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란 물처럼 흐르는 것도 아니고
선으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며 점처럼 찍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눈처럼 흩날리는 것은 아닌지.
하루살이처럼 차창에 부딪치며 사라지던 눈송이들 같은 시간.
양지에 쌓여, 자고 일어나면 이내 사라져버리던 눈.
응달에 내려 몇 날 며칠 세상에 때를 묻히며
헌 옷가지들처럼 뭉쳐 뒹굴던 눈.
누군가의 손아귀에 단단히 뭉쳐져서
아프게 얼굴을 때리기도 했던 눈.
천년만년 살 것처럼 흙덩이와 연탄재와 뒤섞여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보기도 했던 눈.
시간이란 그런 눈이 아니었는지.
발 밑부터 녹아 흥건하게 퍼질러지던 눈사람의 기억,
얼굴을 때리고 부서지던 선명한 아픔의 기억,
등허리를 시리게 타고 내리던 신산스러운 기억들.
손아귀에 한 점조차 쥐고 있을 수 없고,
세상의 같은 시간이란 단 한 점조차
되가져갈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닌지.
- 전경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