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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정한종 |2006.10.10 18:03
조회 18 |추천 0

며칠 전, 새로 만들었다는 중고등학교 동창회 명부를 받았습니다. 기수별 가나다순으로 들어 있는 이름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제가 살고 있는 도시로 주소를 적고 있는 그러나 이름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동창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서가에 꽂아둔 오래된 중학교 졸업앨범을 내려서 펼쳤습니다.

 반을 옮겨가며 찾아낸 옛 얼굴과 그 밑에 쓰여진 이름들, 가깝게 지낸 적은 없지만 오래된 기억이 분명하게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꺼낸 김에 앨범을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물에 젖어 두꺼운 표지와 사진을 담은 몇 장이 일그러지고 우그러진, 어머니와 저와 선생님 한 분의 사연이 담겨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치기(稚氣)'라고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책값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비싼 앨범대금을 타낼 자신이 없던 저는 까짓 사진책 한 권 없다고 엄연한 내 중학시절이 부정될 것도 아니라 생각해서 수도 많지 않은 앨범 미수령 학생들과 함께 있기로 해버렸던 것이지요.

졸업식이 있던 날, 어머니는 타지에 있었고 저는 둘둘 만 상장 몇 장을 들고 꽃다발도 없이 앨범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혼자서 쌀보다 보리를 좀더 많이 안쳐 밥을 짓고 시래기와 된장을 쌀뜨물에 풀어 국을 끓여 끼니를 때웠습니다.

 뒤늦게 사실은 알게 된 어머니의 상심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제게 돌아온 것은 격려나 칭찬 또는 미안함을 나타내는 말 대신 엄청난 질책이었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 이놈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어머니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저를 몰아세우셨던지 옆집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시골 동네 소문이란 원래 바람처럼 빠르기도 한 것이라서 한 동네에 살던 중학교 미술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신이 갖고 있던 우리 기수 앨범을 사모님 손에 쥐어 우리 집으로 보냈습니다.

 여름 장마 통에 책을 옮기다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책 모양이 사나워졌다고, 그래서 멀쩡한 앨범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도 함께 해서 말입니다. 어머니는 고향을 뜰 때까지, 그리고 고향을 떠나온 이후로도 오래도록 그 선생님과 사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앞에 꼭 '마음씨 좋은' 다섯 자를 붙였습니다. 앨범을 넘기다 맨 끝 한 장을 남겼을 때 나타난 것은 전체 졸업생들이 모조지 전지 위에 한 마디씩 적어둔 사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게 쓴 글씨를 사진에 담았으니 형체가 분명할 리 없었지만 큼지막한 돋보기까지 동원한 끝에 기어코 제가 적은 한 마디를 찾아냈습니다.

 

'인생은 의지의 투쟁이다' 교과서나 어디 잡지에서 본 구절을 옮겨 적은 티가 역력한 그 글은 사진의 맨 오른쪽 가장자리게 한 줄로 적혀있었는데 나이 열 여섯에 '인생'과 '투쟁'의 의미를 알고나 적었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때 적은 그 구절이 혹 예언적 성격의 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삶의 전 과정이 투쟁의 연속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구나 의지가 동반된 투쟁이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지만 크고 작은 시험과 시련 용케 이겨냈고 또 지금도 곧잘 견뎌내고 있는 걸 보면 사랑이든 용기든 용서든 감사든 그 중 어느 것 하나이거나 그 모두의 조금씩이거나 제 안에서 싹이 트고 자라지 않았으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어보는 것이지요. 공지영의 글을 읽다가 밑줄을 그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이 피어난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물레방아처럼 울어라」 중에서 89쪽 루미의 시(詩)라고 적어두었더군요.

 공지영의 유년에 고난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단발머리 학창시절의 그는 품행 방정하고 성적 우수한 모범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학신문에 실린 시 한 편으로 '단(壇)'에 '등(登)'할 것을 허락 받았으나 시(詩)는 천재들의 몫, 자신은 시를 쓸 재목이 아닌 것 같아서 천재성 대신 노력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그가 거두고 있는 연이은 성공에 비해 그의 이 같은 지나칠 만큼 겸손한 말이 '예의를 벗어나는 과도한 공손함(過恭非禮)'이라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성공에 대해 세상 모두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서도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만은 없었던 듯 작품 아닌 그의 삶과 사람에 대한 호오(好惡)는 분명하게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그의 글을 읽고 이제부터 그가 써내는 것이 진짜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거두고 겪은 수많은 성공과 좌절, 상처와 치유, 미움과 용서는 앞으로의 그를 위해 예비된 고행의 과정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 그는 더 큰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끝이자 다른 길의 시작에 들어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걱정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그가 상처 받기 쉬운 헛똑똑이었다면 이제야 혼자서도 떳떳할 수 있겠다 싶은 믿음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는 진정 새로 돋아난 살과 함께 한결 편안해진 듯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란 애초부터 있지도 않다는 것을 사랑도 미움도 아상(我相)에서 비롯될 뿐이라는 것을 그가 이제는 알아차린 것 같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공지영, 그가 빗방울 하나의 외로움에 마음 두기보다 어느새 도도한 물결 이뤄내는 한 점 물방울의 힘과 능력을 믿게 되기를, 세상은 혼자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가 어느 시절 힘주어 말했지만 그 길은 결코 혼자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그가 가슴에 함께 품게 되기를……

제 간절한 바람 하나 글 끝에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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