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4 - 커피한잔
사진그림 : ADD 4( 1964년작 1집 최초의 한국록 )
ADD 4 - 커피한잔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팔분이 지나고 구분이 와요 일분만 있으면 나는가요
내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아 그대여 왜 안오시나
아 내 사랑아 오 기다려요
오 기다려요 오 기다려요
불덩이 같은 이 가슴 엽차 한잔을 시켜봐도
보고싶은 그대 얼굴 내 속을 태우는구려
락매니아들도 한국 최초의 락음반인 이 앨범을 애타게 찾아도 찾을수도 없고 구하기도 매우 어렵고 발견 해도 60만원 이상은 우습게 올라가는 희귀앨범이 되버린것이...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수 없다. 어떤앨범은 200만원까지 올라가버렸다는...
1963년...비틀즈가 1집앨범( Please Please Me )를 내놓고 출범하던 당시에...미8군 부대를 통해서 미국문화가 한국에 유입되던 시절
미8군에서 연주하던 신중현( 미8군 굉장한 호흥을 얻었던 신중현대인을 미군들은"Hicky Shin"이라 불렀다.) 대인이 58년도에 고전기타시가(음유시인)적인 앨범을 내놓고 64년도에 락의 형태를 완벽히 갖추고 비틀즈보다 1년 늦게 64년도에 첫 앨범(타이틀:비속에 女人)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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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락의 살아있는 역사자체인 신중현대인은 작년2006년 7월 은퇴했다. 그간에..."봄비""미인""아름다운강상""빗속의 여인""커피한잔"등등의 곡들을 작곡했으며 펄시스터즈,김추자,박인수 등의 가수를 길러내기도 했다. 그후에도 지금까지 많은 한국의 밴드들의 신중현대인의 음악을 리메이크 하기도하며 많은 락뮤지션 이외에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다.
"밴드명 ADD4의 의미로는 3도 화음으로 고정되있는 기존에 있던 것에 하나를 더한다는 뜻으로, 새로운 소리와 함께 실험적인 뮤지션이 되겠다는 신중현의 의지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신중현 기고"중앙일보 2006.01.24일자의 기사를 잠깐 올려본다.
"신중현의 기고에서 신중현대인이 인용한글"
그러나 막상 음반을 만들기 직전 멤버들 간에 문제가 생겼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대로 끌고 가기는 힘든 상황이였다. 해산하고 서울로 다시 나왔다. 권순근(드럼),한영현(베이스),서정길(보컬) 등 새 맴버를 모아 팀을 재결성했다. 그리고 음반을 냈다. 음반사에서 순순히 판은 내줬지만 계약금 따위는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수나 연주자들은 음반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던 시절이였다. 동두천에서 연습하던 과정에서 쌓은 노하루를 최대한 활용해 작업도 일사천리리로 이뤄졌다.
나는 "ADD 4"를 결성하면서 국민의 반응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그에 못 미쳤다. ADD 4는 지금 세종 문화회관인 옛 시민회관,서울 세종로 "아카데미" 음악 감상실, 명동 "오비스 캐빈"의 꼭대기층 등에서 공연했다. 순회 공연을 하면 티켓은 매진됐지만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게 거의 없었다. 당시엔 쇼단장의 힘이 엄청났다. 문화공보부에서 단장증을 몇 사람에게만 내줬기 때문이였다.
그들은 주먹도 좀 쓰는 "힘있는 사람"들이었다. 전국의 극장을 독점한, 한마디로 "주먹단장"들이었다. 연예인들은 돈을 못 받고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겨우 생활이나 할수 있을 정도였다.
공연이 없을 땐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나의 경우 아내가 큰아들인 대철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할 수 없이 밴드를 해산했다.1966년의 일이었다.
-PROSATANAKIA-
전세계의 현대락까지 12년동안 들었건만...한국의 이밴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