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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능이야기

이재상 |2006.11.22 23:06
조회 297 |추천 2

매 년 이맘때 쯤 되면

지하철 역 곳곳에 '고사장 가는 길'이 붙어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사장을 알려주는 게시물이 지하철 역 곳곳에 붙어있고 그 옆 게시물은 친절하게 수험생의 좋은 성적을 기원해 준다. '그래, 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오고 있구나.'

 

일 년 내내 잊고 있다가도

일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이런 게시물은

참 힘들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던

지난 나의 3 년간의 수험생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재수를 해서 간 학교를 다시 박차고 나왔던 것은

적어도 내가 나이가 들어 지금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몰래 본 세 번째 수능 성적표를 부모님 앞에 내밀면서 한 번 더 수능을 본 이유를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지난 시절의 실패가 나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그것 보다 더 서글픈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너무 늦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다고...

 

대학을 다녔지만 수능과 조우하고 싶다는, 그리하여 당당하게 지난 나의 열패감을 부셔버리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나는 부모님 몰래 다시 수능을 보기로 결심했다. 내 학창시절 처음으로 열패감을 안겨 준 수능이라는 녀석을 그냥 그렇게 두고 떠나보내기가 그 때는 그렇게도 인정하기 싫었다.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 시험을 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조차 부끄러웠고

또 다시 실패했을 때 안겨드릴 실망이 두려웠다. 

재수를 하면서 들어간 학원비가 있었고

그래서 들어간 1 년간의 대학 등록금조차 포기하려 하는 나의 결정을 말 할 수 없었다.

 

대학 1학기 때, 우선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님께 나는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이었고

대학 친구들에게 나는 과외 알바 하느라 일찍 가버리는...

대학생활 잘 안하는 친구였지만,

사실 나는 입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편하게 과외알바를 하면서 대학을 다니면 수능을 다시 보겠다는 내 의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시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나의 경쟁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내 의지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원에서 알바를 했다.

 

8월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목돈을 모은 나는

집 근처 독서실을 등록했고 서점에 가서 넘기는 문제집을 한 가득 샀다.

 

1년 동안 휴학할 수 없는 학교를 원망하면서

2학기에는 수업을 오전으로 몰아 넣어버리고

오후에는 집 근처 독서실로 향했다.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핑계거리를 찾지 못해서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없었고 게다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미니약과와 딸기우유를 사서 독서실에 들어가 남에게 피해를 줄 세라 조심스럽게 약과를 하나씩 하나씩 먹었었다. 어둑한 독서실에서 약과를 오물거리면서 신세한탄을 해보기도 했다. 그 땐 그 미니약과가 너무 맛있었다. 약과가 질리면 부산오뎅이나 닭꼬치도 괜찮았다.

 

독서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행여나 근처 시장에 장을 보러 오신 어머니와 마주칠까봐 조심스러웠다. 나름대로 입구가 후미진 독서실로 장소물색을 이미 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3달을 보냈다.

 

나는 남동생하고 학번이 같다.

결국 그 해 수능 날은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의 수능날이기도 했다.

졸리면 분무기로 얼굴에 물을 뿌려가면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못난 형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수능당일 아침 나는 수능을 보러가는 동생에게 '시험 잘 봐라.' 라고 응원하며 한 번 꼬옥 안아주었다. 그게 다였다.

 

'너는 동생 시험 보는데 같이 안 따라가고 어딜 아침 일찍부터 나가냐.'는 어머니의 채근에 그냥 삼수하는 친구 응원 간다고 하고 집을 빠져나왔다. 동생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냐는 등 뒤의 어머니의 말씀에 속이 많이 쓰렸다.

 

도시락이 없는 나는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삼각 김밥 두 개와 캔 커피 그리고 포카리스웨트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샀다. 검은 비닐봉지가 쪽팔려 가방 속에 얼른 집어넣고 경기고등학교에 갔다.

 

고사장 정문 앞에서 큰 위기가 하나 발생했는데

나를 굉장히 이뻐해 주셨던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이 떡 허니 버티고 서 계셨다. 익숙한 교복을 입은 모교 후배들의 응원소리는 무지하게 반가웠으나 그 분은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피우며 타이밍을 잡다가 사람들이 붐비는 때를 틈타 고개를 푹 숙이고 정문을 통과했다. '그래, 이제 시험만 잘 보자.'

 

교실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고3때 같은 반 친구가 살은 더 쪄있고 머리는 길어 뒤로 묶은 채로 앉아있었다. 점심 때 혼자 먹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좀 뺏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서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랬는지 시험은 떨지 않고 비교적 여유롭게 봤다. 주변 수험생들의 얼어있는 표정들을 보면서 나도 저랬나 싶었다. 다소 편하게 봤다.

 

점심시간에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삼각 김밥을 꺼내기가 그렇게 민망할 수 없었다. 같이 시험을 보는 고3 친구와 같이 먹을 요량으로 함께 자리했는데 그가 바나나 한 송이를 툭 하고 책상에 올려놓는 순간 내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하나 준다고 바나나 하나를 톡 따서 건네줘서 냉큼 고맙다며 받아먹긴 했지만 이 덩치가 이처럼 중요한 때에 어떻게 바나나를 점심으로 싸올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 친구랑 그 때 이후로 연락을 안 한다.

 

왜 삼각 김밥을 싸왔냐며 묻자 나는 원래 시험 볼 때 많이 안 먹어서 그냥 이것만 싸왔다고 둘러댔다. 그러면서 슬쩍 나는 바나나 하나를 더 집어서 먹었다. 그 친구는 삼각 김밥을 마다했다.

 

수능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크게 잘 보지도, 못 지도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부모님과 동생이 유심히 그날 9시 뉴스를 지켜보는 사이에 슬그머니 들어가 수능관련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수능성적표를 받고 부모님께 알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동안 나에게 쏟아 부은 학비를 날리고 다시 학교를 옮기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었을 때 굉장히 놀라며 하시는 첫 말씀이 '너도 봤냐!?' 이었다.

 

그동안의 일을 간략히 말씀드리고 그동안 숨겨왔던 사정을 말씀드렸다. 대뜸 어머니께서 시험 볼 때 점심은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으셨다. 그 때... 진짜 가슴이 찡했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다 들으신 후 아버지께서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동안 들어간 학비는 없다고 생각 할 것이니 너의 의지대로 해봐라.' 고 하셨다.

 

그 날 저녁에 방에 들어가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긴 수험생 인생이 끝났다.

누가 나에게 재수에 대해 묻는다면

일부러 할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하게 된다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힘겨움을 이겨내면 그 무엇보다 값진 인생의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될 거라고 이야기 하겠다.

 

남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이 결코 '허비'된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 시절의 경험이 지금과 앞으로의 내 인생에 미치도록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고 무슨 일이든 결국엔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때의 그 시절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이다.

 

무한한 자신감과 승리감을 주는

그러나 때론 심한 열패감에 빠지게 하는 수능이라는 녀석이

또 찾아오려나 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도 이렇게 감상에 젖게 하는 수능이라는 글자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나에게는 훗날 내 인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안산에 사는 안우용 씨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며...

 

written by m a u n a k 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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