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득점기계' 릭 배리
▲ 본명 : 리차드 프랜시스 데니스 배리 3세
▲ 출생 : 1944년 3월28일(현지시간), 뉴저지
▲ 출신교 : 마이애미
▲ 드래프트 : 1965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1라운드 4번)
▲ 신장 : 6-7(200cm)
▲ 체중 : 220(99.8kg)
▲ 주요 수상경력 : 명예의 전당 헌액(1987년), NBA 우승 1회(1975년), NBA 파이널 MVP 1회(1975년), All-NBA First Team 5회(1966·67·74·75·76년), 올해의 신인(1966년), 올스타선정 8회, 올스타전 MVP 1회(1967년)
NCAA와 NBA, ABA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던 릭 배리는 득점에 관해서는 도가 텄던 인물이다. 통산 25,000점을 돌파했고, 평균 30득점을 넘긴 시즌도 4번이나 된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득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공격력을 갖춘 파괴력 넘치는 선수였다.
배리는 NBA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뒤 ABA로 옮겼다가 다시 NBA로 복귀했다. NBA로 복귀했을 때 배리는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과거 득점 위주의 플레이에서 패스에 눈을 뜬 것이다. 배리는 스카티 피펜이나 래리 버드처럼 훌륭한 패싱력을 갖춘 포워드로 평가받는다. 맷 구오카스는 배리와 버드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버드는 주로 외곽에서 패스를 찔러줬지만 배리는 돌파에서 나오는 패스가 더 많았다."
잭 램지는 "배리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는 어디에서나 득점할 수 있었고,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도 훌륭한 움직임을 보여줬다"라고 평가한다. 구오카스의 배리-버드 비교론은 이어진다. "배리는 슈터라기 보다는 득점기계였어요. 그는 40점이나 50점도 득점할 수 있었으니까요. 외곽에서 슛을 던져 잘 들어가지 않으면 돌파를 했어요. 배리는 버드처럼 훌륭한 패스를 했지만 버드만큼 볼핸들링이 탁월하진 못했죠. 다만 득점의 폭발력만 따지면 버드는 배리를 따라갈 수 없어요"
67년 NBA 파이널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우승으로 끝났지만 배리의 플레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정규 시즌서 68승13패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고, 윌트 체임벌린은 평균 24득점, 24.1리바운드(리그 1위),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 시즌에 배리는 평균 35.6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따냈고, 파이널서 만난 필라델피아에 무서운 득점 세례를 퍼붓는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선수이기도 했던 구오카스는 배리를 마이클 조던에 비교했다. "시리즈 3차전서 배리는 55점을 기록했죠. 그 시리즈에서 배리는 평균 41득점(정확히 40.8점, 93년 조던이 파이널서 기록한 평균 41.0점이 나올때 까지 파이널 최고 기록)을 올렸어요. 지금의 조던처럼 플레이했지요. 저도 배리와 매치업을 벌였는데 그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골밑에서 막히면 지금의 3점 라인(당시에는 3점슛이 없었으므로)에 해당하는 곳에서 외곽포를 쏘아댔으니 제가 '조던같다'라는 표현을 쓴 거예요. 배리가 득점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넣지 못했기 때문이지 상대가 그를 잘 막아서는 아니었으니까요."
67-68시즌 워리어스와 분쟁을 일으켜 시즌내내 출장하지 못했던 배리는 68-69시즌을 앞두고 ABA의 오클랜드 오크스에 입단하게 된다. 팬들은 돈 때문에 배리가 NBA를 떠났다고 비난했지만 배리 자신은 "돈 문제 만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도 같은 금전적 조건을 제시했지만 오클랜드가 배리의 장인이자 마이애미대 시절 은사였던 브루스 헤일을 헤드코치로 영입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배리는 과감히 NBA를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헤일은 배리가 합류하기전 오클랜드와 결별했고, 알렉스 해넘이 대신 사령탑을 맡게 된다. 배리는 오클랜드에 입단하자마자 팀을 ABA 챔피언십으로 이끌며 ABA에서의 화려한 성공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