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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안현정 |2006.10.17 21:44
조회 25 |추천 0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사이에서...

(지나가는 끄적거림이니 읽기 싫으면 그냥 페이지를 닫을 것!!! ^^! )

 

1. 어린 시절부터 생각이 많았던 나는 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궁금한게 꽤나 많은 꼬마였던 모양이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을 들자면,

"이거 모야?", "이거 왜 그래?",  "저거 몬데?", "몽땅 다 궁금해..." 등등...  주위사람들은 저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는 걸 제일 두려워했다. 알려줘도 계속 물어볼 테니까 ^^!

 

이렇듯, 호기심이 많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있을 것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집집마다 있다는 천재들의 사고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왜.. 어느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신의 내면에서 지워버리는 것일까..

 

이 세상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자신이 사는 삶조차 '허무'와 '무미건조함'으로 결론지어 버리는 것일까.. 

 

 

2. 나는 집집마다 있다는 천재와 같이 질문의 모든 유형을 통과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솔직히 남들에 비해 뛰어난 머리를 가진 편은 아니었다. 내 성적표는 '어쩌다 잘할 때'를 맴돌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현재의 나'는 다르다. 주위의 상황, 사람, 사물... 등에 대해 남들보다 정확한 기억력과 분석력을 가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그럴까. 

 

대체 언제부터 사물을 기억장치에 저장하고 이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일이 용이해 진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을 찾으려면, 잠시 시간여행을 할 수 밖에 없다.. 정확히... 7년전 나의 학창시절 속으로......

 

98년도... 너무나 더운 여름이었다. 미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장에 한창이었다. 너무도 더운 여름 속 열기를 피하기 위해 주말 저녁 '나이트'라는 별천지로 피서를 가야 했으니까.. ^^!

번쩍번쩍 북적북적... 고개만 돌리면 아는 사람들 천지에 .. 너무 많이 들어 귀에 익어버린 그룹 'COOL'의 노래들이 메들리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나마 익숙치 않은 곡이라면.. 'SPACE A'의 '바람난 여자'(제목이 맞나??) 정도 였을까?? 

고개를 돌리니, 온갖 내숭을 떨어가며, 웨이터에게 끌려가는 척(?)하는 동창생 하나도 보였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모야.. 올때마다 저러네~ㅋㅋ'

아무튼... 당시 아무 생각없이 방학에 속해 있던 주말이면 출근 도장을 찍던 그곳에서의 가시적인 모습들은 그저 지나면 허무해져 버릴.. '유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집에 돌아오면 지워야 하는 화장처럼, 흡사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같은 '순간적 허영'의 모습들..

그 안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 것은 내 인생 전체를 관조하기 시작한 같은 해 가을이었다.

한창 강남바닥에 '가사휴학'을 가장한 '어학연수'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부모님과 의논도 하지 않고 휴학계를 멋지게(?) 던져 버렸다. 눈에 보이는 '허영끼' 밖에는 부릴 재주가 없었으니까..

명품, 명차, 유명한 누구누구 등.. 화려하게 포장된 이름난 것들이 대학가에 유행하면서, 부모들의 허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당시 의 단면들은 불필요한 '어학연수'와 '조기유학'의 열풍을 조장하면서, 우리 사회를 IMF라는 엄청난 파장 속으로 몰아 넣었다. '보이는 것' 만을 최고의 가치라 생각했던 우리 사회의 물거품이 한 순간에 바람빠진 풍선과 같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많이 친구들이 '조기유학'에서 돌아왔고, 우리네 대학에서는 갑작스레 불어닥친 환난을 막기 위해 '해외 유학생 편입'을 골자로 한, '한시적 편입'을 허용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부와 빈이 뒤바뀌기도 했고, 벤쳐라는 이름을 통해 신흥 갑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날로그'적 코드가 '디지털'로 전환되던 것도 이때였다. 98~00년에 걸친 3여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듯, 나는 그렇게 대학시절의 혼란기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갈등 안에서 헤쳐 나와야 했다. 마치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와 같이...  20대 초반에는 보려고도 들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배우기 위해서..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사물의 외면을 나의 내면과 소통시키는 방법에 익숙해 진 것이..

 

 

3. ^^ 풉!! 한껏 웃어보라며 과거사를 내뱉어 봤지만, 사실 나에겐 당시 겪었던 '사회혼란'이 그다지 웃어 넘길 얘긴 아니었다.

버리기 싫었지만 버려야 했고, 갖기 싫었지만 가져야 했던 나름의 가치들이 '고통과 눈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집안 사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얻은 가치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 상태에서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며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그저 과거의 것인양 치부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외면에 가려진 내면의 가치가 때로 나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계기를 마련한다는 사실이다.

그 전환의 계기가 '필연'에 의한 것이던 '본인의 의지' 의한 것이던..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삶에서의 숨겨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던 자신의 삶을 '열정'으로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송대 시인 소동파(1036~1101)는 "고기 반찬은 없어도 살수 있을 지언정, 뜨락에 대를 심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쇠약한 몸은 고칠 수 있으나/ 마음이 속된 것은 고칠 수 없다" 고 말하곤 했다. '고기반찬'으로 상징되는 '부귀'는 '보이는 것'을, '대나무'로 상징되는 '맑은 덕'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무수한 갈등을 겪을지 모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현혹돼 정말 지켜야 할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까지 내몰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어쩌면 '나의 삶'을 지탱해 줄 가장 중요한 키워드 일 수도 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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