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사부님은, 우주라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수도원이 Speculum mundi(세상의 거울)라면 해답은 자명해졌을테지."
"사실이 그렇습니까?"
"세상이 거울이 있으려면 먼저 세상이 모습을 얻어야 할 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철학적인 월리엄 수도사의 결론이었다.
"(...) 다만 웃음이란 육체를 뒤흔들고 얼굴의 형상을 일그러뜨리게 함으로써 인간을 잔나비로 격하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잔나비는 웃지 않습니다. 웃음이란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이성성의 기호입니다." 윌리엄 수도사가 응수했다.
"말은 인간이 지닌 이성의 표징일 수 있으나, 인간은 말로써 하느님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 온당한 것이라는 법도 없지요. 웃는 자는, 자기가 웃는 대상을 믿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악한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은, 악한 것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요, 선한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은, 선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드러내는 선의 권능을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회칙에, stultus in risu exaltat vocem suam (어리석은 자는 웃음 속에서 제 목청을 높인다는 말이 있듯, 인간이 지닌 열번째 미덕은, 웃음이 헤프지 않은 것이다)이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나는 지금 교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이러한 이단적인 교파들이 무식한 민중의 계층에서, 우리는 우려합니다만, 어는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성공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들이 무식한 사람들에게, 기왕에 살아온 것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무식한 사람들 중에는 교리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내 말은 무식한 사람들일수록 파타리니파, 카타리파, 엄격주의파를 혼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원장, 무식한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의 분별력이나 학식을 그리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질병과 가난, 그리고 무지로 인한 눌언과 더불어 삽니다. 그래서 그들 중 상당수에게는, 이단자들의 동아리에 끼는 것이, 그들의 절망을 외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직자에게 완벽한 삶을 요구하기 때문에 추기경의 사저에다 불을 지를 수도 있는 겁니다. 물론 성직자가 가르치는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불을 지르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읽어 내야 하는 것은, 이 땅에 이미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저질러진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목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불가리아 교회와 리프란도 사제의 추종자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제국의 성직자들과 이들의 추종자들 역시 엄격주의파와 이단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국이, 그 반목하는 세력과 싸우기 위해 대중이 지니고 있는 카타리적 성향을 자극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더이까? 내 말은 이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더욱 위험한 것은, 위험하고 불안하고 무식한 세력들을 절멸하기 위해서 제국은 모든 이단의 특징을 한 무리에게로 돌려 그들을 화형대에 세우곤 한다는 것입니다. 원장,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맹세코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착한 삶의 길을 걷는 사람들, 청빈과 정결의 교리를 따르던 사람들이 단지 주교의 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속권에 넘겨지는 것을 무수히 본 사람입니다. 제국의 안위를 위한답시고 자유로운 도시를 위한답시고 무고한 이들에게 혼음과 수간과 파렴치한 죄악의 허물을 들씌웁니다. 내가 알기로 이러한 죗갑의 임자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와 같습니다. 적대 세력과의 분쟁을 야기할 때 이용되고는, 이용이 끝나면 희생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나는 저녁 식사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개운치 않았던 것으로 보아 비몽사몽간을 헤맸던 모양이었다. 옳거니...... 자면 잘수록 더 자고 싶을 터이니...... 그래서 낮잠을 육욕의 죄악이라고 하였겠거니.
"(...) 삼각주의 지류 중에는 중간에서 막혀 버리는 것도 있고 인공의 운하를 통하여 다시 강에 이르는 것도 있고, 처음 그대로 흐르는 것도 있다. 무슨 까닭이더냐? 모든 것을 구속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흐르는 것이다. 제 흐를 길을 제대로 알 수만 있다면, 이로써 제대로 흐를 수만 있다면 물의 일부를 잃은들 어떠랴."
*200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