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인터넷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대화가 없는 가족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우리집과 비슷한 양상을 띈 사람들의 모습이더군요.
대화가 없는 가족들의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자연치유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워낙 식구들 성격의 근본적인 문제인데다, 서로 무관심하다는 것은 더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는 것이고
서로의 문제점을 알고 있어면서도 합리적인 대화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글이 매우 깁니다. 글이 길다고 악플다실 분들은 안읽으셨으면 합니다.
저희 가족은 4인 가족입니다.
아빠.
평소에는 고지식하지만 자상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에게 직접 식사도 차려주시고, 비가 오면 자동차로 저희를 마중하러 나옵니다.
퇴직하신지 10년이 넘었기 대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저희를 위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친구는 없습니다.
아빠 또래의 친구분들과 나누어야 할 대화를 저희에게 합니다.
워낙 변덕이 심한 성격이라 해준 것이 아닌 항상 다른 것을 원합니다.
어버이 날 엄마에게는 카네이션을, 꽃종류는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카네이션은 못주고
어버이날 드릴만한 선물은 아니지만 기호품이 담배뿐이라 담배 한보루를 사다드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 고맙게 받습니다. 돈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걸 사왔느냐고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중에 화가 났을 때 부족했던 일들을 하나같이 기억하고 품고 있다가
자기에게 필요한건 그깟 담배 한보루가 아니라 자기를 다독여줄 수 있는 말 한마디라고 합니다.
사랑해, 생일 축하해 이런 말 있죠.. 왜 우리가 안했겠습니까. 어렸을 때 했습니다.
사랑해 생일 축하해 고마워 미안해.. 말하면 뭐합니까. 나중에 화가 났을 때 다시 돌아옵니다.
사랑해라고 말했을 경우 말들은 그 당시엔 대답도 없고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화가 났을 때 이따위로 아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너희들이 사랑해라고 말하면
다냐고 말합니다. 한두번이 아닌 일들이라 저희는 책잡히지 않으려고 말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럼 또 말이 없는 것을 탓합니다. 말하면 말이 많다고 싫어하고요. 예는 곱게 썼지만 말하는 수위가 지나치거든요.
화가 나는 원인도 어느 순간 스스로 자처해서 하신 일임에도 불과하고 저희 뒷바라지 하는것에 큰 분노를 느끼는 겁니다.
저희 아빠의 대화방식은 일단 술을 마십니다. 매우 급하게. 안주도 없이 바로 술병을 들고 마십니다.
주량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소주 반병이면 어느덧 취해갑니다. 그리고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다 늙은 놈이 부엌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동네 창피하다며, 주위 사람들은 자기가 봉양받고 살고 있는 줄
안다며 어디가서 이런 얘기 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만.. 손님이 오기만 하면 저희가 집안일에 충실하지 못한 점을
주구장창 말씀하시죠. 손님들이 저희 흉을 보는 아빠 때문에 민망해 하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우리는 이랬고 저랬고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저희 친척들, 아버지의 몇 없는 지인들은 저희가 아버지를
혹사시키고 사는 줄 압니다. 특히 삼남매중 딸이 저뿐이라 모든 화살은 저에게 돌아옵니다.
그런 분노들을 터트리며 길게 대화아닌 대화를 합니다. 대화라기엔 연설과 비슷합니다.
초등학교 국어선생님 출신이라 그런지 가르치는 것에만 익숙합니다. 마지막 질문시간이 있는 것 까지 흡사합니다. 저희 삼남매를 앉혀놓고 심하면 과장 안섞고 8시간 꼬박 말합니다. 저희가 말하는 시간은 그중 5분도 못넘깁니다.
우리집의 대화라는 개념은 단순히 아빠가 불만인 점들을 "술먹고" 일방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때 잘못한 것도 아닌,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 옛어릴적 할머니 할아버지의 불만부터 엄마, 그리고 엄마의 형제, 그리고 우리들까지 불만이었던 것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수십번을 반복합니다. 정말 최근 화가 났던 것을 말하면 뉘우치기라도 하지 옛날일의 옛날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전에 잘못했다고 말했던 것들도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아빠의 인생중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화냅니다. 제대로 듣고 있었던 거냐고.
그리고 무언가 변명을 할까 싶어서 무언가 말하려고 하면 바로 술잔같은 유리잔들이 날아옵니다.
돈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내뜻에 안따르고 돈 안벌어올거면 다 귀찮으니까 썩 나가라고. 누구는 어떻게 하고, 누구는 어떻게 했는데 너희는 뭐냐. 두당 백만원도 못벌어오는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말합니다.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술만 들어가고 돈얘기가 나오다보면 유산얘기가 나옵니다.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건 너희때문인데 다 너희 물려주려고 그러는거라고. 그런 뒤 절 보고 말합니다. 넌 여자니까 빠지라고. 그렇지만 제가 벌어오는 돈들은 꼬박 가져갑니다. 계산적인 성격입니다.
아빠는 많이 참았다고 말하지만 참고 참다가 결과적으로 술먹고 폭력을 휘두르고 병을 깨고 집의 물건들을 부수고 우리들에게 개새끼들 씨팔새끼들 개년이라고 욕하는게 참는거고 사랑일까요..
엄마..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늘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녀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유악한 성격을 가진.
평소에는 잘하지만 화만 나면 횡포를 부리고 폭언을 일삼는 아빠의 옆에 있는 방법은 그저 참는 것 뿐이었을겁니다.
초등학교때 뇌종양으로 쓰러진 뒤 세차례에 걸친 대수술이 너무 힘겨웠는지 엄마의 사고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데 하루에 열몇시간을 자고 건강은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었지요. 물론 집안일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엄마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부모님의 아들선호때문에 제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 그날은 꼭 싸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저도 반발심때문에 엄마 더 돕지 못했습니다. 그런 집안일들의 문제때문에 엄마에게 아빠는 심한 폭언을 했습니다. 술집년을 데려와서 살아도 너같지는 않다며, 자식들 앞에서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고 엄마의 부모님들을 욕하고 형제들을 욕합니다.
엄마가 병상에 있을 때 엄마의 형제들이 아빠에게 서운하게 대한 것들이라면 당연히 전 아빠편입니다. 엄마만 신경쓰고 아빠가 인사하면 인사받지도 않을 정도로 냉대했었거든요. 그 이후 처가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암만 그래도 엄마의 부모님이고 형제들인데 심하게 욕하더군요.. 엄마가 일년에 겨우 한번 처가에 가는 날이면 하루종일 집에서 씩씩거리며 엄마 돌아오는 시간을 초세고 있습니다. 한시간이라도 늦으면.. 그날은 잠 다 잔거죠.
엄마도 저희 남매의 말을 들어주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우리들이 어릴때 엄마가 아파서..
그리고 사고능력이 떨어져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을 좀 더듬어가며 말하던 편이었습니다. 단어들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거든요. 좀 느린편이었고.... 아빠가 없을 때는 아빠의 싫은 점을 조목조목 얘기합니다.
그러나 저희 표정이 어둡거나 힘들어보이는 날에도 그런 상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었습니다.
무슨 고민있니? 무슨 일 있었니? 라고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친구네도 그렇고 딸과 엄마사이에 돈독한 뭔가가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다시 발병했습니다. 뇌출혈로요.
그렇게 많은 수술들, 더 어려운 수술들도 이겨냈었는데 이번엔 이기지 못하고...
한달여를 병상에서 말한마디 못하고 우리들도 못알아본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있을 때 그렇게 괴롭히던 아빠. 돌아가신 뒤엔 모든 추억은 아름답다는 건지..
엄마를 괴롭히던 얘기는 일언반구없이 자기가 잘해준 것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엄마에게 잘못한 것, 실수한 것만 기억합니다.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룬뒤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는 말.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엄마와 트러블이 있었답니다. 학교갔다 연락없이 저녁 아홉시에 들어갔었던 적이 있었죠.
들어가자마자 현관에서 엄마에게 따귀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상스러운 욕까지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부터 제가 삼일을 밥을 안먹어서 엄마를 상처줬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냐고 갓 24살이 되었을 때
상복도 못벗은 채 그 얘기를 하더군요.. 어떤 죄책감을 갖고 살라는건지... 정말 잔인하더랍니다.
돌아가신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아빠는 엄마의 묘에 하루같이 빠지지 않고 갑니다. 신문사에서 취재를 올 정도로요.
살아있을때는 생전 하지도 않던 "사랑해"라는 말이 엄마의 묘앞에 써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죠..
오빠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어릴때부터 형제들에게 맘에 들지 않는 일 있으면 말 몇마디 하다 바로 주먹 날아옵니다.
동생은 좀 고분고분한 성격이라 덜 맞았지만 저는 그런게 너무 싫어서 많이 싸웠습니다.
싸웠다는 것도 제가 말 몇마디 대들면 주먹으로 끝나는 일 같은거요.
그리고 여자문제도 워낙 지저분해서 연상의 언니와 사귀는 동시에 제 동갑의 애를 임신시켰습니다. 그때 군대에 가 있을 때라 저까지 말려서 참 말이 많았었죠. 그때 제가 당했던 얘기도 같이 해서 애궂은 사람들의 피해는 말릴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됩니다.
어릴때부터 많이 맞아본 애들이 폭력이 무딜 것 같죠.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말한마디에 돌아오는 폭력적인 행동을 상상하며, 그 상황자체가 무섭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상대방이 제게 화내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컥합니다. 눈 마주치는 것도 무섭고,
큰 소리나는 것도 무섭습니다. 청소기 소리도 무섭고 믹서기 소리도 무섭습니다.
아무리 흥겨운 음악이라도 크게 틀어져 있으면 무섭습니다.
초등학교 다닐때 그자식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이클잭슨을 좋아하더라구요.
비디오가게에 마이클잭슨 콘서트 비디오가 들어올 때였습니다.
어느날 제게 비디오가게에 가서 주소를 허위로 불러주고 비디오를 받아오라고 시키더랍니다.
매가 무서운데다 그런걸 시킬때는 무척 상냥해집니다. 그 상냥함에 감동해서 시킨일이 나쁜 일인지도 모르고
비디오 가게에 갔죠. 허위로 주소를 부르고 전화번호를 불렀습니다.
가게주인이 잘못부른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해보더군요.
당황한 저는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 전화번호를 다시 알아오겠다며 가게를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나와서 비디오를 들고오지 않자 인상을 구기고 물어보더군요. 왜 안들고 왔냐고.
주인이 전화를 직접 해봐서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주먹을 날리더군요. 무서워서 도망쳤습니다.
어두운 밤이었구요.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등을 맞아서 넘어졌습니다.
그때 한시간이 넘도록 동네 개똥이 묻은 바닥을 기어다니며 맞았습니다. 엉엉 큰소리로 울면서 계속 기어다녔지만 신경도 안쓰고 계속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코피는 이미 흐른지 오래고..
분이 좀 삭혔는지 일으켜세우더군요. 입술은 터져서 피가 나고,
얼굴은 여기저기 멍들어있고 온몸은 아프고 눈은 울어서 붓고.
자기도 생각없이 때렸는지 얼굴을 보니 아차싶어하더군요. 그때부터 살살 달랩니다.
네가 제대로 못해서 자기도 속상했다는 둥,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는 둥 미안하다며 달랩니다.
겁에 질려있다 그런 소리 들으면 감지덕지 용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엄마아빠한테 일러봤자 다음 엄마아빠가 외출할 때 어떻게 되는지 뻔합니다.
그 이전에 이렇게 입술이 터지고, 멍든 얼굴을 본 엄마아빠도 넘어졌어하는 허술한 핑계에 어 그랬어? 하고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에.. 제가 오빠한테 잘못한 일이 있으면-오빠 팝송테이프에 잘 못 덮어녹음을 하는 식의 실수- 엄마아빠는 아예 집을 비워줍니다. 오빠한테 잘못했으면 빌라구요. 그 동안 무슨일이 있는지는 무관심합니다. 오빠가 때린다고 말해도 네가 맞을만해서 맞았다고 합니다.
점점 성격은 어두워졌고 학교에서도 따돌림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선 남자애들에게 쉬는 시간마다 맞았고, 한번 따돌림 당하니 낙인이라도 찍힌 듯 여자애들도 괴롭힙니다.
아무 애나 필통을 가져와서 제 자리에 놓고 갑니다. 누구건지 이름보려고 열기라도 하면 도둑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어느순간에는 정말 도둑이 되어 선생님앞에서 혼나고 있는 제가 있죠.
학교에선 학교애들에게 맞고 집에 오면 오빠한테 맞고 많이 불안하던 시절입니다.
학업이 잘될리는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숙제안해오는 머리나쁜 문제아였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일이 생겼던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처음엔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지....
엄마가 뇌종양으로 처음 입원했을때부터였는지 그 좀더 전이었는지..
점점 스킨쉽이 많아졌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집을 비워서 저도 많이 불안했었고
그게 오빠의 애정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쁜짓인지 몰랐었던 것같아요.
어느순간 내 가슴을 만지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발가벗고 절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갔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 즈음에요.
틈만 나면 건드리려고 했었죠. 싫다고 하면 맞았고 부모님은 집에 없었습니다.
혼자 숨겨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을즈음 그놈친구들을 데려와서 놀고있더군요.
언뜻 들리는 소리가 "처음 넣었더니 아파~ 아파~ 하던데?"하면서 제 신음소리를 흉내내면서 히히덕거리는 말들.
그때 그게 나쁜 짓이란 걸 처음 알았지만..
아픈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 무서웠습니다. 네가 맞을만해서 맞은거라고 말한것처럼..
네가 당할만해서 당한거라고 말할까봐 무서웠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구요..
깡말라서 또래친구들이 입던 쫄바지가 안맞을 정도였던 저는 그즈음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살이 찌면 안건드릴거라고 생각한거죠. 그다음에 절 볼때마다 넌 왜 점점 살이 찌냐면서 흥이 잃은 듯 말했고 그 다음부터는 점점 횟수가 줄어들더니 어영부영 말도 없이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죠.
엄마가 퇴원하고 2년즈음 있다 우리는 또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서로 얼굴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뒤 4년뒤 어쩌다 화해할 기회가 생겨 다시 말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 버릇이 여전하더군요.
평소에 놀때는 명랑하던 그놈이 맘에 안들기면 하면 또 손이 올라가더군요. ..
네살 차이가 나는데다 워낙 강인하게 태어나서 185센치가 넘습니다. 아무리 반항을 한듯 맞으면 그대로 턱이 돌아갈 정도입니다.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방을 내가 쓰냐 네가 쓰냐하는 사소한 문제로 제가 다시 얻어맞게 된 뒤로.. 다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가 다시 폭발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엄마의 첫번째 제사날이었습니다.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러 오자 정종을 들이부으며
다시 우리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고 그렇게 싫어하고 사이안좋던 친척들에게 우리들의 험담을 지나치게 하더군요. 혼자 피해를 입은 양. 대화도 되지 않는사람이.
친척들은 집안일은 제 몫이라며 다른 형제에게는 말도 없이 저만 몰아붙였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여자로 태어난게 불만이었고, 어릴때 설날때 오빠, 남동생은 세뱃돈 받으러 갔을 때 전 집에서 제사상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런일들이 누적되어 전 맘에 상할때고 상해있었고 그런일이 워낙 쌓여 오빠도 상당히 불붙어 친척들이 가고 난 뒤 둘이 서로 술병을 던져가며 싸우더군요. 상스러운 욕까지 써가며 둘은 싸웠고 오빠는 집을 나갈 것 처럼 뒤돌아 나가기에 이건 아니다 싶어 이러지 말라며 그 냉전중에도 제가 잡고 말렸습니다. 그 순간 눈이 번쩍하더니 깜깜해지더이다. 안경은 부서져서 날라가있고 저는 벽에 부딪혀있는데
"너는 입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신발년아"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제 방으로 가더군요.. 그때 맞은 턱이 전치4주 나오더군요. 턱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맞았습니다. 더 웃긴건 식구들 사이에서 맞았는데 아무도 괜찮냐라고 물어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때 마음을 접었습니다. 우린 안되는구나.
그리고 저는 바로 짐을 싸서 나왔고 3개월 정도 자취를 했으나 하필 운도 없게 그때 취업한 회사에서 월급을 한번도 받지 못한겁니다. 어려워지는 경제사정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왔지만 그놈에게는 치료는 커녕 사과한번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동생
동생은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만 같아 불쌍하기만 합니다. 저라도 잘해줘야 할텐데.. 저도 쌓인게 많아 공격적인 성격으로 자라고 말아 동생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못해주고 있죠...
우리집에 태어난 것 같지 않게 심성이 착하고 성실하지만.. 워낙 치여 살아서인지 속에 품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간을 모면하려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싸움에 휘말려 맘고생하는 동생을 보면.. 안스럽기만 합니다. .
저는 이제 이 가족에게 있어 방관자가 되려고 합니다.
무언가 해보려고 했을때 싸움이 나지 않은 적이 없죠.. 아빠가 던진 술병에 맞고, 소주를 뒤집어 쓰고.. 던진 병에 찔려 발과 무릎은 상처투성이입니다.
피해의식, 그리고 사람 특히 남자를 못믿겠습니다. 남자는 모두 폭력적인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결혼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구요.. 인간관게도 좁고 얕기만 합니다.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사람과 사람이 맞지 않는거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저 사람이 제게 한 실수가 잊혀지지 않는걸 보면 전 역시 아빠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자신이 싫기만 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젠 방법이 없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