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1년도 전의 잡지를 빌려왔다. 집에 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그 잡지를 꺼내들고 하나하나 꽤 정성스럽게 읽었다. 주로 글이 많은 잡지여서, 1년이나 지났는데도, 패션잡지의 그것처럼 촌스럽지 않고 그냥 그냥 편한 느낌.
친구 집인 상계동에서 내가 사는 용산까지 오는 전철 안, 나는 서울역에서, 손가락을 바르르 떨 수 밖에 없었다.
독자들이 보낸 편지와 사진들이 담긴 59페이지의 한 사진 안에는 내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만의 독사진, 노란 개나리를 한가지 꺾어서는, 앞으로 내민채, 그야말로 노란 웃음으로, 너무 행복한 내 얼굴이, 1년도 지난 잡지 안에서, 서울역의 문이 닫히는 그 순간에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사진을 기억한다. 아니 그 사진이 아니라 그 날을 기억한다. 나는 그 사진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진을 찍은 그 날을 잊고 살았지만, 나는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해낼 수 있다. 가장 행복했던 날들의 그 순간, 그 파편의 순간.
3년 전에- 내가 아직 대학교 신입생이었을 그 해의 봄에, 나는 그애와 함께 웃으며 지냈다. 그 애만 생각하면 나의 얼굴은 정말이지 개나리처럼 활짝 폈다고, 나는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서울의 노란 밤거리를, 목련이 지던 그날 밤에도, 그리고 파랗게 가로수들이 물들어가던 그 초여름에도,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 개나리와의 사진은, 그애의 자취방이 있던 동네의 놀이터에서 찍은 것이다. 새로 로모를 샀다며 즐거워하던 그애와 디카를 사서 즐거워하던 내가 손잡고 걸어가 그네를 타며 웃었던 그날에, 나는 개나리 한가지를 꺾고선 그애에게 웃으며 내밀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동물원에 가고싶어했다. 하지만 내일이 시험이라는 그애의 말에, 나는 한동안 침울해져있다가, 같이 앉아서 책을 뒤지며 공부하는 척하다가 눈물을 뚝 떨어뜨렸던가. 그렇게 유치하게, 그 날이 아니면 안될 것만 같아서, 왜 그랬는지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그날에, 아직 해가 남아있으니 가자고, 그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동물원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동네 놀이터의 개나리와 한껏 즐거워했다.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아니라, 봄날의 어느 곳에서건, 봄볕에서 그애와 봄햇살을 느끼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그날 동물원에 못가서 미안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이 밝은 개나리의 날과, 그날의 너를.'
같이 보냈던 그 봄이 저물던 그해의 초여름에, 우리는 헤어졌다. 매우 심각하고 또 매우 유치한 이유로. 우리의 사랑은 삼류 영화처럼, 그들은 심각하지만 남들에겐 유치하고 뻔한 이유로, 조각이 난 줄 알았다.
그런 그애가, 1년 전의 잡지에 나의 얼굴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내놓았다. 그런데 나는 1년 후에야 그의 마음을 보았다. 이 얼마나 잔인한 타이밍인지.
석달전에 나는 그애의 장례식에서 펑펑 울고왔다. 친구라는 여자애가 갑자기 찾아와 우는 바람에, 그애의 부모님이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가 누구인지도 말 못하고 그냥 울기만 하다가 왔었다. 그 장례식장에서 그 누구도, 나를 알지못했다.
나는, 나만 그애를 생각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3년간을 잔인하게 그애를 죽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만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나를 밝히지 않았다.
바보, 전화를 하지 그랬어.우리 집으로, 그 책을 보내보기라도 하지 그랬어. 나는 결국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걸어왔다. 우리 집앞의 노란 개나리들도 뚝뚝 노란 꽃잎을 흘리며 울었다.
- 소설이라고 끄적댔음, 실화 아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