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교육사상
1. 교육의 철학으로 철학의 길을 열다.
소피스트들을 통하여 교육은 모드 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소피스트들은 스스로를 직업적 교사요 교육자라고 인정하고 행동하였다. 소피스트들의 이러한 자아이해와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물음에 눈뜨게 만들었다. 소피스트들의 교육 활동을 과연 직업으로서의 교육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교육 형식이 바른 것인가? 교육은 도대체 가능한가? 교육의 고유한 본질과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은 소피스트들의 개별적으로 상이한, 그렇게 때문에 회의를 불러 일으키는 미심쩍은 교육 활동과 전승되어온 가치 규범들에 대한 도전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 지금까지 관습과 윤리로 그리고 국가의 법으로 존중되어 오던 절대 규범들이 소피스트들에 의하여 단순한 인간의 생각과 작품으로 상대화 되었다. 그리하여 절대적 진리는 인식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별로 소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절대적 진리와 그러한 진리 인식의 능력 대신에 생활 세계와 능변적 수사 능력이, 다시 말하면 생활 세계를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실제 생활에 유용한 것으로 강조되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진리 그 자체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아니라 청중들이 듣고서 참된 것으로, 즉 진리로 여기도록 만드는 일을 관건으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 풍토 아래서 조상 대대로 진리로 간주되어오던 규범들과 가치들을 계속하여 붙잡고 있는 일 자체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양하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가치들의 혼란 속에 침잠하지 않으려면, 무엇인가 진리로 여겨지는 것을 철저히 그 근거에 있어서 논증하여 보고, 그리고 나서 그것을 진리로 확실하게 붙잡고 버틸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 종래에 철학이 인간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우주와 자연과 국가와 민족의 본질과 기원을 물어 들어갔었던 철학하는 태도로부터 인간과 직접적인 관련 아래서 생활의 의미와 가치를 물어 들어가는 방향으로 철학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청되었다. 철학은 인식의 관심을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돌려서, 인간에게 있어서 참으로 선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하는 본래적으로 교육학적인 무음에 대한 해답을 과제로 삼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철학을 삶의 형식으로 삼아서 살다가 갔으며, 이로써 이러한 철학의 영원한 모델이요 기초가 된 사람이 아테네의 석수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이미 당시에 동시대인에게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불가사의로 머물러 있다.
소크라테스는 계몽과 철학의 영도자이다. 그는 예거 의하면 어떤 도그마나 전통에도 매어 있지 않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내면적인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윤리적 자유의 사도였다. 그는 또한 새로운 종교의 선포자요 값없이 베풀어지는 은총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하여 간단없이 노력하는 내적인 능력을 통하여 획득 가능한 지복성의 선포자였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주전 5세기는 우리의 세기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는 세기였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독재와 민주 사이에서 오는 정치적 갈등, 경제적 성장과 안정의 시작, 전쟁, 과학과 예술의 발전과 문화의 융성, 정부의 통치 능력과 권위의 상실, 윤리 도덕의 문란, 가치 체계의 전도, 특히 급속한 기술과 공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전승되어 온 풍속과 습관을 비롯하여 가족제도와 사회의 내적 구조가 흔들리고 의문시되며, 종교적 기반이 붕괴되고 숱한 사이비 내지 이단 종파들이 출현하는 등, 그 시대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거울과 같다. 이러한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언제부터 철학을 하기 시작하였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생활이 공개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 BC) 부터이다.
교육 철학의 역사에서 소크라테스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다룸에 있어서 두 가지 사실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그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을 염려하고 인간의 윤리적 실존을 염려하는 일을 정치적 관심사나 우주론적 사변과 대립시키고, 정치적 관심에 대하여 영혼에 대한 관심의 무조건적 절대적 우위를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의 철학계에서 실존 철학적 정점을 이루었다. 둘째로, 우리는 다만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쓰여진 스승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만 그를 알 수 있을 QNs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그의 제자들이 받은 인상,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교사로서 그와 함께 나눈 대화, 그리고 그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내용의 기록을 통하여 그를 알 수 있을 뿐이다.
2. 영혼을 위한 염려로서의 교육
소크라테스의 교육이 당시의 젊은이들을 어느 정도로 사로잡았으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우리는 알키비아데스의 고백을 통하여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에는… 우리는 그만 압도되고 정신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분의 말을 들을 때 내 심장은 미친 듯 춤추는 코뤼바스(Korubas)들의 심장보다도 더 격렬하게 뛰며, 눈물은 내 눈에서 마구 쏟아져 흐릅니다. …페리클레스나 그 밖의 뛰어난 웅변가들의 연설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훌륭한 연설가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은 지금 말한 바와 같이 느낀 적은 한번도 없으며 또 내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노예가 된 때와 같이 초조하게 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이 마르쉬아스는 번번이 나를 그런 상태에 빠지게 했으므로 나는 지금의 내 생활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지만 다만 이 분 앞에서만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독사에 물린 것과 같은 고통”으로 비유하였다. 그것도 “제일 아픈 곳을”,“심장을, 아니 마음을”물린 것과도 같은 고통으로 묘사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애지하는 말이… 젊고 재질있는 마음을 한번 움켜잡는 날이면 독사보다도 더 지독하게 물고 늘어져 그 마음으로 하여금 무엇이든지 행하며 말하게”한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들로부터 구별하고 있다.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는 스스로 그들로부터 자신을 날카롭게 분리시키고, 그들의 가르침에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대립적 입장은 교육에 대한 도야의 주장으로 확인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붕괴되면서 기존의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을 때에, 이러한 가치 위기에 직면하여 교육의 위엄과 절대적 성격을 주장하였다. 소피스트들은 공동체를 정신적으로 묶어 주는 끈이요 인간의 참된 생활과 행위를 가능하게 하여 주는 규범들의 원천인 로고스를 지식의 소유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인간 조정의 합리적 도구로 만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동시대의 교육의 대표자들이 되었다. 여러 가지로 상이하고 다양하고 쓸모 있는 지식들의 교육을 강조한 소피스트들의 교육은 사실상 인간을 임의적 목적들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들에로 무장시켰으며 그렇게 행동하는 인간들을 길러냈다. 소피스트들은 돈을 받고 지식을 팔았다. 이러한 소피스트적 교육경영을 소크라테스는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돈을 받고 교육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도대체 말도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지식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상품처럼 매매되어서는 안된다. 지식은 히이다. 지식은 소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자아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에 영혼에 이롭거나 해로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지식의 허용을 이에 따라서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소크라테스는 갖고 있었다. 지식은 구속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유한 규범에 따른 검토를 거침이 없이 자신을 한 교사에게 내어맡기는 일은 위험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적인 의미에 있어서 한번도 교사가 된 적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언제나 빈부와 노소에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묻고 대화하며 자문에 응하였으나, 누구에게도 지식을 주거나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혹자가 그로부터 “다른 아무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것을 배웠다거나 들었다거나 하면 그것은 참말이 아니라는 것을”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본질을 다룬 인식론적 대화가 실려있는 〈테아이테토스〉에서 산파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산파술은 보통 산파술과 다를 것이 없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의 산파술은 보통 산파술과 다를 것이 없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의 산파술이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의 출산을 도와주며, 육체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의 탄생을 염려하는 것이라네. 우리들의 기술의 가장 위대한 점은 젊은이의 영혼이 환영과 오류를 잉태하려 하는지, 아니면 유실하고 참된 것을 잉태하려 하는지를 검토할 수 있는 데에 있다네. 여기서도 나에겐 산파에게와 같은 과제가 주어져 있네. 나는 지혜에 관해선 아무 것도 잉태한 것이 없네. 그리고 내가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은 하나, 스스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는데, 그들의 비난은 정당하네. 그러나 내가 대답하지 않는 근거는 이러하네. 신은 나를 산파의 기술을 사용하도록만 강요하였지, 출산하는 일은 거부하였다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일세. 나는 나의 영혼과 정신의 생산이라는 사건을 경험한 적이 결코 없네. 그러나 내가 더불어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처음에는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러나 모두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아네, 신이 그들을 도와주고 있는 한에 있어서, 그들 자신이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렇게 알 수 있듯이,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네. 그리고 그것도 그들이 나로부터 일찍이 무엇인가 배운 바가 전혀 없이, 오직 스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많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확고하게 간직하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탄생의 도움을 그들은 신과 나에게서 받았을 뿐이네.
소크라테스가 대화술이라고 부른 방법은 이해의 방법인 소피스트들의 논쟁술이나 사물들 자체를 분석함으로써 철학적으로 개념의 인식에 이르는 방법인 플라톤적 변증법이 아니다. 대화술은 나와 너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방적인 의사 소통의 방법이요 진실된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실현하게 하는 언어의 예술이다. 이러한 열려진 그리고 참된 대화 안에서 선의 지식이 비로소 정신 세계의 심연에서 완성된, 그리고 사용 가능한 지식으로가 아니라, 형성되고 있는 그리고 파악하는 과정에 있는 지식이요 활동하는 지식으로 일깨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선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선의 지식은 다만 언제나 말을 걸고 말 걺에 대응하는 상태에서 생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사물을, 그리고 진리와 견해를 끊임없이 함께 물어 들어가고 이들을 비판하고 구별하고 밝히는 일이 교육이다. 표면적으로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이비 진리이기 때문에 난파할 수 밖에 없는 지식들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일이 교육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교육은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도덕적 근본 지식에 대하여 회상하게 하는 일이요, 인간에게 결단의 선택과 자유를 호소하는 일이며, 이러한 일로 경고하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자체를 교육적 과제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대화술에서 확인하게 되는 교육은 인간을 인간 자체로 해방하는 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을 인간 자체로 해방한다는 말은 인간 개개인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한다는 말이다. 모든 교육의 목표는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대화를 통하여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모든 이해의 능력들과 내용들을 끌어내어 정련하고, 인간임의 의미를 부여하며 잠재력을 개발하고 행위의 핵심에까지 파고 들어가서 도야하는 일이다. 교육은 교사가 이러한 이해의 능력과 내용을 소유하고 나누어 줄 수는 없고, 다만 해산 시킬 수 있을 뿐이다.
교육적 과정의 중심에는 그러므로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자리 잡고 있다. 학생은 스스로 배운다. 학생은 산파의 역할을 하는 인간 교사의 학생이 아니라, 신이 언제나 이미 그 안에 심어 준 진리의 학생일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물음은 주체적인 탐구 능력과 자발적인 발겨 능력과 자아 확신의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힘들이 아무런 유보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만드는 일을 목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진리에 직면하게 되는 인간은 현세를 풍미하는 모든 사이비 진리를 부정하며, 참된 정의와 지식을 고수하기 위하여 부정한 폭력에 항거 하며, 아직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깨우기 위하여 교육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존적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현존에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바로 이러한 시적 협력에 의한 해방을 통하여 비로소 갖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자는 신의 협력자 내지 동역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탄생의 도움을 그들은 신과 나에게서 받았을 뿐이네”라고 말하였다. 교사는 여기서 다만 그의 소명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며, 교사의 마음에는 이러한 교육 활동을 통하여 어떤 감사의 대가를 받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
(출처 : '소크라테스의 교육사상' -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