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그룹들은 다른 뮤지션들처럼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룹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데뷔 당시 팝을 노래하는 노르웨이의 음유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아하'도 그런 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사실 처음으로 발매됐던 싱글 의 판매률은 저조했었고, 이들의 성공에는 앨런 타니의 프로듀서로 다시 녹음된 와 함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해진' 영악한 뮤직 비디오의 힘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어찌 됐든 이들이 가졌던 눈부신 팝의 감수성은 많은 밴드 생활을 거치는 과정을 지나 1982년 결성된 '아하'로 낙찰된 것이기 때문에 '아하'라는 밴드는 음악과 분리시켜 말할 수는 없다.
더우기 일단 그 외모로 온 세계의 여학생들의 찬사와 흠모를 한몸에 받았던 프론트 맨 모튼 '호르텐 포르텐 스노르텐' 하켓의 곁에는 팝적인 능력을 겸비하고 있던 그의 친구들인 롤 왁타와 맥스 프루홀맨이 있었고, 1985년 이들의 최고 히트곡 의 여파로 인해 국내에서는 팝 음악을 듣던 세대(특히 여학생들에게 있어서)를 아하 이전의 듀란 듀란 세대와 아하를 듣는 세대로 구분하는 경계가 만들어질 정도였다.(적어도 잠실에서는 그랬다. 중학생들은 아하, 고등학생들은 듀란듀란 그런 식으로)
아하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은 그들이 유능한 매니저들에게 발탁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존 래드클래프와 테리 슬레이터는 평범해 보이는 아하의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비디오에서 찾아냈다.
그들은 비디오 제작자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감독한 스티브 배런을 선택했다. 그리고 스티브 배런은 의 비디오에서 만화영화의 기교를 도입한 획기적인 화면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의 선택이 정확한 것이었음을 입증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화제 속에 방영된 이비디오 덕분에 '아하'는 보다 쉽게 스타덤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인구 4백만의 모국 노르웨이에서 데뷔 앨범이 2백만매 팔렸으며, 싱글 는 불과 4개월만에 미국의 히트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아하' 는 미국의 차트에 들어간 노르웨이 첫 밴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