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느끼는 색다른 춘천여행
호반의 도시, 춘천.
2006년 10월, 난 그곳을 네번째로 찾게 되었다.
무료한 삶,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상황,
벌써 10월이라는것이 실감이 안나고 지난 10개월동안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패닉상태.
그나마 지난 월드컵때의 추억들이 6월은 확실히 지나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이런 시점에서
친구를 불러 서울에서 고궁을 탐험하려던
애초의 일정과는 정반대로
난 어느새 춘천행 기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바같의 풍경을 보다보니
어느새 강촌, 강촌 다음이 김유정역. 이번 여행의 목적지이다.
강촌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역인 김유정역은
2004년까지 '신남' 역으로 통용되고 있다가 철도청의 정책에 따라
2004년 12월1일부터 이름의 명칭을 딴 '김유정' 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는 '봄 봄' '동백꽃' 등의 주옥같은 단편 소설을 남기고 요절한 김유정 선생의 생가와 문학촌이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 정말 사람의 발길이 드문 간이역. 청량리발 남춘천행 무궁화호 1813열차를 타고 김유정역에 내린 승객은 나뿐이었다.
역에서 약 5~10분정도를 걸어가면 김유정 문학촌이 나온다.
간판이 비교적으로 자세히 나와있었으며, 논두렁에 들어서면
어딜보아도 김유정 문학촌일수 밖에 없어보이는 곳을 발견하게된다.
▲ 버드나무와 정자가 어우러진 곳.
우리는 저 정자에 앉아서 미리 싸온 주먹밥과 과자로 신선같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 김유정 문학촌의 전경.
저곳이 바로 소설가 김유정 선생의 생가이다.
사실 이곳을 다 둘러보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풍경이야 한번씩 둘러보면 그만이고, 생가의 구석구석을 보고 박물관에 가서 그의 업적을 써놓은 다양한 자료들,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 소설들이 실린 잡지들의 표지만 보다 보면 넉넉히 15~20분 정도에 다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빠듯한 일정을 보내야 하겠는가. 춘천행 버스 시간도 알아놓았겠다, 이곳에서 김유정 선생의 정취도 느끼고 박물관에서 공부도 좀 하면서, 또 이런 곳에서 사진도 많이 찍으며 소풍 혹은 견학을 온 것 처럼 시간을 보내기로 하자.
▲ 김유정 선생의 동상 및 생가의 전경.
▲ 김유정 동상
김유정 동상은 곧 김유정 역 앞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문학촌에 있던 동상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이곳의 지역을 특색화 하기위한 하나의 단계를 밟아가는것 같다.
문학촌 한쪽 구석에는 김유정 박물관이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문학촌 관람객이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우리 外 1~2人 이었기 때문에
눈을 딱 감고 소개용 사진 몇장만 찍어가기로 했다.
▲ 김유정 박물관은 아주 작았다.
가운데에 멀티비젼과 김유정의 대표작인 봄.봄의 전시물이 있었고 양쪽에서는 그의 연혁과 그의 소설들이 실린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어찌 잊을수 있으랴.
국어책의 로망이었던 동백꽃. 마름의 딸과 소작인의 아들의 사랑.
▲ 1930년대 여성이라는 잡지에 김유정 선생의 소설이 연재되었다고 한다.
김유정 선생의 다양한 업적들,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그가 낸 다양한 단편소설들.
언제 한번 다시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론 그는 친일파였다고 하지만,
친일파가 쓴 소설이라고 작품성의 가치를 깎아내릴수는 없는법.
▲ 사진 맞은편에 보이는것이 박물관. 그 앞에 조그맣게 보이는것이 김유정 동상. 왼편에 보이는것은 그의 생가.
이렇게 김유정역에서의 1시간 반은 금방 지나갔다.
물론 다양한 장소에서 엽기사진 및 설정사진,
그리고 여행객으로서의 예의를 갖춘 모습을 보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춘천행 버스는 3시20분에 있다고 한다.
작년, 1달간의 공익근무 대비 훈련소 기간때 했던
시골 논길행군이후로 난 항상 이런 시골마을의 논두렁을
그리워하곤 했는데
내가 그리워했던 딱 그런 곳을 따라 한참을 방황하기도 하고
근처 초등학교에서 나는 사물놀이패의 징소리를 따라
시골의 뒷골목을 걸어보기도 했다.
아! 이곳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듯
알지도 못하는 우리들에게
맞은편에 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오지에 온 것도 아닌데
이 한마디는 여행중에 보았던 어느 멋진 곳들보다도
더 새로웠다.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춘천시내에 도착했다.
정확히 우리가 내린 곳은 공지사거리.
춘천을 싸고도는 공지천의 근처였다.
소양강댐 투어는 이미 3번의 여행에서 지겹게도 했고,
청평사 등반 또한 마찬가지.
이번에는 항상 소양강 투어에 밀려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춘천시내의 다양한 가을풍경들을 느껴보기로 했다.
우리는 공지천 유원지를 따라서 쭈욱 걸었다~
어느새 뉘엇뉘엇 노을이 지려고 하고 있다.
건너편에 조각공원이 있긴 했지만
우린, 지난 94년 가족들과 함께 했던 제주도 여행에서의
허무했던 조각공원을 떠올리며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 황금비늘 테마거리
올해는 유달리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이 땅바닥을 수놓고 있어서 아쉬웠지만, 내년에 온다면 장관을 볼 수 있을것이라고 예상되는 황금비늘 테마거리.
▲ 낙엽이 떨어진 가을에 이런 거리를 걸어보는것도 좋았다.
남이섬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 곳은 남이섬의 한 곳을 그대로 춘천시내에 옮겨놓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간간히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나에게는 낯선곳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 '여유를 찾는 곳'일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산책했을까,
친구가 이제는 춘천 MBC와 이승복 동상을 보여준다고
산길을 올라간다. 나는 친구를 따라 헥헥대며 산길을 올라갔다.
저 멀리 춘천 MBC가 보인다.
▲ 춘천 MBC
춘천 MBC앞의 익살스러운 동상들.
한명은 카메라맨, 한명은 기자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열정이 이 동상 하나에 그대로 담아있는 것 같았다.
춘천 MBC는 관계자가 아닌 이상 들어가 볼 수가 없기때문에
앞에서 사진을 찍는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MBC 맞은편에 보면 탱크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현재 인부들이 보수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고,
우린 그 위쪽의 동상을 찾아 올라갔다.
▲ 춘천지구 전적비
다소 무거운 느낌의 동상. 수류탄을 던지고 있는 모습의 병사를 보니 과거 6.25때 얼마나 많은 숭고한 희생이 있었는지를 또 한번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 피난민들의 행렬, 및 군인들의 행군.
한쪽 벽에 과거 전쟁의 모습이 담긴 조각물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서 같이 찍을만한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각자 설정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집에와서 포토샵으로 절묘하게 합성. 우리도 함께 공산당을 무찌르러 가는 듯하게! 브라보!
▲ 이승복 어린이 상.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의 이승복 어린이 상.
68년, 침투 무장공비들이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들이닥쳤고,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그들에게 동조할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승복 어린이가 이 발언을 하면서 가족이 모두 몰살당했다는 .
당시 그의 친 형은 36곳이나 찔리는 중상을 입고도 가까스로 탈출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하는데.
어느정도까지는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반공운동때문에
과장된 면이 없지않아 있다고 하는것이 학자들의 추측.
아무튼 이 이승복 어린이에 대해서는
초등학교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곳, 춘천에서 동상까지 보게되다니 상당히 감회가 새로웠다.
▲ 보수공사때문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던 전투기 모형.
무슨 전투기이며 어떻게 쓰였는지. 왜 여기있는지도
그놈의 공사때문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사진만 찍고.
사실 선착장까지 가서 '중도' 에 들어가는 코스를
예상하고 있었다.
배 시간이 한시간에 한번씩 있는데
들어가는 뱃삵 3,500원을 이기지 못하고 코스에서 빼버린 그곳.
대신 우리는 그곳이 보이는 춘천시 어린이 회관 벤치에 앉아서
공지천을 바라보기로 했다.
▲ 춘천시 어린이회관.
사람이 없고 한적한 모습, 운영이 되지 않는 폐 시설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당히 음산한 느낌.
저 멀리 쾌속선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건너편이 '중도' 라고 한다.
다음 여행기회가 되면 꼭 '중도' 를 포함시켜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 또 오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못내 아쉽기도 하고.
▲ 시간이 멎어버린듯한 춘천시 어린이회관의 모습.
▲ 여행에서 여유를 찾다.
계속 무언가를 보고, 사진을 찍어대고, 연신 뭔가에 얽매여있다가 비로소 난 여행에서 잠깐의 여유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런 곳에서 했다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것이 아닌가 싶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공지천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계획과 친구들 이야기등을 하다보니 어둑어둑.
이곳은 노을이 질 때가 되어야 더 멋지다고 하는데
또 한명의 친구를 만나 춘천시내에서 닭갈비를 먹기로 한지라
노을까지는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상호네 숯불 닭 갈비.
닭을 직접 숯불에 구워서 먹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닭갈비가 아닌 진짜 이것은 '닭' 갈비! 였다.
사실 작년 2월에 먹었었던 명동에서의 닭갈비가 너무 맛있어서 이번에도 그곳을 찾고자 하였으나 친구가 새로운 곳을 추천해주었다. 말그대로 닭을 숯불에 직접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데 밑반찬은 별로지만 고기맛 하나는 끝내준다는.
아까 버스에서 하차했던 공지사거리에서 조금 들어간
근화사거리 부근에 있는 이 곳은
정말 친구들끼리 앉아서 이야기 하기에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닭갈비 맛 하나는 정말 특색있었다.
먹는것에 열중해 뒤집지를 못했더니
결국 타는것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연하지만 또 매콤하게
닭을 먹어본적이 언제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동에서 맛보았던 닭갈비를 먹지못한 서운함은
순간 모두 날라가버렸다.
당일치기의 일정으로 온지라,
난 다시 서울로 가야만 한다.
춘천에서 보낸 딱 9시간 동안
난 틀에박힌 일상생활에서 잠시 탈피해
난 나만의 여유를 찾았고,
한가로운 곳을 노니면서 세상의 가치를 느꼈고,
여행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만족감까지 얻었다.
▲ 올때는 입석이었지만, 갈때는 편하게 좌석!
▲ 남춘천역의 야경.
춘천역이 2009년까지 폐쇄되면서
춘천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남춘천을 통해서 가야한다.
이제 남춘천에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온갖 아쉬움을 또 뒤로한 채,
하지만 서울에서 또 벌어질 수많은 일들에 설레어 하면서
가을에 느끼는 색다른 춘천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