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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만큼 돌려준 사랑 오드리 햅번

박희중 |2006.11.01 11:12
조회 64 |추천 2
   

 ② 오드리 헵번 (본명 : Andrey Kathleen Ruston)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부유한 영국인 은행가인 아버지와 폴란드 남작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 하지만 그녀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되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독일의 나치군은 폴란드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나치군 아래에서 전쟁의 공포 굶주림의 힘든 시간을 견뎌 냅니다. 그리고 고난의 시간도 지나가고 나치군은 패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녀가 16살 되던 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영국 런던에 정착합니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하게 되는데 너무 큰 키때문에 발레리나로써 부적격 판정을 받습니다. 그녀는 이후로 몇 편의 영황에 단역으로 출연하였고 그러던 중 작가인 콜레트 여사의 눈에 띄어 연극 지지(브로드웨이 각색작)에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에 섭니다. 그녀는 연기경력에 비해 호연으로 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그 연극을 본 명감독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쥡니다. 그 이후 1953년부터 1967년까지 그녀는 십수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맞으며 50 6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섭니다. 1954년 그녀는 멜 페러와 결혼 1960년 아들 신 페러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1968년 그녀는 멜 페러와 이혼하고 1년 후 오드리는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안드레아 마리오 도티와 재혼 아들 루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도티와도 큰내 결별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삶에 마지막은 그녀의 전성기 때 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1987년 유니세프에 특별대사로 지명되어 로버트 우더와 함께 이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베트남 같은 곳을 방문하여 아이들을 돌봅니다. 그녀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나치군 점령시절 굶주림과 가난 속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 었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그녀는 직장암 판정을 받고 1993년 1월 20일 스위스 톨셰나르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1993년 아카데미는 그녀의 사랑에 진허숄트박애상을 안겨줍니다.

 

 

 그녀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최고의 히로인이 었습니다. 그 사랑만큼 부도 함께 쌓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편안하고 부유한 생활을 뒤로 한채 그녀가 받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다시 나눠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랑! 그녀는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참고자료(Pure Audrey Hepburn, 러브오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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