷰

한아름 |2006.09.28 05:41
조회 389 |추천 2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오래전부터 역할모델이 되었던 그녀.

막연히 동시통역사이자 방송인, 배우라는 멀티플레이어로 참 매력적이다 라고만 생각했지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도 않았었다.

너무 진솔하고 솔직한 그녀의 대답. 아직도 내가 정말 택할 길은 어느곳인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나에게 지금 이시점에서 너무나도 도움이 되는 그녀의 말들이다.

정확한 이정표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삶의 가치와 치열했던 그 무언가. 열정. 그런것들.

정말 내 자신이 원하는것에 대해 자문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현실적인것이었나. 최근 통역일을 많이하면서 통역대학원에대해 다시 고민하다가 배유정이라는 검색어 덕택에 정말 멋진 인생충고를 얻었다.

그녀는 지적이지만 지적이지않고 부지런하지만 부지런하지않고 철두철미해 보이지만 철두철미하지 않고 보수적이지만 보수적이지않다.


방송에서 언론에서 만들어내는 그녀의 이미지와 저 인터뷰에서 묻어나는 진짜 그녀는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지 또는 소스라치게 같은지.

두 모습 다 진짜 그녀겠지만 보통 전문직에몸담고있는 여성들이 갖고있을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나 약간의 가식은 전혀 없는 내용에 놀랐다.

이와 다른 어느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외교관 자녀로서 사춘기시절 외국에 거주할 기회가 있었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이지만,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동양인으로서 언어소통에어려움을 많이 겪고 방황하고 친구가 없었던것, 일탈의 시기를 겪은것, 대학에 와서도 오랜기간 담배를 피고 방황하며 자아를 찾지 못했던것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를 느껴 담배를 끊었지만, 가장 후회하는 일이 담배를 시도했던일이라는것을 말했다는것.

언론에서 비춰지는 지적이고 유능한 여성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만들어진것이라고 얘기했던것 등등.

그녀의 고백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진솔한 그녀의 고백을 통해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솔직함과 꾸밈없음에 더욱 그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의 인터뷰를 읽음으로 인해 만나지 않고도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것인지 얼마나 매력적일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것.

 

엄청 길어도 끝까지 읽어보면 분명 도움이 될 그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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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정 .. | 번역 이야기 2006/05/12 11:18 

 

http://blog.naver.com/ssolimmi/80024272784

 

 

오늘은 동시통역사이시기도 하고요 연극배우, 방송인... 사회의 일반적인 공식을 뛰어넘어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그 일들을 해내시는 천 가지 재주꾼, 배유정씨를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앉아도 되요? ^^

 


 안녕하십니까? 강의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요. 저는 그런 거 할 줄 모르고요.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제 소개를 좀 말씀드릴게요. 제 이름은 배유정이라고 하고요. 저는 제 이름을 싫어합니다. 유정 낙지집, 유정 여관 등등 싫어하고요. 여러분은 자기 이름을 싫어해본 적 있나요?

음...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는데, 일단 저는 좀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굉장히 게을러요. 이상주의자에다 부지런했으면 어디 가서 시위하고 환경운동하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게으르기 때문에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고 환경운동연합에 회비는 내지만, 나오라고 하면 절대로 안가는 그런 사람이고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에요. 오늘 같은 날씨에 외출하는 거 너무 싫습니다. 그 다음에 나이를 물으면 항상 거짓말을 해요. ‘숙녀의 나이를 왜 물어봐’ 라며 빠져나가고요. 그런 걸 보면 허영심이 있는 거죠.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허영심을 버릴 수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를 어떻게 소개를 할까.

 

컨벤션(convention: 관습, 관행)이라고 하죠. 관행이나 그런 거에 욕심이 없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사는 거죠. 이 사회가 강요해도 내가 아니면 안 해요. 관행적으로 해왔으니까 해야 한다, 그런 건 잘 안 따르는 편이에요. 대대로 해왔으니까 너도 해라 하는 것들... ‘내가 봤을 때 비합리적인데 왜 해야 하는가?’하고 반문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어요. 한마디로 부모님에게 굉장히 골치 아픈,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었던 거죠.


그 다음에 저는 여성입니다. 태어난 게 여자니까 여성으로서 여성의 시각을 못 벗어나요. 여성으로 태어나서 저는 기뻐요. 남자가 아니라서 굉장히 기쁩니다. 왜냐하면 남성분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남자와 여자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남성들은 문제해결적으로 접근을 해요.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면 입 꼭 다물고 이걸 어떻게 할까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데, 여성은 수다로 풀어 하소연해요. 자기한테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말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잖아요. 상대가 교감을 해줄 때 해결되고. 정서적으로 교감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거든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정서적 교감을 중요시하는 여성이라는 점이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

그리고 저는 육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 4, 5년 전부터 고기를 안 먹어요. 회식을 가면 괴로워요. 거창하게 말하면 철학이지만, 생각을 바꾼 거에요. 제가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취하지 않아도 요즘은 워낙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동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가끔 고기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저의 믿음,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고기를 안 먹고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 엄마에요. 저희 집에 고양이 아홉 마리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고양이 같은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통 옆에서 만나 데리고 오거나, 남이 버린 고양이 입양을 해서 키워요.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하다 보니까 많아졌어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 눈 주위가 다 부어요. 그래서 오늘도 다 부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별로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불법 운전의 여왕이랄까. 속도위반 무지하게 합니다. 제가 낸 범칙금으로 조그만 골목 하나쯤 닦았으리라 생각하고요. 거짓말도 많이 하고. 사람을 배반도 해봤어요.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적도 있어요. 제가 굉장히 도덕적이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잘못을 하더라고요. 아주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권위적인 거 안 좋아하고요. 조직 정말 싫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년 전까지 직장이 없이 프리랜서로 일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약간 약해지는 순간, 2년 전에 이대 전임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매우 허덕이고 있습니다. 곧 쫓겨나지 않으면 제 발로 나온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결, 위생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손톱검사 하잖아요. 근데 패스에요. 얼굴이 하얗고 그래서. 성격은 털털해요. 여러분들 만난다고 하니까 차려입고 나온 거예요. 동네에서 마주치면 아무도 못 알아봐요.

 


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를 하냐면, 보통 자기소개 좀 해봐 하면 ‘저는 이대 영문과를 몇 년에 졸업하고’ 이렇게 나와요. ‘그건 이력서에 있는 얘기니까 자기의 이야기를 해봐요.’하면 거기에 대해서 준비들이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기소개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들은 웃으시겠지만 제가 받는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MBC에서 시사프로 진행하고 하니까 제가 굉장히 똑똑하고 완벽주의자고 까다로울 것이다’하는 거예요. 근데 가장 먼 이야기거든요. 그게 미디어가 조작해낸 이미지일 뿐이에요. 사실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력서에 나온 것, 언론이 조작해낸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내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고등학생, 대학생 이런 분들이 모였다고 들었는데 대학 입시 들어가서 ‘자기소개 좀 해봐’ 그랬을 때 한번 다시 생각해보세요. 이력서에 나와 있는게 여러분일까요? 여러분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측면이 있는 입체거든요. 어느 학교, 몇 년 이상의 여러분이 있거든요. 저는 장황하게 말했지만 여러분들이 앞으로 자기소개 할 때 ‘어떤 게 나의 본질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셨으면 해요. 15분 다 됐습니까? 아 5분 남았어요. 큰일 났다.(하하)

 


학부에서는 전혀 상관없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통역을 공부했어요. 사실 동시통역사란 말은 없어요. “국제회의 통역사”예요. 동시통역은 통역의 종류 중 하나에요. 순차통역, 동시통역 등등이 있는데, 동시통역이라는 말이 익숙하니까 이름이 붙은 거예요.

 


통역사로 일을 하다가 좀 싫증이 났어요. 통역사로 자신이 생기고 경제력도 생기니까 학사편입을 해서 연극영화과로 갔어요.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편입을 해서 연극 공부를 2년을 했어요. 그래서 국립극단에 들어가서 2년을 있었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잠깐 했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호주 방송에서 영어 모노드라마를 한 게 기사가 나서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대됐어요. 그러다가 PD에게 전격 캐스팅이 돼서 방송을 시작한 거예요.

 


많이 받은 질문이 자신을 어떤 직업으로 소개하느냐 인데요. 연극계에 가서는 배우입니다. 배우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배우에요. 통역에서는 연극하고 방송하는 게 아무런 프리미엄이 안 돼요. 제가 순차통역이면 사인해달라고 해요. 그럼 주빈인 연사들이 싫어해요. 통역계에서는 단순통역사.

 


나비씨가 소개할 때 영화배우라고 하셨는데 제발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영화에 한번 출연해서 굉장히 수모를 당했는데요. KBS에서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돌발 퀴즈가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도 잊지 못할 수모의 순간이었어요. ‘우리나라 3대 여배우가 아닌 것은?’ 강수연, 이미숙, 이미연, 4번 배유정. 그거 가지고 두고두고 놀림 받고 있어요. 저 영화 딱 한편밖에 안했거든요. 저희 아버지도 영화 다 끝나고서도 못 알아보셨어요. 영화배우란 애기 안했으면 좋겠어요. 연극으로만...

 


자, 15분 됐나요?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배유정씨 얼굴을 포스트잇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며)

 


 원체 바쁘셔서... 오늘도 낮에 계속 밖에서 스케줄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강의가 부담스럽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잘 말씀해주시다니.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박수를 한번 드리겠습니다. 예, 저희가 영화배우란 이야기를 일부러 넣으려고 그랬다기 보다는...(하하하).

 


 여러분, 저도 방송 쪽에 종사를 하지만 방송에 나온다고, 지면에 활자화된다고, 진실은 아닙니다. 새겨두셔야 합니다.


  배유정씨에 대한 편견을 벗고 진실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요. 이건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만 뒤에 이 작품, 본인을 살짝 쪼금이라도 닮지 않았습니까?

 


 (바라보며) ^^;;

 원래는 사진이었는데 픽셀이 너무 커서... 자, 딴 짓 안하고 질문 하죠.

 


 전위예술로 표현된 제 얼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배나 부지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배유정씨의 청소년기가 궁금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소개 때 말씀을 드렸고요. 게으른데 제가 좋아하는 거에만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물론 두루 성실한 분도 계시겠지만.

 


청소년기에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외국에 나갔어요. 조기 영어 그런 거 없었을 때고, ABCD는 중학교 들어가서 배웠거든요. 이태리 로마로 가서 중학교 1학년 수업을 하는데, 정말 아무 것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유럽에 동양인도 없었어요. 버스타면 사람들 다 쳐다보고.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1학년 나이니까 고개도 못 돌리고 숙이고 다녔어요.

 


일단 말을 못하니까 학교에서 바보죠. 성격도 어두워졌어요. 스스럼없이 누구에게 다가가서 친구하자 이런 성격 절대 아니거든요. 밝지 못한 성격인데 말도 못하지, 외국 애들이지, 하니까 성격이 어두워지고 더 비뚤게 나갔어요. 잘하는 게 있어서 칭찬을 받아도 그것도 기껍게 들리지가 않는 거예요. ‘진심의 칭찬이 아닐 거야.’하며 그대로 못 받아들였죠.

 


제가 그림은 좀 그렸어요. 선생님이 잘 그렸다며 미술가를 해도 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좋게 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때 선생님한테 굉장히 혼났어요. ‘애가 왜 이렇게 삐딱하냐, 칭찬을 해줘도 저렇게 나오고.’ 어머니가 점점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물론 학교에 남아서 따로 과외를 받고,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 왜, 1년만 갖다오면 영어는 다 된다고 하잖아요? 천만의 말씀. 유치원생 때,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돼요. 쓰는 단어가 몇 개 안되기 때문에. 문장의 구조도 매우 간단하고. 제 동생은 5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저보다 훨씬 친구도 빨리 사귀고 말도 빨리 텄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힘든 거예요.

 


1년쯤 되니까 숙제는 뭔지 알겠는데도 자신감은 여전히 없는 거예요. 1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석 달인데, 어머니가 선생님한테 ‘얘가 영어를 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숙제를 주십시오.’라고 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영문과 출신이신데, 방학도 없이 딱 잡아놓고 앉혀서 매일매일 숙제만 시켰어요. 석달을 하루도 안 빼놓고 했죠. 개학을 하고 첫 번째 시간이 문법을 도해하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밥 먹고 그것만 했잖아요? 반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해서 친구도 사귀고, 긍정적인 시각도 갖게 되고... 그런 전환기가 있었어요. 제가 그거 안했으면 로마에서 삐딱 소녀로 자랐을 거예요.

 

 

 


그렇게 3년 반쯤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 가지 좋은 거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그 느낌 모르죠? 그 해방감. 내가 익명의, 여러 명 중의 하나가 된거죠. 남들이 볼 때는 10대 소녀가 버스 탔는데 뭐가 특이하겠어. 거기 이태리는 모든 눈동자가 나를 보거든요. ‘내 나라가 좋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외교관 자녀들이 외국 사는 거 싫어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자)가 돼보는 게 어떤 지 잘 알거든. 문화적 상대주의에 눈을 일찍 뜬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후 한국에 나왔는데 교복을 입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장하고 머리 맨날 고데하고 그러는데, 한국에서는 바로 날라리로 찍혀서 요주 인물이 되요. 하여튼 그러니까 얼마나 문화충격이었겠어. 그때가 70년대 말이었거든요. 80년도에 고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었고. 학교에 가면 교문에서 딱 잡는 거야. 머리를 땋는 게 3개로 나와야 되는데 머리가 짧아서 2개가 됐었거든. 그러면 교문에서 푸르고 다시 땋고 들어가요. 참고로 저 예고 나왔어요.

또 나에게 충격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은 전학 온 학생하고 친구를 안 해요. 공부는 못해도 ‘어머 너 외국서 살다왔구나’ 친하게 해주는 애들이 있어요. 너무 고마운 마음에 이 친구들과 같이 광화문에 가서 라면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그랬어요. 근데 그 첩보가 바로 교무실로, 그 다음 엄마 귀에 들어갔죠. ‘내가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 먹는데 왜 선생님이 걱정할 일이야? 학교 끝난 이후의 생활은 선생님 간섭하지 마요’ 이렇게 못되게 나가는 거죠.

 


그 뒤 모의고사를 봤어요. 모의고사는 국영수만 보잖아요? 제가 책은 좀 읽었기 때문에 국어는 따라가고, 영어도 되었고, 수학도 좀 해서 성적이 좀 잘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성적이 나오니까 친구가 물갈이가 되데? 반장, 부반장 하던 친구들이 ‘이리와 친구 해줄게’ 이런 분위기고. 선생님도 나를 다르게 보고. 근데 나는 예민하기 때문에 그게 너무 싫었어요. 이런 걸로 사람을 평가를 하나? 그래서 맨날 놀던 친구들이랑 놀고. 그러니까 학교생활이 좋았겠어요? 안 좋지. 억압적으로 느껴지고.

 


미술을 했는데 그것도 문제였어요. 윤성자 선생님이라고 유학 갔다 오셨는데, 그 선생님한테 미술을 배웠어요. 선생님하고 비 오면 집안에서 유화를 그리고, 비 안 오면 선생님은 데생하고 우리는 수채화 그리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미대 가봐라 해서 예고를 지원했는데 우리나라 입시에 딱 그게 있어요. 학교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소묘도 딱 그렇게 가르치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랑 너무 다른 거야.

 


학교 그렇지, 선생님도 성적으로 학생들 재단하고, 교우 관계 간섭하지... 그나마 위안이 그림 그리는 건데, ‘너가 뭘로 갈 거냐? 응용 미술로 갈 거냐? 회화과로 갈 거냐?’ 그림도 다른 걸 그려야 된다고 하고, 너무너무 답답하죠. 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꿈 많은 학창 시절 너무 미화하곤 하는데, 나는 사춘기가 너무 싫었고요. 한국 와서도 고생했었고, 사춘기는 안 돌아가고픈 시기예요.

 

 

 

 


청소년기가 답답한 게 뭐냐면 머리는 크고 조숙해서 자기 나름의 가치관은 있는데, 힘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하고. ‘나 이렇게 안할래.’ 그러면 아버지는 ‘네가 내 집에 있는 한, 내 밥을 먹는 한, 내 맘대로 해’ 딱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집을 나간다고, 몇 번이나 부모님과 갈등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권위적인 분이세요. 고집 세고. 지금은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니까 화해가 되더라고요.

 


청소년은 어떻게 보면 가장 힘이 없는 집단이에요. 예민하고 순수해서 어른들보다 꿈이 뚜렷한데, 현실은 나를 조그만 틀에 가둬놓거든요. 요즘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도 하더라만, 저희 때는 그럴 기회도 없었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바라는 사람들 틈에서 사니까 괴롭죠. 저는 늙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청춘 그립다, 돌아가고 싶다 하는데 저는 20대도 너무 싫었고. 대학 가면 바뀔 줄 알아요? 비슷해요. (청중 웃음)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이 기득권을 잡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오죽하면 10대 때 소원이 마흔이 되는 거였거든요. 지금 마흔이 됐거든요. 너무 좋아요.(흐믓)

 

 

 ‘열다섯 때 영어는 띄었고요’가 아니라서 너무 다행스럽지 않아요? 갑갑한 시절이 많았고 지금 나이가 들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갑갑하고 충분히 방황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충분히 해내시잖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해서 오는 불안감. 보통은 따라가 주는데 그게 아닌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불안감 같은 것은 없었나요?

 불안감은 항상 있죠. 연극하는 동안 돈은 못 벌잖아요. 집에서 다 반대했죠. 통역사로 잘 하고 있는데 뭐 하러 그걸 다 버리냐고. 연극은 배고픈 직업인데 뭐 하러 하느냐. 통역사는 프리랜서기 때문에 일을 안 하면 고객이 다 떨어져 나가요. 20대 후반에 통역사로 돈을 좀 벌어놨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존 안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건데, 연극을 하면 부모님에게 또 손 벌리게 될까봐 불안했죠. 그때 불안감을 극복하고 일을 했던 건,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고 워낙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에요.

 


아무 비전도 없고 보장도 없지만 하고 싶은 거에 대한 희열, 그거에 모든 걸 거는 거예요. 무계획, 무모한 성격이라고 하는 게 딱 맞는데,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거 때문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일욕심이 많아서 라고 얘기하는데 그거 아니라니까요.

 


 무모하다고 하셨는데 용감한 성격이시거든요.

 


 무식하니까 용감한 거에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안했을 거예요. 저는 공연 보는 걸 좋아했어요. 무대도 화려하니까 멋져 보였죠. 문학을 좋아하니까 희곡도 많이 읽었거든요. 미술 했으니까 무대 미술에도 관심이 많고. 저는 연극배우랑 말 한번 해본 적도 없었어요. 요즘 같으면 좀 알아보고 했을 거예요. ‘연극하는 사람에게 벌이는 어때요?, 캐스팅은 어떻게 하나요?’하고. 아무 것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했어요.

 


방송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라디오를 안 듣고 자란 세대에요. 저는 10대 때 테이프만 듣던 세대고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라디오도 들어본 적이 없고. 당시 저를 발탁했던 PD 부인이 모니터링을 해주는데, 하는 말이 ‘여보, 이 사람은 방송을 안 들어본 사람 같애.’라고 했대요. 몰랐기 때문에 했던 거죠. 진행이 뭐 그러냐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TV방송을 시작할 때는 제가 해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영화 음악 진행하면 영화는 보여주나요?’ 물었더니 다 공짜래요. 어 나 영화 좋아하니까 좋다, 그래서 한 거라니까요. (하하)

 


 용감한 선택을 해오셨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몰라도 내 나이는 알잖아요. 어떤 사람은 광고에도 나왔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말도 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더 심하게 20대는 뭐할 나이, 30대는 뭐할 나이, 이런게 굉장히 분명한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하는 것’이 굉장히 달랐을 것 같거든요,

 

 

 

 

 저를 가르치는 사람이 저보다 어려도 무조건 선생님이에요. 제가 뭘 배우러 가서 ‘내가 너보다 나이는 많거든’ 이건 아니거든요. 내가 가르침을 받으러 갈 때는 ‘인도해주세요’하면서 매달리는 거예요. 저 연극영화과 들어갔을 때, 만 열아홉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어요. 저는 학생이 된다는 기분에 룰루랄라 하면서 다니고. 연극했던 동기들이 권해효, 유오성... 또 있어 하여튼. 밖에는 선생님 소리 듣고 통역사 대접받지만 안에서는 누가 날 알아줘요. 내가 '배우겠습니다' 들어가면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요.

저희 아버지 얘기 해드릴까요? 예순이 다 되셔서 용산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어요. 새벽 4시면 눈뜨시는데, 모르는 걸 물어보고 싶어서 선생님 일어나는 시간 기다리다가 7시에도 전화를 해요. ‘어 난데 말야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그렇게 열의를 보이는 만학도 학생을 누가 밉다고 하겠습니까. 이제 저희 아버지는 간단한 프로그래밍도 하시고, 조립한 컴퓨터를 자신이 업그레이드를 해가면서 쓰세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같아요. 맨날 지금 들어가서 될까 그런 건 여러분들의 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을 이르는 말)예요.

 


내 나이대가 아닌데 들어간 사람은 필요가 있어서 들어간 거잖아요. 내가 지금 대학 나이를 놓쳤는데 지금 대학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하면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시간 때우러 오는 학생하고 그 사람하고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열심히 하겠어요? 나는 만학도들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안정된 직업?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돼요. 지금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요. 옛날에는 인생 참 웃기는 게 '한 우물을 파야지' 그 소리 많이 들었고요. ‘한 가지도 못하니까 여기저기 다니는 거 아니야’ 이런 소리 들었는데, 사회가 바뀌니까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다중처리,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함)에 강하다’ 그런 소리 나와요.

 


50대 통역사들 아직 현역으로 일해요. 그리고 다들 젊게 사세요. 하지만 몸도 젊지 마음도 젊은데 할 일은 없고, 굉장히 힘들어져요. 오랫동안 자기가 스스로 단련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해요. 경제력도 생각안할 수 없어요. 인구가 자꾸 감소하고, 저출산 국가잖아요. 그러니까 점점 살기 어려워지죠. 나중에 여러분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내준 연금으로 살아야 되는데, 지금 10만원 내는데 나중에 2, 3만원 밖에 못 받을지도 모른다고 다들 그거 걱정해요.

 


제 2, 3의 커리어도 생각해야 되요. 어린 사람들하고 다시 배워야 되거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 시대가 올 거고 당연히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고 봐요.

 

 


 제 2의 커리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매우 필요한 조언이었던 것 같은데요. 조금 다른 애기 해볼게요. 여러 가지 영역에서 일을 하는데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특히 극단에서도 일을 하셨는데 극단은 성차별이나 권위적인 구조가 심하다고 들었는데요.

 여성의 정체성, 작용했죠. 왜냐하면 부모님이 굉장히 독특한 교육을 하셨어요. 딸만 둘인데, 결혼해라, 시집가서 잘 살아라 그런 얘기를 한번도 안하셨어요. 여자도 경제력을 가져야 된다. 여자도 배운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 이런 말씀만 하시고. 나중에 엄마한테 왜 결혼하란 말은 안하셨어요? 그랬더니 ‘난 당연히 할 줄 알고 안했는데.’하시더라고요.

 


저는 학구적인 타입이 절대 아니에요. 활동적이고 밖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열심히 연애를 하고 무지하게 실연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 여성들이 진출을 하면 대졸 사원들도 커피 심부름 시키고 중요한 일은 안 시키는 분위기였어요. 영어로 이라고 하죠. 지금도 통역 나가보면 최고경영자 혹은 여성 임원들은 없어요. 그 당시에는 더 심했죠. 조직은 위계질서가 강하고 수직적이고 남성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여성의 정체성이 한번 작용을 한 거고. 속으로 ‘여성도 남성과 권리면에서 동등해야지’ 생각하지만, 내가 이런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페미니스트로 나서야 되지만 비겁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탁 빠진 거죠.

 

 

 

 


통역사로 일하는데 여성이 불리하지 않아요. 외국은 남자 통역사가 많은데, 유독 일본과 한국만 여성 통역사가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통역대학원을 나와도 다 취직을 해버려요. 프리랜서만 해도 보장된 직업이 아니었거든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합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끔 테크니컬한 통역을 할 때 남자들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해요. 그럼 없는데요 하죠. (웃음)

 


연극에서 사실은 성차별이 롤(role:역할)적인 면에서는 있을 수 없어요. 문제는 극작가들이죠. 굉장히 심각한 고뇌의 인물을 연기할 때 남자를 써요. 햄릿이 남자거든요. 그런 거는 남자가 해요. 여성의 역할 자체가 조연이라든가 청순가련이 대부분이죠.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역할이 오필리아(햄릿에 나오는 여주인공)예요. 오필리아는 정말 운명에 휘둘리고 가장 주체가 없는 역이에요. 사실은 왕비가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더 많아요. 왕비가 사실은 더 매력적인 역인데, 흔히 오필리아라고 생각을 하지요. 역할 자체에서 오는 어떤 극에서의 무게감, 이런 게 여성 역할에 많이 안주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극단 내에서는 모르겠어요. 제가 막내로 들어갔을 때는 여성만 두 명 뽑았기 때문에. 극단에서 선후배 관계는 굉장히 따지는데 성차별적인 그런 건 좀 열려있어요. 연극하시는 분들이 순수하고 개방적이에요. 너무 디스플린(discipline: 규율, 기강?) 없는 게 탈이죠. 열려있고 따뜻하고 양성평등적인 면이 많다고 봐야죠.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네이버 검색을 해봤더니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답변이 ‘리스닝이 반입니다’, ‘단어도 뭐도 다 중요하지만, 저도 6학년인데 통역사 준비하고 있습니다.’고 나오더라고요. 굉장히 깜짝 놀랐는데 답변자 의견 달기 부분에 ‘여러분이 뭔가 잘 모르시나본데 동시통역사는요...............신입니다’라고 나오더라고요. 통역사란 직업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주시려면 많은 초등학생(?)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통역대학원에 온 학생들을 보면, ‘왜 왔어요 딴 거 하세요’라고 얘기해요. 솔직히 전문직이가 사회적 위상, 지위도 인정을 받지만, 진짜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하면 보수가 적어요. 통역사는 ‘사’자 리스트에서 가장 하단에 있다고 보시면 되요. 의사, 변호사, 회계사... 이런 분들은 만약 자기가 변호사면 소송건을 맡고, 굉장히 고액이 걸려있으면 탄력적으로 수입이 들어와요. 의사는 병원을 어떻게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설계를 할 수가 있어요. 약사도 가능하죠. 자기 밑에 보조 약사를 두고 늘릴 수 있는 거죠. 통역사는 내가 현장에 직접 나가야 돼요. 누구를 대신 보낼 수 없어요. 일반인이 의뢰한 통역이나 대통령이 의뢰한 통역이나 액수도 똑같아요. 6시간까지 얼마. 똑같아요. 통역사가 버는 수입은 최대 일년에 얼마, 이렇게 딱 정해져 있어요. 제 때는 여성들에게 열린 직업이 몇 없었어요. 그래서 통역사가 매력적인 직종이 될 수 있었어요. 몇 없으니까. 지금은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훨씬 많아요. 수익적인 면에서도. 통역사는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음에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외국어를 잘하시는 분들이 통역사하려고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동시통역 같은 경우는 영어도 외국인 정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그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고요.

 


가장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 이해력 이예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두루 하잖아요. 오늘은 IT, 내일은 통일연구원에서 한국 대북 정책, 그리고 그 다음날은 전혀 다른 통역을 해요. 그래서 다른 분야의 텍스트를 굉장히 빨리빨리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보통 언어에 치중을 하고 목숨을 거는데 논리적인 사고, 순발력과 이해력이 더 필요해요.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매우 다릅니다. 우리말을 잘해야 해요. 영어 잘하는 교포, 우리 학교 오면 졸업을 안 시켜줘요. 영어도 뛰어나게 구사하면서 논리적, 이해력, 순발력 그 요건을 맞추기가 사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원 올 수준이면 그 동네에서는 영어하면 그 사람, 학교에서 영어하면 그 사람, 하던 사람들이 와요. 그런데 영어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사실은 영어보다 중국어를 권하고 싶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생각하면. 중국어의 중요성을 무시 못 합니다. 하지만 중국어가 됐든 영어가 됐든, 영어는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요. 영어를 발판으로 뭐든 할 수 있거든요. 해서 손해 볼 일 없다는 거죠. 그런데 통역사가 되기 위한 요건을 맞추려면 그거 갖고는 안 된다는 거죠.


통역사들끼리 얘기하면 ‘타고나야 한다.’는 말을 해요. 사실 전문직 중에 많은 부분이 그래요. 70%는 타고난 사람, 30%는 학교에서 가르친 것. 통역이 전혀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 많아요. 영어도 잘하고 통역도 잘 하는데 이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순차통역을 한다면 연사가 말을 하고 그걸 필기를 하고 1~2분이 경과된 다음에 이야기를 하는 건데. 남의 말을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얘기하려니 스트레스가 굉장히 가해지는 거예요. 동시통역은 부스라고 해서 조그만 나무 박스가 있어요. 나비씨가 여기서 이야기를 하면 헤드셋으로 듣고 동시에 통역을 해요. 그러면 대중 앞에 나오는 게 아니고, 대중을 대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조금 낫죠.

 


통역사 1~2년 하다가 그만 두는 사람도 많아요. 언어적 적성, 논리적 머리, 이해력, 순발력이 있어야 돼요. 사람들 앞에서 퍼블릭 스피킹(public speaking: 말 그대로 공중,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것. 연설, 웅변 등을 말함)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저희들이 그런 거 매우 강조해요. 연사가 말하면 통역사가 그에 못지않은 설득력으로 딱 잡아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목소리가 작거나 하면 그 사람의 말 자체는 전달이 될지 몰라도, 서브 텍스트(sub-text: 문장의 숨은 의미?)랄까, 열정 이런 건 전혀 전달이 안 되고 여과되어 버리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시 통역사까지 될 수 있는 게 쉽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나 영어 공부는 광범위하게 하시면 좋습니다.

 


통역사 그렇게 멋진 직업 아니에요. 돈도 조금 벌고. 저희는 호텔에서 많이 일해요. 맨날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힐튼, 하얏트... 일주일 내내 도니까 화려해 보이지만, 연사들은 레드 카펫 밟고 올라오는데 저희는 종업원들 다니는 곳으로 다녀요. 통역 부스 들어가서 음지에서 양지를 그리며 일을 하고. 돈도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바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호텔에서 밥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러면 정말 지출이 엄청 많아져요. 솔직히 통역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통역이 안 되면 아무 것도 전달되는 내용이 없으니까. 아무나 불러서 써도 되는 줄 알고 대접 안 해줘요.

그러나 통역사가 나쁜 직업은 아니에요. 장점도 많아요. 자유롭고, 그것도 또 프리랜서가 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하지만 7, 8, 9월 팍 쉬고 외국 여행 같은 건 힘들어요. 고객 관리를 해야 되거든요. ‘어 배유정씨 연락 안 되네’하며 내 역할이 내 동료 경쟁자에게 가게 되는 거예요. 프리랜서들이 거의 다 그렇지만 사실 통역사들은 불안해서 여행 못 다녀요. 충성스런 고객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여행 다니고 하지. 장단이 있어요.

 

  통역사에 대해 혹 직접 질문을 던지고 싶으시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디지털 고등학교 일학년 박지훈이라고 하는데요. 유년기나 청소년기 때 꿈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지금의 직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이 뭐냐면요. 미래 계획이 뭐냐 하고, 어렸을 때의 꿈이 무엇이었느냐 이건데. 이런 자리 오면 통역사가 꿈이었고, 열심히 코피 터지도록 공부해서 통역사가 되었다며 귀감이 되는 이야기를 해줘야 되는데요. 저는 그 목표가 없어서 방황을 했어요.

 

자기가 목표가 있으면, 목표 의식이 있으니 갈 길이 나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없어서, 저희 어머니가 저를 의지 박약아라고 하셨어요. 내 마음대로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니까 그림도 그려보고 노래도 해보고.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셨는데 본인은 뭐 되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기획자. 게임 기획자가 되고 싶거든요.

 


 박지훈군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거에요. 게임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게임 방송도 열심히 보고 직접 게임도 할 거고 할 텐데 저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꿈이 없는 경우가 많다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답답하죠? 근데 그것도 괜찮다는 거예요, 몇 년을 살았다고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라고 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예요. 나는 통역은 그냥 했지만, 연극은 제가 목표의식을 가지고 했어요. 연극 공부하는 동안 신이 나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른 공부할 때는 정말 재미없었거든요. 운이 좋아서 졸업을 한 거지.

 


사실은 오랫동안 뭘 하고 싶은지를 못 찾았어요. 서른 넘어서야 ‘이거 하고 싶다’하고 발견한 게 연극이에요. 만약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 갑갑하다’ 그럼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내 짝은 있는데 왜 나는 없지 하면, 나를 조금 더 열어놓고 인생 경험 두루두루 해봐야지...하고.

 


인생에서의 불확실성은 평생 가져가는 거라고 봐요. 10대, 20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죠. 현재 위치에서 인생에서 확신을 가지냐? 그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는, 빨리 결정 안하면 안 되는데 왜 가고 싶은 과가 없지, 남들은 다 어떤 기업을 목표로 하는데 나는 왜 없지? 그때는 인생의 길이 그거밖에 없는 줄 알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여유가 조금 있어요. 다른 선택도 있고 대안도 있다는 걸 지금은 아니까. 제가 너무 방황을 했기 때문에. 하나로 정한 게 없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변호사가 되어야지 했으면 고시 공부만 했겠지만, ‘이것도 재미있네!’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방송 쪽에 관심이 많은, 10대보다는 조금 편해진 나이고요. 오늘 이야기를 해주신 게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 살아오면서 ‘나는 이것, 이것, 이것을 해보다 보니까 싫어져서,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바라보는 위치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저희같이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고 보입니다. 남들이 보는 성공에 서셨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전문직종인 분야에서 남들이 인정할 만한 커리어를 쌓으실 수 있었던 데에는 배유정님만의 특별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해가 안가서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운 좋게 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

 


 저한테는 ‘거짓말 하시는 거죠’ 라고 들리는데요?

 


 제가 쉽게, 쉽게 이야기를 하는데.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해보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요. 통역대학원 1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안했어요. 마음을 먹고 들어간 게 아니었잖아요. 제가 2학년 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죠. 제가 뒤쳐져있다는 걸 깨달아서 2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을 형성했어요. 그때부터는 죽어라 공부한 거죠. 제 성격이 그래요.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는 스타일이고, 굉장히 인텐시브(intensive: 집중적으로)하게 공부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통역대학원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하고 똑같아요. 10시, 11시 반에 집에 가고 주말도 없고 방학도 없어요. 그런 수련의 기간 다음에 전문직종이 탄생하는 거죠.

 


그리고 또 방송은, 방송도 일가를 이루셨다고 해서 제가 씩 웃었잖아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바라봤을 때처럼 방송도 여러 개를 하고, 통역사로도 여러 가지 회의를 나가고 했으니까 탄탄하게 안정적이구나 하시는데요. 그런 안정감이라는 건 평생 오지 않는 거 같아요. 성공한 사람이 가장 불안해요. 그리고 저 방송에서 일가 이룬 사람 아니에요. 방송인으로서 굉장히 일을 많이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통역이나 사회를 더 많이 보기 때문에 방송은 EBS 만 해요.

 


여성으로서 방송일 한다는 거 굉장히 어려워요. 우리나라에서는 노련한 여성 앵커들에게 설 자리 주지 않아요. 저는 MC로 출발했고 좀 더 독특한 제 영역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분야에서는 생명이 긴 거예요. 황금 방송 시간대 여자 아나운서들 같은 경우 계속 교체되고, 밑에서 후배들 자꾸 올라오죠.

기업체들 같은 경우에 통역사들 비행기 태워서 데리고 갈 때 이코노미 좌석 타고 가면 안 되겠느냐 하면, 어떤 후배는 ‘이코노미 타고 가겠습니다’ 해요. 그러면 데리고 가요. 저는 ‘저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그걸 아는 기업에서 저를 쓰죠. 예산 가지고 빠듯한 기업은 저를 안 써요. 싸게 노동을 공급할 수 있는 통역사들 써요. 그렇다고 제 위치가 공고하냐? 절대 아니에요. 성공이 안정을 의미하는 거 절대로 아니에요. ‘성공 = 불안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혼하면 안정적이라고 하죠. 요즘 이혼율이 얼마나 높은 줄 알아요? ‘불안정이 보통이다’ 라고 생각해야지, 안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제가 여러 가지 커리어를 쌓았지만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어요. 제가 아침에 SBS 아침방송을 3년 반 하는데 목 뒤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분장하고 나가야 하거 때문에 건강이 너무너무 나빠졌어요. 아침 방송 하는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정말 힘든데 견디는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저의 비결은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안될 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연기자였던 게 도움이 많이 되요. 순간 최면을 거는 거예요. 매번 새 거 보는 것처럼. 아침 방송 찍으면 똑같은 주제, 똑같은 지방, 똑같은 특색음식... 그래도 ‘아 저런 게 있구나,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게 즐겁다’ 그런 자기 착각 속에 빠지는 거예요. 힘든 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거죠.

 


통역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움직이지 않아요. 물론 30분씩 교대를 해요. 그러나 30분간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 맥락을 알아야만 다음 30분 동안 계속 갈 수 있거든요. 쉬지 않고 계속 들어줘야 해요. 심포지움 끝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요. 모두 스트레스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죠. 너무 재미없고.

 


그러나 항상 나는 통역사여서 재미난 면을 계속 찾을 수 있어요. 신지식들이 저를 경유해서 나가잖아요.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거죠. 뉴스에 나오는 거도 전날 내가 통역한 거고, 매일매일 새로운 걸 알게 되니까 너무 즐거운 거죠. 그런 마음가짐, 일종의 최면, 그런 게 필요해요. 연극 공부한 게 방송에도 많은 도움이 되요. 연기, 자기 최면. 연기할 때는 다른 인물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방송, 연극, 통역이 시너지랄까. 상대적으로 전환되었던 부분이 있어요.

 


 너무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은 사람을 보면 놓친 토끼는 없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죠. 모든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낙천적으로 자기 최면 걸어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배유정님께서 오늘 오신 여러분들께 하나의 메시지를 적어왔습니다. 그 메시지가 뭔지 한번 들어볼게요.

 


 이거 못 날리면 오늘 말한 거 다 소용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운문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산문적인 사람입니다.

 


때로는 젊음도 버거울 수 있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뜹니다. 힘내라 힘!

 


배유정씨가 비행기를 내리며 토크쇼 막을 내렸습니다.

추천수2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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