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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길 전령업무를 보곤 본서를 나와서 버스를 기

김용범 |2006.10.12 17:18
조회 55 |추천 0
귀소길


  전령업무를 보곤 본서를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옆자리에 왠 여인이 앉았다. 화장품 내음이 바람에 스치었다. 슬핏 눈길을 돌려보니, 그 향처럼 발랄한 젊은 옷차림이다. 그녀 쪽에서도 내 근무복이 흥미 있는지 회잿빛 와이셔츠에 슬핏 눈길을 주더니, 곧 내 뿔테안경 속 버엉한 얼굴에 흥미를 잃은 듯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번호를 누르더니 입을 연다. 다시 바람은 불어왔고 그녀의 열린 입으로 말소리와 함께 그날 점심 메뉴였을 법한 비빔밥 냄새가 화장품내와 함께 섞여왔다. 제법 역겨워서 울적해지려 할 때 쯤 맞춰서 버스가 오기에 말없이 올라탔다. 다행히 그녀는 따라 타지 않았다.


  내가 탄 버스는 갈 때나 올 때나 칠성시장을 지났다. 창 밖으론 생선 비린내와 비둘기들이 날 반겨주었다. 가끔 구운 닭내가 반겨줄 때도 있었다. 그때면 문득 비둘기가 줄어든 것 같다는 망상이 들기도 했다.

 

  청과물 시장을 지날 때면 청죽처럼 정정히 허리 꼿꼿히 늙으신 어르신들이 권위있는 자세로 버스계단을 오르시었다. 내 외가있는 남문시장 근처의 노인들이 풍이나 실명으로 고생하며 불우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올 때마다 맘이 편한 외가를 내집처럼 드나들던 나였기에, 예전에 근처 장님 아저씨의 ‘저거 몇 번 버스인지 말해주세요!’라는 부탁도 자주 들었다. 다행히 보도블럭 위의 점자블럭은 나쁘지 않게 되어 있었으나 버스는 몇 번 버스라는 안내방송을 해주지 아니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행정에 소년의 분노를 느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는 군역에 있다.

 

  몽상에서 깨어 눈 앞 현실을 본다. 노인이 앉아있다. 목주름은 나이를 속이지 아니한다. 머리가 거의 다 빠져 머리와 목의 경계선이 희미한 노인의 목잔등을 보면 에어리언과 프레데터가 떠오른다.

 

  내가 탄 버스는 흘러 흘러 경북대 언저리를 삐-잉-돌아갔다. 훌륭한 모범생들에 비해 공부할 의지가 결여되어 보였을 낮은 성적표에 면접에서 나를 뻐엉- 걷어차버린 훌륭한 국립대학교엔 내 사촌이 이름만 건 채 반수준비를 하러 학교 도서실에 틀어박혀있다. 그가 그 수렁에 빠지기 전엔 줄곧 그와 경북대 근처에서 놀며 술을 마시곤 했다. 나는 진리 긍지 봉사 아로새겨진 첨성대 석비있는 정문보다 후문 헌책방을 그와 자주 들르었다. 적당히 취기에 찬 얼굴로, 이빠진 옛날 만화들을 둘러보며 미소 짓던 게 엊그제 같다. 새 책 살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이는 행복한게다. 그런 말을 하며 나는 소세키, 고리키, 삼대를 사선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박아두며 이 빠진 만화책에 취해 살며 유치한 철학입문서나 두서없는 역사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납득시키며 입대준비에 매진했었다. 그는 아마 반수에 대한 마음준비에 매진하였을 게다.

 

  한참 술에 취한 어느 날인가, 캔 맥주가 만든 미드나이트 블루에 그는 불현듯 일청담에 투신하며 이렇게 절규하지 않았던가, ‘450원짜리 쿨피스를 안주 삼는 우리 인생은 캔 맥주만도 못하다,’고 맞는 말이다. 실제 내 시급을 계산해 보아도 그 정도는 안 될 것이다.

 

  눈 앞 있던 에어..아니, 노인의 뒷모습이 어느 순간 사라져 주위를 보니, 앉기 좋은 중간 자리로 어느새 쪼르르 옮겨 앉았다. 창 밖을 보니 고추나이트크럽의 녹빛 간판이 나를 반긴다. 몽상 속에 빠져있다 거진 다 온 게다. 나는 대학 때 클럽이니 나이트니 하는 델 가본 적이 없어서 저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나 막연히 생각해 보아도 안 가봐도 좋은 곳이지 싶다. 제목부터 혐오감을 주는 곳인즉, 저길 돈 주고 가는 어른들은 자신을 잃은 자들이 아닐까 싶다.

 

  어느덧 영진전문대학을 다 와간다. 예전 경북대를 다니던 그와 버스를 같이 탈 때면, 그가 한 말이 있었다. ‘경대가고 영진가니까, 경북대에서 우루루 내리고 남은 학생들 거울로 슬쩍 보고 기사가 피식 쪼개더라구’ 히에르라키구조에 잘 적응된 기사이다 싶었다. 자신은 얼마나 잘나서는 버스운전을 하고 있는 겐지 되묻지 않는 인간이다. 엘리트주의의 시선은 엘리트 뿐만이 아니라 엘리트 아닌 이들도 알게 모르게 갖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나는 엘리트가 아니라서 엘리트주의에 물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를, 세상은 목표도 없이 자기 안주에 얽매인 이라 생각하고 말한다. 지위가 인간을 결정하는 세상이니 퍽 슬픈 일이다. 인간적 교류란 혈연을 제외하면 결국 피라미드 안에서만 돌고 도는 그런 것에 불과하단 말인가.

 

  어쩌면 이 시절은 역설적으로 계급 속에서도 폐쇄적 삶의 히에르라키를 깨어버릴 수 있는 인생 유일한 시기가 아닐까하고, 논산 내무실에서, 소방학교에서 그들 준(準)엘리트들이라 하는 이들과 즐겁게 어울렸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들 동기들이 나이 들어 내 기억속의 버스기사와 같은 눈을 갖지 않길 맘속으로 바랬다. 적어도 나는 이 시기의, 마음속의 장벽이 형성되기 직전의 구애 없는 눈을 할 수 있는 한 오래 갖고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류소에서 내려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활짝 핀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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