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혹이 하나 더 생겼덴다. 더 큰거. CT 촬영을 해봐야 된덴다"
엄마 아빠 건강검진받으러 갔을때 초음파랑 각각 마치시고 오신후, 어두운 표정으로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전까지는 다 끝날때까지 읽으려고 준비해온 공부할것들과, 인생수업이란 책을 읽고있었는데 그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년전 엄만 경계선 난소암이였기에 암이 퍼진거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안할수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였다. 아버진 나타나시더니, 혹이 위에도, 장에도, 전립선도 좀 부어있다 그러고...
내 머리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평심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꼬레 또 그쪽으로 공부한다고 그런걸까... 몇십가지의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내마음은,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그 상태... "걱정"의 상태, "불확실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걸 다시 상기해주는 순간이였다...
혹시나 이거면 엄만 어떻게 되지?
혹시나 저거면 어떻게 되는거지?
난 어떻하지?
왜 내가 유지하고 있던 평심을 지킬수는 없는거지...?
몇분동안, 겉으로 들어나진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회호리 바람이 왔다가 갔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그 회호리 바람은, 지금 내가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계속 있었을거 같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더, 그 불확실함에, 그 걱정의 근원이 되는 불확실함이라는 암흑속에 어떻게 평심을 되찾을수 있는지 어느정도 깨달은거 같다...
사실 불확실함이랑 걱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무엇이 불확실한가에 따라 걱정을 할수도 있고 행복의 고민을 할수있을것이다.
우린 보통 불행의 가능성을 지닌 어떤 한 불확실한 상황에 걱정을 한다. 그 불행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겠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의 가능성 부터, 소중한 것의 상실, 시험 낙제... 이모든것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걱정을 하게 하고 평심을 잃게 한다...
아... 그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즐기거나, 걱정을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불행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어떤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별로 없을거 같다.
한가지 좋은 예를 들어볼까 한다... 내가 "체험"(?) 한거다 4년전에...
학기 내내 공부를 안했다. 시험은 1주앞으로 다가와 있는데, 할거는 정말 산더미 같았다.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해야되고, 시간의 소중함이 그때 처럼 리얼하게 다가온적이 없다. 하하. 이걸 벼락치기의 전영적인 예라 해야되나..??
어쨌든, 난 스트레스를 받을데로 받고있었다. 받을만 하지. 머리도 안좋고, 공부도 잘 못하는 주제에, 벼락치기를 하려 하고있었으니...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난 가뜩이나 밤도 못새는데. 놀면서도 못새는데... 너무나도 현실이 눈에 뻔히 보였다.
낙제. 영어로는 FAIL
싫었다.
하기 싫었다...
하지만 도저히 공부를 할수가 없었다. 이과목을 하고있으면, 저과목이 걱정되고 저과목을 공부하면 이과목을 까먹은거같고... 정말 그래서 도저히 공부를 못할거 같았다. 아니 못했다...
도저히 평화란 단어를 찾아볼수없었다. 내마음엔...
도저히 안되겠서서, 내 친구한테 조언을 구했다. 도저히 내 마음이 갈팡질팡한다고 어떻게 해야하냐고.
그때 그 친구는 말해주었다.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보라고.
난 "왜"이리 갈팡 질팡 마음을 못잡나?
공부할게 너무 많은데 다 할수 없으니까.
"왜" 이것이 갈팡질팡 마음을 휘젓나?
공부를 다 못하면 시험을 망칠테니까
"왜" 시험을 망치는 생각이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드나?
시험을 망치면 낙제 하니까
"왜" 낙제하는 생각이 마음을 그리 휘젓나?
낙제하면 쪽팔리니까. 낙제하면 한명의 실패한인간으로 남을테니까
"왜" 그게 싫나?
그거 좋아할사람있나? 난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뜻이고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으니까.
결국 내 마음을 그리 괴롭히는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쪽팔림"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내 모습이였다...
결국 난, 내 노력이 부족하고, 만약 정말 노력이 진정으로 부족해서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가 혹시라도 온다면 그걸 막으려 했고 또 인정하기 싫었기때문이란걸 알수있었다... 받아드릴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을 휘젓는건, 이같이 설명된 나의 용기없는 모습에 뿌리를 두고있었다... 난 어쩌면, 알고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이만한 노력으로는 통과할 가치가 없는거라는걸... 그래서 더더욱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결국 걱정이란건,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함이란, 결국 상황이 일차적인 원인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용기 없는 모습이 일차적인 원인인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 받아드리기 싫은, 부족한 그런 마음상태를 표면으로 내비치는것이 상황이지, 상황 자체가 걱정이나 불안함의 근원이 되진 않는다. 물속에 바위가, 물의 깊이에 인해 가려지지만, 물이 빠지면 바위가 드러난다고 해서 애초에 없던게 아니듯이...
결국 난 그때 벼락치기를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 자존심도, 욕심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것도, 이 모든것을.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정말 근본적인 이유에 의미에 두고, 공부라는거, 배움이라는 것에서 중요한 뿌린데로 거두는 그 원칙을 받아드리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용기없는 내모습에 솔직해졌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다 내려놓고, 원칙을 받아드리기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그러고 나니, 정말 평심을 다시 찾을수있었고, 더이상 통과냐 낙제냐라는 이유가 아닌, 결국 내자신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보게될 환자를 위한 공부기에, 내가 실력이 모자라다면 그걸 보충할 기회가 될것이고(낙제를 한다면) 통과를 한다면 다시한번 기회를 얻는거라 생각됬다...
다행히도 통과를 했다. 하지만 내 기쁨은 통과에 대한게 아니라 내 자신에 솔직할수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 행복은 이미 내 욕심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걸 인정하는 용기를 가졌을때 부터 시작됬다. 물론 기쁘기도 했다.
엄마가 초음파 결과에 대해 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것도, 그런 것이다. 난 받아드리기 싫은, 아니,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다. 죽음이란건, 나한테이건 어머니한테이건 너무 두려운거였다.
만에 하나, 그 간에 붙은 혹이, 2년 반전 경계선 난소암에 인해 전위 되서 생긴것이라면, 그건 훨씬 더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고, 난 그걸 받아드릴 준비가, 용기가 없었다. 그건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 일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건"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상황 가운데 평심을 얻을수있었던건 이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건,
이 우주안에 일어나는 모든일이 일어나는 시기와, 또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통치하는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거. 그래서 이세상에 일어나는 모든일은, 특히나 내가 생각해서 나랑 깊은 관련이 있는 일들, 불행한 일들과 행복한 일들의 시기와 때는 내가 정할수 없다는 그 현실을 받아드린데서 시작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생각할수도 있겠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래도 우리가 바꿀수있는 일들, 영향력을 행사할수있는 범위가 있는거 아니겠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건 그 범위를 벗어난 좀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거다. 예를들어 내가 샤워를 언제하는지를 결정할수 있겠지만, 샤워를 하는 순간 중요한 전화가 오는건 내가 막을수가 없다. 또는,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나서 뜨거운물이 안나오게 되는것도 막을수 없다. 내가 건강에 온 힘을다해 노력을 해도 어느날 병이날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수도 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수있는일이 아니다.
얼마전 너무나도 불행한 대형 사고... 그분들중 과연 몇이 그 사고를 당할거라 알고있었을까...?
어쨌든, 모든일에 시기를 정하고, 또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통치하는게 내가 아니라는걸 받아드리는건, 믿음이 필요하다. 마치 환상에서 벗어나는거 같은 느낌이라 표현 해보고싶다. 그 모든걸 통치하는 무언가가 있는것에 대해선 부정할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통치하는 무언가가, 하나님이다, 아니면 알라신이다, 아니면 하느님이다, 그런것에 대해선 아직도 세계에선 논란이 있다.
두번째는 우린,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고 간혹, 한번쯤은 깊이있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린 태어나서 죽는다. 그건 불변 원칙이다. 하지만 우린 죽음이란것에 대해, 그 현실에 대해 너무 망각하고 하루하루를 산다.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살것처럼말이다. 이 지구에, 영원히 남아있을것 처럼. 죽음은,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수도, 늦게 올수도, 적당한(?) 시기에 올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 아니, 우리 모두가 그걸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렇다고 내일 죽을사람처럼 울상으로 , 심각하게 살아라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영원한건 없다는걸... 이세상에.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죽음의 문턱에 섰을때 어떤 느낌일까... 그때 내가 후회할것들은, 그때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것들은, 그때 내가 깨닫게 될것들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때 나의 가치관은 어떻게 바뀌어져 있을까? 지금 나의 가치관이랑 비슷할까?
난 호스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식도 암이 걸려서 몇주 남지 않은 환자와 얘기를 나눌수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당신이 지금 하고있는 일들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라고 물었더니 그분께선
"인간 관계 정리 이죠... 그동안 용서 못한 사람 전화해서 관계 회복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돈을 더 벌어야죠. 지금 조금이라도 더 일해서 인정 받아야죠. 조금이라도 쾌락을 더 느끼기 위해 이것저것을 한답니다. 이런 대답은 찾아볼수 없었다. 그분뿐만 아니라 간호사 말씀을 들으니 그것은 공통점이랜다. 사람들과의 관계 정리...또 함께있는것.
인생수업에서 말하듯이, 우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우린 우리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별함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면, 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모든사람에게 그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왜 후회를 할까? 죽기 전에, 자기가 상처준사람에게 왜 용서를 구할까? 왜 용서를 해줄까? 왜 그토록 인간관계가 많은 사람들의 우선순위 1위를 차지 할까? 그건 결국 우리 삶은 다른사람들과의 interaction 이고 그 안에 사랑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사랑하기위해 태어났다는 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때 우리가 생각해서 중요하다 생각했던것들은 소중함의 가치가 떨어지기 보단,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내가 돈을 잘번다면 그건 나의 화려한 미래를 위한 욕심보단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데 쓰이는 도구가 될것이다. 내가 실력있는 변호사라면 나의 그 실력과 지식은, 정말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는데 쓰여지는 도구가 될것이며 돈이 되는거라면 물불 가리지 않게 되는 도구가 더이상 아닐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대한 가치의 정도는 변함이 없지만 의미는 확연히 달라 진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특별하고 소중하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내가 성격파탄자이건 술주정뱅이건, 마약중독자이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누구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건 우리에게 달려있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 처벌은 받을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지는건 아니다. 우리가 구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도덕적으로 옳은걸 하지 않는 다고 해서 그사람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게 되는건 아니다. 사랑하기 힘든 대상이 될진 몰라도, 그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
시작은 불확실함에 대한 마음상태에 대해쓰다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내가 설명한 이 2가지가, 불확실함과 또 지금 일분 일초를 생활하는데 평심을 가지고 행복할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마음의 밭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아가면
난 걱정이 되었다.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기억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에 이를거라는걸... 그리고 그 시기는 내가 정하지 않는다는걸 잠시 잊고있었다는걸 기억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해가 안가지만, 받아드려야 하는 현실이란걸 마음속으로 알고있었다. 나 또한, 늦게 가긴 하겠지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우리 모두는 똑같은곳으로 가지만, 단지 그게 늦혀지고 빨라지는거 뿐이라고... 슬프긴 하겠지만 슬프겠지만 좀 더 빨리 가기때문에 엄마와 나와 행복할수있는 시간을 박탈 당하는건 아니다. 더 달콤하고 행복하게, 더 사랑을 주고 받으며 보낼수있다. 나에게도 찾아오는게 죽음이라는걸, 누구에게나 찾아오는게 죽음이라는걸, 그리고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는걸 마음속 깊이 인식하고 있을때 난 평심을 되찾을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심을 다시 찾았을때 엄마의 걱정과 마음을 더 헤아려줄수있었으며, 옆에서 힘이 되줄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아니던 신경안써서 마음이 편안한거와, 내가 앞서서 설명한것을 인식해 평심이 있는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엄마는 내가 옆에있는것만으로도, 편해 하시고 행복해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불확실함을 없앨수있다는 그 환상을 버렸을때, 우리가 시기와 때를 정할수있다는것을 내려놨을때 비로소 난 지금 현재에 충실할수 있었고 현재를 행복하게 보낼수 있었다. 현재가 곧 과거이고, 곧 미래이기 때문에 현재에서의 행복은 예전의 행복이였고 미래의 행복이다.
결국 어머니는 CT를 찍으셨고, 그걸 기다리는데 몇일이 걸렸다. 아버지도 조직검사를 하셨고, 전립선 검사도 하셨다. 누난 많이 걱정이 된 모양이다. 내게 말했다. "준우야 불안하고 걱정되 죽겠어" 이말을 했을땐 누나와 나와 엄마가 모처럼 백화점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을때다...난 누날 위로 했다.
"누나, 바뀌지 않는 상황, 우리가 어쩔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누나와 나, 엄마가 행복할수있는 권리와 기회를 박탈 당하지 말자. 지금 우리 옆에 계시는 엄마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 기분이 안좋아질수도 있고 찝찝하고 더러워 질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잠시 과정일 뿐이다.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입고있었던 환상의 옷을 벗는 과정이라 할수있겠다. 시간이 지나면 평심이 찾아온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선택권과 마음가짐으로 행복을 만드는 능력이다.
보통 우린 cause ====> effect 개념에 젖어 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큰 행복을 만들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걸 잊은체...
항상 먼가가 일어나야 거기에 행복이 따른다고 믿고 있다.
상을 받아야 행복하고
돈을 잘 벌어야 행복하고
사랑받을만한 일을 해야 사랑받고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을 주고
깨질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연인관계를 깨버리고
물론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건
effect =====> cause =====> effect 가 될수 있다는거다
지금 상황을 감사함으로써
내 옆에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함으로써
불치병에 걸렸지만 사랑의 소중함과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갈수있는걸 알게 된것을 감사함으로써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따뜻한 가족과 사랑을 나눌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것에...
내가 잘해서 , 능력이 있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기쁘게 함으로써 행복한 일이 될수있는걸 믿음으로써
내 여자친구가 사랑받을만한 일을 도저히 안하지만, 그냥 여자친구 그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걸 , 특별하다는걸 받아드리고 먼저 사랑의 행위를 함으로써 여자친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거고
우리 주위엔 행복을 느끼게 하는것들이 얼마든지, 그것에 대한 자족을 하면서 우린 비로소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될대 주위 상황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상황으로 변신을 하는것이다...
우리 삶에는 불확실함은 항상 존재하고 그건 아무리 없애려 해도, 내가 조정하는것이 아니기에 받아드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란걸 인식하며, 우린 우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남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걸 깨닫기 시작할때 지금 우리에게 일분일초는 더욱 소중해질것이다. 그리고 감사함과 자족하는 마음으로 행복을 일궈낼수 있는 선물은 누구나 가졌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수 있는 우리는, 정말 복받은 존재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자. 웃자. 농담도 하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