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국어 시간에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받은 레포트는 ‘자기소개서’였다. 대학생쯤 됐으니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를 그럴듯하게 써보라는 거였다. 한참 고민하다가 내 몸에 있는 상처에 대한 글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나는 A+의 평가와 함께 학생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발표까지 하는 영예를 누렸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수줍은 자기소개서는 아닐지라도 살면서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화를 되돌려 추억해보고 싶은 맘이 들어 이 글을 시작한다. 예전에 그랬던 것과 같이 인상 깊던 영화에 내 수줍은 소개를 양념처럼 섞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로 말하자면, 중학교 때 종종 갔었던 떡볶이집(차차 얘기하겠지만)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영화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본다.
1. 손오공과 아버지
지금 기억하기로 내가 가장 처음에 극장에 간 것은 5~6세때 아버지 손을 잡고 갔던 아세아 극장이었을 것이다. 청계천에 있는 조그만 극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좋던 개봉관이었다. 봤던 영화는 [서유기]였던 것 같은데 몇 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당연히 주성치의 영화가 아닌 그 이전 영화이다. 주성치가 손오공으로 변하면 얼굴이 예전 보았던 손오공과 비슷한 것 같다.) 다만 손오공의 장난스러운 얼굴과 익살스런 무공만이 기억날 뿐. 사실 이 글에서 손오공을 기억하는 것은 영화 자체보다는 아버지 때문이다. 영화 관람 후 청계천 육교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영화에 등장한 손오공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슉슉 하는 효과음을 섞어서...당시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저 아버지가 잠깐 미쳤나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처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는 중학교 때 중앙극장에서 봤던 [절대쌍교]였던 것 같다. 우연하게도 [서유기]과 [절대쌍교] 모두 중국권 영화이다.
2. 원효로 떡볶이집
초등학교 때는 기껏 봤던 영화가 [우뢰매] 정도였다. 하긴, 주말에 명화극장에서 [오즈의 마법사], [혹성탈출] 같은 명작도 보았었겠지만 말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주변 친구들이 원효로에 끝내주는 떡볶이집이 있다고 했다. 그 집은 떡볶이로 유명한 것이 아니었고, 틀어주는 영화 때문에 유명했다. 그 당시만 해도 비디오 플레이어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떡볶이집에서 하루 종일 틀어주는 홍콩 영화는 실로 대단한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제목이 뭔지도 모를 영화들, 주로 성룡이나 원표의 영화였는데 심지어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보지도 못했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왜냐면 두 시간 동안 떡볶이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 집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마냥 앉아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었는데(제목은 물론 출연자도 모른다.) 실로 황당한 영화였다. 대충 이렇다. 영화 중간쯤 갑자기 어디선가 ‘컷’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가 중단된다! 그제까지 영화에서 당연히 보이지 않아야 할 스탭들이 스크린 안으로 들어온다. 이른바 'NG'가 났던 것. 그리고 그 이후엔 종종 컷 소리가 들리고 영화가 멈춘다. 내 기억으론 그 영화의 마지막엔 온 스탭들이 전부 튀어나와서 샴페인을 터트리며 끝이 난다. 황당한 영화지만 지금 생각하면 주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B 무비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추억이란 대부분 아름답기 마련이니까 더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3. 성남극장의 터미네이터 2
물론 [터미네이터 2]를 가장 처음으로 본 건 서울극장에서였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총 세 번 보았는데, 두 번째가 지금은 없어진 동네 성남극장이었고, 세 번째는 역시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극장에서였다. 그 때는 극장도 급이 있었고 입장료도 각각 달랐다. 게다가 기억하기로 놀라운 것은 서울극장과 여의도극장의 편집본이 달랐던 것. 2000원이나 덜 주고 봤던 여의도극장에서 개봉관 버전에 없던 삭제된 몇 컷을 더 볼 수 있었다. 내가 성남극장을 추억하는 것은 동네의 허름한 극장에 매진이라곤 [터미네이터 2]가 유일했던 까닭이다. 지정 좌석도 없는 터라 영화관에 입장했을 땐 이미 자리가 없었다. 2층이 있었던 극장이어서 2층 난간 앞 통로에 앉아 난간 철봉을 부여잡고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아놀드 옹이 엄지손가락을 펴고 아윌비백!을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복을 입은 고딩들이 약속을 한 듯 손을 치켜들고 엄지를 내밀었던 파릇한 추억이 있다.
4. 대학 강의실 조그만 티비속의 시계태엽 오렌지
대학교 때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두 시간의 수업 중 한 시간은 강의를 듣고 나머지 한 시간은 영화를 감상했다. 그 다음 주엔 먼저 한 시간 지난주에 중간까지 봤던 영화를 감상하고 나머지 한 시간 강의를 듣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수업이었다. 총 다섯 편의 영화를 한 학기 동안 감상했는데 프리츠 랑의 [M], 라스 폰 트리에의 [유로파],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앨런 파커의 [엔젤하트]...이렇게 5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 중에 [시계태엽 오렌지]는 정말 충격이었다. 과장하면 큐브릭이야 말로 내가 영화의 길을 걷고 싶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강의 한 시간이 끝나고 영화 감상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강사가 나가기 무섭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도 그랬다. 이미 보았던 [엔젤하트]를 제외한 나머지 3편은 모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시계태엽 오렌지]는 달랐다. 충격적인 장면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자리를 뜨지 않고 강의실 조그만 브라운관만을 쳐다보았다. 심지어 주어진 한 시간이 지나고 조교가 중간에 영화를 끄려하자 학생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수의 학생들이 한 시간을 넘겨서 그 영화의 전부를 보게 되었다.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다른 예술과는 달리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 좋은 영화다.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더 어렵다.
참고로 기말 레포트로 썼던 [엔젤하트] 영화평은 C+를 맞았다...젠장!
5. 지금의 영화들
큰 맘 먹고 구입했던 프랑소와 트뤼포 걸작선 DVD 중 [400번의 구타]를 통해 성장 영화를 하고픈 욕심을 갖게 되었다. 그전에 쓰던 시나리오는 물론, 지금 쓰고 있는 ‘밝은 사회 기금 조성’도 성장 영화라고 생각한다. 서른이 넘은 주인공이 나오지만 분명 성장 영화이다. 서른이 넘어도 계속 성장하고 싶은 것, 미리 부끄러워하면서 과감히 앞으로 나가는 것, 그래서 성장 영화는 매력 있다.
2003년 처음으로 참석했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봤던 데이비드 맥킨지의 [영아담]도 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시계태엽 오렌지]가 영화에 입문하게 만들고,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400번의 구타]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고픈지 결심하게 해주었다면, [영아담]은 현재 내가 얼마나 세속적인 인간인지 알려주는 영화였다. 그래도 들키지 않는 결말, 그래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최근의 [매치포인트]도 그러해서 좋아했다. (묘하게도 두 영화에 에밀리 모티머가 공통으로 출연한다.)
가장 최근으로는 단연 허우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이다. 아오즈 양과 씨네코아에서 본 이후로 플롯도 없는 이 지겨운 영화를 5번 넘게 본 것 같다. 영화에서 하지메는 그림을 그리고 요코는 글을 쓴다. 현실에서 아오즈 양은 그림을 그리고 르네군은 글을 쓴다. 남녀만 바뀌었을 뿐, 묘한 동질감에 더더욱 열린 마음으로 감동스럽게 보았던 영화, 일본에 대한 영화지만 일본인 감독이 아니기에 묘하게 균형적이던 정서와 오즈에 대한 오마주..[카페 뤼미에르]는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덧붙여..
다 쓰고 보니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를 빼먹었다. 우리 동네 또 하나의 극장인 금성극장에 팬 사인회 참석차 왕림한 이용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 상대로 사인회를 하는 주제에 담배를 꼬나물고 오만 잡상으로 찌푸리며 성의 없이 사인하던 이용식 집사의 모습이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던 건, 벌써 동심을 잃은 시니컬한 어린이면서도 그런 판타지 영화에 빠지고팠던 어리지 않은 어린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