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의 마지막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북 핵 시험 발표 성명, 분석과 전망-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 저녁, 하늘이 열리고 넉넉한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시점에 방송 3사는 북의 핵 시험에 관한 외무성 성명을 속보로 알리고 있었다.
북 외무성은 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조선중앙TV 등 북의 대표적인 관영매체를 통해 “위임에 따라 자위적 전쟁억제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과 관련하여 조선의 과학연구부문에서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 시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성명은 이와 함께 “조선이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한다는 것과,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동시에 밝혔다. 7월 5일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설’로만 보도되었던 핵 시험에 대한 북측의 첫 반응이 나온 것이다.
외무성 성명 내용 집중 분석
이번 외무성 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의 극단적인 핵위협과 제재 압력에 따라 방어적 대응조치로서 핵 시험을 하겠다는 것과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북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북미 적대관계 청산과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가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UN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 그에 따른 미국과 일본의 추가 제재 움직임 등 대북 강경조치들이 단계적으로 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 선택을 미국에 요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이번 성명에서는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먼저 ‘위임에 따라 성명을 발표했다’는 문구는 북 사회의 최고 기관인 국방위원회의 승인과 결정에 따라 이루어 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과학연구부문에서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 시험을 하게 된다’고 밝히며, 이번 핵 시험이 군사적 대응뿐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 권한을 명시하며, 국제 사회의 우려에 대응하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이다. 또한 ‘핵무기보유선포는 핵 시험을 전제로 한 것’이라 밝히며 2005년 2월 10일 북의 핵 보유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조치가 내려진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것은 핵 보유 국가로서의 위상과 입장에 따라 향후 행보를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며,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 외무성 성명에 대한 관련국들의 반응
북 외무성 성명 발표 이후 CNN, 로이터 통신, AP/AFP 통신 등 전 세계 언론들은 관련 사실들을 긴급히 타전하며 관련국들의 대응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도 반기문 UN 사무총장 사실상 내정 보도와 서해대교 추돌 상황 등과 더불어 톱뉴스로 이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멕코멕 국무부 대변인이 ‘용인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공식 논평하였으며,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주 도발적인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럼스펠드 국방 장관은 ‘핵 실험 시 아주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또한 아소다로 외상, 아베 신조 총리 등이 나서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국제적 공조를 통한 추가 제재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EU,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도 담당자들의 논평이나 성명을 통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관영 매체를 통한 사실 보도만 하고 있을 뿐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였고, 4일 오전 관련 장관들이 참가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를 거쳐 외교통상부 이규호 대변인이 ‘핵실험 계획을 즉각 취소할 것을 촉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편 UN 안보리 의장국 일본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안보리 회의는 미국의 볼튼 대사가 ‘예방외교’ 차원에서 전략 마련에 나설 것을 제안했으나, 왕광야 중국 대사는 6자회담 틀을 통한 대화를 강조하면서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북은 이번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나?
이번 북의 외무성 성명은 철저히 미국에 맞춰져 있다. ‘미국의 날로 가증되는 핵전쟁위협과 극악한 제재압력책동’,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제2의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 ‘온갖 비렬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제재봉쇄를 국제화’, ‘저들이 정한 시한부내에 우리가 굴복해 나오지 않으면 징벌하겠다고 최후통첩’, ‘반공화국고립 압살책동이 극한점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정세’ 등 성명에 나오는 문구들은 철저히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다. 북은 94년 북미기본합의, 2000년 조미공동코뮤니케, 2005년 9월 6자 공동성명에서 확인한 ‘북미 적대관계 청산’ 의지가 없는 것으로 최종 판단하고 북미 직접 협상을 위한 마지막 정치 대응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은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미국의 압박 정책 등에 맞서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핵무기 보유 국가에 대해서는 군사력을 발동한 예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과 행동이 없으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성명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협의되고 있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라이스 국무 장관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 발언, 11월 7일 미국 중간 선거 등의 정치 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발표된 것으로 예측 된다. 다시 말해 BDA 계좌에 대한 금융 제재 해제를 북에 대한 적대 정책 철회 의사로 간주하고 있는 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담아 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라크, 이란 핵, 레바논, 남미의 좌파 블록 강화 등과 더불어 북핵 문제에 뚜렷한 진전이 없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중간 선거를 앞두고 부시 행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상황 속에서 해결의 열쇠는 미국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중간 선거 이후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며 대북 추가 제재 움직임을 가시화 할 것에 쐐기를 박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북 외무성 성명은 한국과 중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메세지 성격도 있다. 한국 정부는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대북 지원을 중단하며 남북 당국자 회담을 스스로 닫아 버렸고, 미국의 금융제재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법집행’문제로 양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에서도 BDA 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보다는 ‘물량공세’를 통한 해법 마련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또한 미국 설득에 미온적인 상황이다. 이런 한국과 중국 정부가 다음 주 한일, 중일,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주요한 이슈로 다뤄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은 좀 더 가시적인 대미 설득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은 성명 형태의 발표를 현실화 할 것인가? 기간 역사적 경험상 북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 언술 행위로 끝낸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번 성명 발표 후에 미국이 가시적인 ‘제재’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북은 일정한 시기를 선택해 ‘핵 시험’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기는 11월 중간 선거 직전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라이스 장관의 ‘6주 기간’에 대한 화답일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전망과 대응
- 미국은 북한의 핵 시험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할 것인가?
현재까지 미국은 ‘레드라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북의 핵 시험 시 미국이 해상봉쇄, 정밀 폭격 등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상 미국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핵 시험을 빌미로 북에 대한 해상봉쇄나 선제 정밀폭격을 진행한다면 당연히 북은 거기에 대응할 것이고, 한반도는 국지전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예측하듯이, 한반도에 국지전이 발생한다면 북측의 피해 못지않게 남측의 피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함대와 일본의 주일 미군기지 또한 안전한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력 사용을 동의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현 상황이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감내할 수 없다. 2,500여명 이상의 미군이 죽고, 300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 이라크 전쟁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또한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거기에 이란의 핵 개발 또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의 핵 시험에 대한 일정 정도의 추가 제재 조치는 가시화 되겠지만, 정밀 폭격 등의 제한된 국지전이 발생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물론 핵 시험 이후에 북이 핵물질의 해외 이전이나 탄도미사일에 장착된 핵 시험 등을 시도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북 또한 이번 성명에서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한다고 밝히고 있다.
- 북의 핵 시험 이후 한국, 일본, 대만 등의 핵무장화가 가속화 될 것인가?
어제 외무성 성명 발표 이후,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북의 핵 시험 후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 등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현재의 동북아시아 정세 구도를 전면 재검토 하지 않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 현재 미일, 한미 동맹의 구도,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의 기본 노선, 중국의 입장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미국이 북의 핵 시험을 저지할 수는 없지만, 미국은 동맹국들이 독립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 북의 핵 시험 이후 중국의 선택
북의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북중 관계 균열을 예고하는 언론의 보도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북핵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미국과 한국 등은 중국이 북에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중 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편향된 분석이다. 북은 자국의 안보 문제를 중국에 위임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중국 또한 북이 자신들에게 의존적인 대외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현재 중국은 2008년 올림픽 개최, 2010년 상하이 국제무역 박람회 등을 통해 경제 도약을 이루고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국가적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현재의 구도가 붕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으며, 미국에 대응하는 동북 지역의 구축지로서 북이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북이 핵 시험을 한다면 일부 추가 제재에 동의를 표할 수는 있지만, 무력 사용을 포함한 전면 제재에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 한국 정부의 선택. 전면적인 대북 정책의 조정을 선택할 것인가?
문제는 한국 정부다. 그 동안 다양한 선택지를 스스로 줄여온 한국 정부는 현재 한반도 위기 국면에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특사 파견을 통한 남북관계의 복원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게는 그럴 의지도, 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의 핵 시험 이후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 및 개성 공단 시범 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전면 폐기를 감내하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이 보이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답답한 인식과 판단은 우리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금까지 나온 북의 입장은 간단하지만 분명하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북미관계 정상화에 성실히 임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번 외무성 성명에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 징표로 북은 미국의 BDA 계좌 동결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면 북미 양자회담을 열어 금융제재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 관계가 깨진 양 당사국의 치킨게임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 해결의 실마리도 보인다고 했던가?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 것은 ‘상호 존중’의 원칙을 다시 되돌아보며 출발해야 한다. 수 차례 북미간 합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상호 존중과 동시 행동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핵심은 BDA 계좌 동결 해제 문제이다. 상대방이 패를 보이면 그에 상응하는 패를 던져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당국은 ‘6자회담 복귀’와 ‘BDA 계좌 동결의 일시 유예’를 동시에 선언해야 한다. ‘일시 유예’는 미국의 금융 제재를 완전히 푼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중단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북과의 대화 의사를 천명하는 계기가 된다. 북 또한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며 회담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음으로는 6자회담과 별도의 북미회담을 마련하여 금융제재 문제와 북미간 제반 현황에 대해 협의하는 테이블을 구성하여 논의한다. 이와 동시에 6자회담에서는 9.19 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행 계획을 협의하고 확정한 후, 관련국들이 철저히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는 바로 이런 내용이 담겨야 한다. 북의 요구 상황과는 거리가 먼 다른 방식의 ‘당근 정책’은 빛을 발휘할 수 없다. 이를 위해 한국과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한국정부는 우리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미국을 설득하고, 북에 특사를 파견하여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7천만 민족의 평화적 생명권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시대 외교적 목표이다. 평화적 생명권과 한반도 비핵화를 어떤 내용으로 담을 것인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 담당자와 관련 전문가들의 진지하고 책임 있는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06.10.4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