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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 새벽 3시 30분 창 밖의 아이

최용진 |2006.11.25 02:04
조회 23 |추천 0


 

 

 

새벽 3시 30분.

창문 밖으로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아이다. 그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다. 나는 읽던 책에 갈피를 끼우고 창문으로 다가간다. 아무리 공을 들여 열어도 조금은 소리가 나게 되어 있는 추운 계절이라서 나는 예전보다는 더 조심스러운 맘으로 드르륵- 하고 창문을 살짝 연다. 그 아이의 집과 우리 집은 담 하나로 막혀 있다. 담 너머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고 그 아이는 늘 화단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운다. 다행히도 내 방은 2층이기에 창을 열면 그 아이를 편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갓 스물을 넘은 듯한 외모의 그 아이가 실제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작정 내 맘대로 스물 두 살이라고 붙여버렸다. 아직은 학생일거야. 대학생이겠지…군대는 갔다 왔을까…내가 서른 두 살이니까 우린 딱 열 살 차이인거야. 음…열 살 정도는 괜찮아…

 

 

그 아이는 어김 없이 새벽 3시 30분이면 집 앞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시간이 10분 정도 늦을 때도 있지만 거를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추운 겨울이면 두터운 점퍼를 입고라도 꼭 나온다. 작년 겨울부터 그 아이를 지켜봤으니까 이제 거의 1년이 되어간다. 그 아이는 담배를 피우면서 꼭 소변을 본다. 화단 옆 하수구는 그 아이의 재떨이이자 변기이기도 하다. 오늘도 변함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볼 일을 본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 애가 피우는 담배 연기는 탐욕스러운 혓바닥이 되어서 나의 창문을 애무한다. 나는 그 아이의 폐 속 냄새를 안다. 그 아이가 몇 살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의 소중한 음부와 폐 속 깊은 곳의 냄새까지 속속들이 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사랑하는 거다.

 

 

남편과 같은 방에서 잠을 안 자는 것도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새벽 3시 30분이면 나는 늘 자유롭다. 그 아이도 물론 그렇다. 그 아이는 꼭 담배를 두 개피씩 피운다. 하나는 소변을 보며, 다른 하나는 화단을 보며 피운다. 한 번도 하늘을 본다든가 우리 집 창문을 쳐다보진 않는다. 요즘처럼 화단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더라도 꼭 두 개피째 담배는 텅 빈 화단을 보며 피운다. 나는 두 손을 둥글게 말아서 눈에 갖다 댄다. 처음엔 가짜 망원경처럼 되지만 손을 조금만 신경 써서 모양을 바꾸면 영락없이 하트가 된다. 수줍게 손으로 만든 하트의 영역 안으로 그 아이를 본다.

 

 

그 아이가 소변을 보며 담배 두 개피를 피우고 들어가는 시간은 고작 10분에 불과하다. 3시 40분이면 다시 덜컹- 문을 닫고 들어간다. 집 안의 불이 꺼지고 잠을 자는 모냥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 영화와 같은 상상을 한다. 하루쯤 그 아이가 나오지 않는 날이면 어떨까. 창문 밖으로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아이가 아픈 걸까. 아니면 여행을 떠난 것일까. 이틀쯤 연이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나는 걱정이 되어 인내하기 어려울지도 몰라. 바보처럼 대담하게 그 아이의 집 대문을 열어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이런 것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 우리 사이에선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없다. 그 아이는 하루도 빠짐 없이 새벽 3시 30분이면 덜컹- 하며 나왔고, 그 아이가 덜컹- 하면 나는 드르륵- 한다.

 

 

남편은 연봉 7천 정도가 되는 어엿한 수완가이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것과 잠을 같이 안 자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내 입장에선 조금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이 때다 싶어서 나도 조건을 하나 걸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낚시 여행을 가서 며칠 들어오지 마세요. 남편은 흔쾌하게 동의를 해주었다. 결혼 3년 째 우리는 서로의 약속을 잘 지키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 나는 혼자 잠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남편은 낚시라는 새 취미에 흠뻑 빠져있다. 서로 사랑을 얘기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정으로 살고 있다고 쓴 웃음을 짓지도 않는다.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연봉 7천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정말 중산층이라면 연봉 7천 정도는 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선물했다.

 

 

내가 저 아이에게 갖고 있는 탐욕은 무엇일까. 그 아이의 힘 없는 성기를 보면서 한 번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 애가 피우는 담배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한 번도 그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다. 단지, 매일 퇴근한 남편에게 녹차 한잔을 갖다 주면서 언젠가 그 아이에게도 따뜻한 녹차라떼 한 잔을 타주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다.

 

 

며칠 후, 소소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마침, 남편이 낚시를 가서 혼자 있는 날이었다. 새벽이 되자 그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익숙한 담배 냄새가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마음 속에서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던 것이 사건의 시작이자 전부이다. 나는 일부러 창문을 조금 세게 열었다. 나의 마음을 담아 그 아이에게 제법 큰 드르륵- 을 보냈던 것이다. 소변을 보고 있던 그 아이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뛸 듯이 기쁜 맘이다. 그 아이도 알고 있다.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다. 몰랐다면 분명 창문 여는 소리가 크게 나면 놀라서 쳐다봤겠지. 지금 그 아이가 모른 척 계속 볼 일을 보는 것은 나의 존재를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증명해준다. 그랬구나. 너도 알고 있었구나. 매일 너를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너도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 거구나…지금.

 

 

그 이후로 나는 창문을 쉽게 여는 편이다. 그 아이는 며칠 전에 머리를 회색으로 물들였다. 가로등 불빛에 비춰보면 회색에 붉은 빛이 섞여 얼룩져 보이는 것이 귀엽다. 그 아이는 하루도 빠짐 없이 나올 만큼 성실하다. 나 또한 늦잠 때문에 남편의 아침 밥을 못 챙겨줄 정도로 성실하다. 이렇게, 나를 둘러싼 조그만 세상은 기막힐 정도로 균형적이며 안정적이다.   

 

 

 

 

 

[그림 후기]

 

간만에 그림을 그리려니 손에 익지 않아서 애를 먹었네요.

2B Pencil로 밑그림을 그리고 Oil Pastel로 채색을 했습니다.

머리 속에 그렸던 그림과 어느 정도는 일치해서 역시 헐렁한 그림이지만 맘에 듭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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