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있다. 굳이 국제영화제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충분히 국제적인 영화제가 있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제가 있다. 스크린에 비춰졌던 주인공이 당신 바로 옆에서 웃고 울고 할 영화제가 있다. 당신이 보통 일컫는 '한국인'들은 영화에 별로 나오지 않지만, 누구보다 '한국사회'에 대해 정확하게 증언해 줄 영화제가 있다. 영화가 끝나면, 모두 함께 어울려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차라리, 축제에 가까운 영화제가 있다.
그 영화제가 유령처럼 전국 9개 도시를 배회한다. 포천을 시작으로 안산, 마석, 대구, 의정부등을 거쳐 시흥에서 끝이 난다. 어딘가 전국 9개 도시의 이름들이 심상치 않은가. 그렇다. 올해 첫 시작을 맞이하는 이주노동자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뚜라(버마 국적, 현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는 “이 영화제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이 문화생산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주노동자에게 잊었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출품작의 상당수는 이주 노동자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저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들은 충분히 치열하다. 포커스에 담긴 이주노동자의 하루하루 삶은 그야말로 ‘인생은 투쟁이고 투쟁은 인생이다.’(이주노동자 영화제 초청작, 25분, 2004년 제작, 감독 Mixrice)
영화들은 크게 해외초청작과 국내초청작으로 나뉜다.
해외초청작 중에서는 이민(미국 퍼블릭액세스 MNN제작, 28분, 미국)과 21세기(자히드 감독, 16분, 2006년 제작, 방글라데시)가 눈에 띈다. ‘이민’은 브루클린에 이민 온 여러 민족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미국사회에 들어와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보여 준다. 특이한 점은 그들의 삶이 계급적인 구분을 떠나, 고국에서 어쩔 수 없이 유배당하듯 미국으로 들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좋은 기회를 찾아가라며 떠밀리듯 부모에 의해 유학 온 중국 유학생이나, 고국에서의 삶의 조건이 그지없이 열악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택한 자메이카 가족이나, 그들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캐나다 토마토 농장에 1년에 8개월마다 파견되는 멕시코 노동자들의 노예 같은 생활을 보여 주는 계약(이민숙 감독, 52분, 2003, 캐나다)에서처럼, 이민자들이 선택한 이주노동이란, 세계화가 가져 온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 초청작 중, 눈에 띄는 다른 작품인 ‘21세기’는 방글라데시인 감독이 한국 이주노동자였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욱 감동 깊게 다가올 것이다. 감독 자히드는 2003년 명동성당에서 380일 간 고용허가제 철폐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천막농성 당시에 그 자리를 지키다가 정부의 단속추방에 의해 본국인 방글라데시로 쫓겨난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였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고국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 바로 이 영화 ‘21세기’다. ‘21세기’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8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면서, 노동자
국내 초청작 중에서는 실제 이주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들(빨리빨리. x새끼야, 불량만들지 마세요) 수집해서 노래로 엮은짧은 뮤직비디오‘섞인 말들’(3분, 2004년 제작, 한국, Mixrice 감독)과 미등록 노동자로 살아가다가 고향에 돌아간 이후에도 낯선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는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의 삶을 통해 끝없이 이주할 수 밖에 없는 저개발국의 이주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이주’(20분, 2003년 제작, 감독 주현숙)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담담하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죽거나 떠나거나’(50분, 2004년 제작, 한국, 주현숙 감독)등의 작품이 주목할 만하다. 이들 작품은 그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어느 구호보다 첨예하고, 그 어느 이론서보다, 설득력 있게 이주노동자와 세계화에 직면한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울러, 출입국의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맞서2003년 380일 동안이나 지속되었었던, 이주노동자의 천막농성을 카메라에 담은 Memory(23min, 2004, 한국, 감독 숲 속 홍길동)등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2만명을 넘어섰다는 상류층의 해외 유학생, 10만명을 넘어섰다는 중류층의 어학연수생, 수입아내(56분, 2004, 대만작, 사이 청 렁 감독)들에 의해 재생산되는 농촌인구. 세계화의 바람은 차별적이지만, 일관되게 한국사회의 모든 곳에 불어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화의 바람을 따라 흘러 들어와 한국인을 재구성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곳에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단일민족의 환상 속에 살아 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뿌리깊은 차별의 근원에 대해서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사람은 다 똑같아요(15분, 2006년, 한국, Golden people 감독)
그들의 은막을 통해 한국사회의 거울을 보고 싶으신 분은 누구라도, 전국을 순회하는 그 곳 영화제에 가 보시길 권한다.
공식 홈페이지 http://www.mwff.or.kr
문의전화:02-6366-0621
인터뷰 ------------------------------------
집행위원장 Thura(뚜라)
이번 영화제의 취지와 영화제 출품작들의 선정 기준은.
크게 두가지를 고려했다.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과 동일한 처지에 놓였음에도 문화적인 생산을 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스크린에 비친 이주노동자들을 보면서, 나도 역시 저들처럼 문화생산주체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들을 골랐다. 또 다른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한국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골랐다. 비록 대만영화지만, 20살 연하의 캄보디아 여자와 결혼하는 대만의 뇌성마비총각 부부얘기인 ‘수입아내’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주노동자 영화제 임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데.
출입국 관리국의 단속추방 정책이 계속되는 바람에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많이 자리할 수 없었다. 무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정책 탓에 집 밖에 나가기 조차 두려워 하는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많다. 대신에 다음 주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 마석, 의정부, 부천, 시흥 등지에서 하는 영화제에서는 직접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공장 지역 등을 찾아가는 탓에 훨씬 더 많은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아마 전세계에서 첫번째로 열린 영화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영화제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2004년 12월 18일부터 시작된 이주노동자 방송국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좌충우돌 강경훈 기자(pborrower@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