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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mage à Pierre Gagnaire

윤화영 |2006.12.02 09:01
조회 26 |추천 0


'예술가는 자기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산다'

 

요리를 예술이라고 과연 할 수 있다 없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내가 예전에도 홈피에 나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지만,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하여'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진 것'은 모두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가 요리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요리도 훌륭한,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장 심하게 받는, 예술이라고 믿는다.

 

이제 식당 restaurant이란 곳은 단지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닌, 즐기기 위한 곳이고,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어디에 살고 누구와 만나는지와 동일하게 한 개인의 취향과 지위를 알려주면 지표 중에 하나가 된 그런 시대이다.

 

과거에 배고프던 시대에는, 허기를 면하기 위함이 주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물질이 풍부해지고, 양조/재배/생산/양식/사육 기술의 발달로, 우린 유사 이례 없었던 풍부한 식생활 시대에 살고 있는 '복 받은' 세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이걸 우리 세대라고 한정하는 이유는, 물론 서양의 얘기겠지만, 분자조리학의 발달로 이제는 먹기 위한 음식보다는 점점 더 '즐기기' 위한 음식으로의 전이가 진행되고 있기에.

 

그렇다고 인간이 캡슐로 된 갈비탕을 먹고, 빨대로 소갈비구이 쥬스를 마시고 하는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간의 변화는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후에 한 몇 쳔년간의 식생활의 변화보다 더 많은 진보/진화가 이루었졌다.

 

그 가운데 우뚝 선 인물이 있으니 바로 el bulli의 Ferran Adrian이 있다. 하지만 그와는 다른 방향을 택한 인물이 바로 삐에흐 갸네흐 Pierre Gagnaire이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예를 들 수 있을까.

합당하진 않지만, 이해하기 쉽게, 한국사람에 음식의 '궁합'을 얘기하라고 하면 '족발과 새우젓'을 들면 될까.

 

훼란 아드리안은 이제 족발과 새우젓의 모든 구성요소를 다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 후에 새우젓의 작은 새우 하나 하나에 주사기로 구운 돼지고기의 육즙을 주사하고, 새우젓의 액체부분을 alginate라는 화학품을 이용하여 캐비어같이 톡 터지는 젤리로 만들고, 돼지의 '스지' 부분을 걷어내고, 이 안에 해초에서 추출한 agar-agar로 새우의 육즙을 또 다른 텍스춰의 젤리로 만들고, 같이 곁들여 먹기도 하는 보쌈김치를 갈아서 액체로 만든 뒤 숙주에서 추출한 lecithine이란 화학약품으로 이 액체를 무스(거품)으로 만든다. 스페인에는 따빠스 tapas라는 문화 덕분에 이런 한 입 즐기기 위한 음식을 여러가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갸네흐는 어떻게 할까.

정말로 그의 방식은 다르다.

"돼지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먹는다면, 새우젓은 돼지고기를 찍어먹으면 되겠네?"

그가 가진 발상법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붉은 살을 가진 새들(비둘기, 오리, 메츄리 등등)과 초콜렛의 만남, 모두 이해를 못 했던 프와그라와 굴, 설마 이게 디저트야라는 말을 우선 하게 했던 붉은 피망과 초콜렛 등등 이루 말로 하기 어려운 독특한 제안들.

 

문화는 발전한다.

그러기에 문화엔 -ism이라는 접미어를 붙치는 '사조'라는 것들이 계속 새로 등장한다.

 

문화엔 식문화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매일 3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이 문화활동엔 이 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입맛만큼 변하기 쉽지 않은 것이 없기에. 새로운 맛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1997년 그가 처음 문을 열었던 레스토랑을 파산하기에 이른다. 빠리도 아닌, 지방에서 그가 문을 연 곳은 그의 '앞서가는' 스타일을 감당하기는 좀 벅찼기에.

 

그리고 그는 빠리행 떼제베 TGV에 짐을 싣고, 샹젤리제 한 복판, 가장 클래식한 프랑스 음식을 하는 따이유벙 Taillevent 옆에 문을 연다. 게다가 그 때가 알랑 뒤꺄스 Alain Ducasse가 59 Poincaré를 연 바로 그 시점이다.

 

그는 별 3개를 얻고,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만든다. 그리고 그를 숭배하는 젊은 요리사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조합의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알 라 가녜흐 à la Gagnaire'라는 경의에 가까운 수식어를 붙치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3번의 만남이 있었다.

나이든 다른 쉐프들과 다르게, 그는 언제나 피로에 쩔어있다. 그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친구놈들의 불평도 많다. 매 서비스마다 음식이 변한다는 것이다. Improvisation. 바로 재즈의 그것처럼,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반영한다. 물론 우리들에겐 정말 죽음인 일이다. 아무 것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미 뜬 고기의 필레의 결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하냉장고 방안에 있는 야채들의 껍질을 정신없는 그 와중에 벗겨야 하고.

 

한 번은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가녜흐씨가 파자마에 두꺼운 나이트 까운을 입고 산발을 하고 불 앞에 서 있었다고 하더라. 푸코가 말한 바로 그 정신 이상자. 그래서 천재와 광자는 종이의 양면이란 것일까.


내년 1월 그가 서울에 간단다.

광고 '찌라시'를 보니 디너에 28만원이더군. 와인이 포함 안 된 가격이겠지만, 그의 빠리 레스토랑의 가격대와 비교하면 정말 '헐값'이네. 반면 걀라 디너엔 뭐가 나오는지, 와인이 포함된 가격인지 모르겠지만, 50만원이군. 120명이라... 글쎄... 사실 갸스트로 서비스의 맥시멈을 60명으로 보기에... 얼마나 많은 불(火)과 요리사와 서버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갸네흐의 음식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그냥 50명으로 한정되는 디너가 좋지 않을까.

 

최근에 있었던 엉리 자이에 Henri Jayer의 죽음은, 이런 노장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운 좋게도 난 호뷔숑 Joel Robuchon이나 뒤꺄스 Alain Ducasse, 그리고 가녜흐씨가 직접 잡았던 냄비에서 나온 소스를 맛을 보고, 그들이 익힌 고기를 옆에서 접해보았던 우리 세대의 드문 요리사 중 하나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경험해 보는 일은 평생의 귀중한 추억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11월 말에 출판한, 읽다가 눈물을 흘릴뻔 했던, 그의 40년 요리사로서의 삶의 첫번째 요리책 Pierre Gagnaire Lucide & Ludique (Lucid & Ludicrous)의 전문으로 마감한다.

 


 

Préface

 

Malgré mon allergie tenace et définitive à la recette bien pesée, bien comptée et bien dite, quarante ans de cuisine méritent tout de même un temps d'arrêt.

 

Mon apprentissage a commencé le 23 août 1966

J'étais en vacances à Wimereux ; dans ce Nord de la France les couleurs sont tendres, doucement voilées, presque humides comme celles des photographies de Peter Lippmann qui illustrent ce livre. Un soudain coup de téléphone va interrompre le cours de ma vie insouciante : "Vite, vite on a besoin d'un apprenti." La place tant convoitée par mon père... est disponible!

 

Et me voici quarante ans après.

Ces années de cuisine m'ont structuré, donné le goût du bel ouvrage, le goût des autres aussi.

Cette tentative d'excellence, malgré les turbulences, les doutes, les inquiétudes, m'a apaisé, appris à parler, à aimer et à être aimé. En dépit des râleurs, des faux pas, des cascades, être au bout de ces années sincèrement et loyalement reconnu procure une saine satisfaction pour soi et aussi pour ceux de mon équipe qui me suivent depuis tant d'années sans faillir.

 

Avec la complicité attentive et rigoureuse d'Eric Trochon, nous avons sélectionné les recettes significatives du cheminement de mon travail de cuisinier depuis 1966.

 

Le destin sait boucler les chemins avec humour : la première recette simplissime est celle d'un gratin de pommes de terre " vu " plus qu'appris chez Monsieur Paul (Bocuse), la dernière, une corolle de haddock tout aussi simple et candide, imaginée pour quelques amis cuisiniers...

 

Ce livre ne joue surtout pas à être encyclopédique ; c'est un regard étonné mais lucide sur ces années si vite passées et qui me font dire : " Je suis encore un débutant qui produira sa plus belle recette demain. C'est juré ! "

Merci Peter pour ta disponibilité et ta rigueur, merci Jean-François pour ton amitié inoxydable.

Aux rêveurs...

- Pierre Gagnaire


Pierre Gagnaire est né dans une famille de restaurateurs. Il commence à seize ans un apprentissage de cuisinier chez Jean Vignard à Lyon. Cet homme âgé, formateur vingt ans plus tôt du regretté Alain Chapel, lui inculque, sans qu'il s'en doute encore, quelques clés essentielles de l'Art culinaire. Onze ans plus tard, Pierre Gagnaire ouvre son premier restaurant. Et c'est en lisant un texte commentant un de ses plats que se révèle à lui le sens du métier qu'il exerce : la cuisine peut être un réel moyen d'expression et de relation aux autres. Comme la peinture ou la musique, elle est capable de communiquer des émotions, du plaisir, du bien-être. Dès lors, elle devient pour lui une aventure, un jeu de pistes sans fin.

 


 

http://www.pierregagna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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