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촉촉히 가을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가뭄이 너무 오래 되어서 그런지, 단풍도 곱게 물들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고,
나무들은 이제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겨울 채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심어두었던 김장 무, 배추는 단비를 머금고 토실토실 잘 자라날 것입니다.
매일 다니는 출퇴근 길은 언제라도 달려만 가면 안아 줄 것 같은 시골풍경을 눈에 넣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다니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황금빛들녁이 하나 둘 비어가기에, 수확을 할 때인가 하고, 그저 바라만 봐도 부자가 되는 기분으로 풍성한 들녘을 내 품에 안았습니다.
그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내 어릴 적 기억은 늘 뒷걸음질을 칩니다.
조그마한 손이지만 엄마를 따라 들녘으로 나가 일손을 돕곤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소죽을 끓여 놓고 난 뒤, 쓱싹쓱싹 낫의 날을 새우십니다.
엄마는 고구마를 삶고, 빨간 홍시를 담아 새참을 준비 하십니다.
넓어만 보이는 들판에 고사리같은 손으로 낫질을 합니다.
잘 새운 낫에 잘못하다 삐어 피라도 날라치면, 그냥 '으앙'하고 큰소리로 울어버리면
엄마는 쑥을 뜯어서 부드러운 벼줄기로 칭칭 둥여 매어 주곤 하였습니다.
베어놓은 나락들을 며칠 말리고 난 뒤 손으로 하나 하나 묶어 주었습니다.
요즘에야 콤바인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되는 타작이었지만,
옛날에는 전부가 손으로 작업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까칠까칠한 나락들을 내가 먼저 앞서가며 모아두면은 엄마가 뒤따라 오면서
볏단을 뭉치곤 하였습니다.
몇 줄이나 남았나 하나 둘 샘을 하고 있으면 엄마는
"눈은 게을코 손은 부런타이~" 라고 나무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 쌓아 타작도 하였었지요.
안아서 모아 두면, 아버지는 지게로 옮기곤 하였답니다.
그렇게 집과 가까운 거리도 아니면서 맨 마지막의 지게는 항상 반쯤만 채우시는 아버지였습니다. 해가 니읏니읏 산자락을 돌아 넘어갈 때, 아름다운 저녁노을로 산자락을 불태울 때,
아버지의 지게에는 막내인 날 태워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시며....
참 오랜만에 보는 짚동입니다.
지금은 이런 짚동조차 보기 힘이 들지만,
내가 어렸을적에는 논에 있는 짚들을 모두 가지고 온 건 겨울내내 소를 먹여야했기 때문입니다.
한참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네친구들과 학교만 파하면 책보 던져놓고 놀기에 바빴습니다.
그 때에도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요맘 때,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마다
여러개 세워 둔 짚동 사이는 우리들의 아지터였습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지게를 태워주셨던 아버지 그리고 엄마가 한없이 그리워지고,
함께 놀던 친구들이 보고파집니다.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행복에 빠져드는 하루가 되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