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잘못된 심판: 삶의 심판, 예수의 심판
[과연,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1) 우리가 罪人(죄인)이라는 그 잘못된 審判(심판)
「죄인(罪人)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단지 광신적인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李相奉
There are no sinners,
Only there are religiose judgements. ~Sang-Bong Lee, Ph.D.」
사람은 행복(幸福)을 찾도록 만들어져 태어났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위와 노력은 행복을 찾는 것 뿐이다.
알고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행위 자체가 행복의 찾아 헤맴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과연 자기 자신을 해치려고 하겠는가?
하다못해 이성(異性)으로 부터 학대를 받음으로써,
쾌감을 느낀다는 Masochism이라는 것도,
단지 행복을 찾아 헤매는 방법의 하나이며,
알코올이나 마약의 노예로 전락된 것도,
알고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는 것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도
“이렇게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라는,
또다른, 행복의 추구일 뿐이다!
이와같이…
행복을 찾아 헤매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 다른 방법을 ‘罪(Sin)’라고 해서는 안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죄(罪)는 Sin으로
‘종교상 · 도덕상의 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犯罪) · 범법(犯法) · Crime
(법률상 일정한 형벌로 제재를 받아야 될 위법 행위) 하고는
그 기준이 다른 것을 말한다.
그대들의 이해력을 도와주기 위하여 예를 들어보기로 할까?
어떤 종교 단체에서, 임의로, 정해놓은 교리 ·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大罪 · 지옥에 갈 罪’ 라고,
함부로 심판 내리는 것 자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와같이 제멋대로 정해놓은,
종교의 교리 · 규칙 · 기준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지켰다고 해서
‘성인(聖人) · 성자 · 죄없는 사람` 이라고 추앙하는 짓도
이상스럽기는 매일반 이다!
이와같이,
선(善) · 악(惡) · 성인 · 죄의 심판(Judgment) · 회개의 강요 행위는?
모두 다 종교의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
‘회개(悔改)’라는 것은?
기독교의 산물인 셈이다!
알고보면, 기독교는 ‘회개하라!’라는 종교이다.
“야훼께 회개하라!”
“그대들의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하라!”
“인류는 태어나기 전(前)부터, 이미 씻을 수 없는 죄인이다!"라고 떠드는데…
과연, 인류의 창조자라는 그 야훼가
“인류의 원죄 · 선함과 악함을 심판하고, 단죄할 만큼,
지선(至善)하다”고, 그대에게는 느껴지는가?
깊이 관조하여 보시라!
맹신적으로 맹목적으로 세뇌된 교리에, 무조건,
따라가는 길만이,
정말로 그대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는가?
自然(Nature)에는 전혀 있지도 않은,
그러한 선(善)과 악(惡)의 개념은?
알고보면, 교활한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 뿐이다!
생각하여 보자!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에게, 과연 ‘선과 악의 개념’이 있는가?
자연의 현상이나 흐름 속에
과연 ‘선과 악’의 차이와 경계가 있는가?
그렇다!
선 · 악 · 죄의 심판 · 회개(悔改)의 개념은?
순수하지 못한, 교활한 사람의 발상일 뿐이다!
자기가 그토록 교활하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뿐이다.
교활하고 음흉한 마음일수록,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다.
교활한 사람일수록 ‘선함과 악함’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그어 놓고서,
그 기준으로만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처벌 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정해놓은 경계선은 이렇다.
“선(善)이 아니면, 그것은 악(惡)이다!”
“선이 없는 것이 바로 악이고, 따라서 악(惡)이 없는 것이 곧 선(善)이다!"
라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여 보자.
과연? 그들이 떠드는 선(善)과 악(惡)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그 어떤 근거에서 그와 같은 기준을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과연 ‘아름다움’을 定義(정의)할 수 있는가?
그대는 과연 ‘예술’을 定義할 수 있는가?
그대는 과연 ‘진리’를 定義할 수 있는가?
그대는 과연 ‘삶’을 定義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떻게?
종교인들은 ‘善 · 惡’ 을 定할 수 있었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인가?
어떻게?
자기네들의 자(尺 Ruler) · 기준 · 심판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결정하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 얼마나 음흉하고 교활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惡 · 善 · 惡人 · 聖人이라는 요상한 개념을 만들어 내었을까?
내가 그대들에게, 다시한번, 부탁하노니…
제발 그대 자신의 ‘삶의 행복’을 위하여,
그 점에 대하여, 깊이 관조(觀照)하여 보시라!
(2) 예수가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다!
「단 하나의 선(善)이란 아는 것 뿐이며,
단 하나의 악(惡)이란 모르는 것 뿐이다.
There is only one good: knowledge,
And only one evil: ignorance. ~Socrates (470~399 BCE)」
아직도 그대들은 삶속에 선(善)과 악(惡)이 엄연히 존재하고 믿고 있는가?
과연, 그대의 삶속에 회개(悔改)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그대의 삶을 어느 누가 심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아직도, 그대의 몸속에는
태어나기 전(前)부터 낙인찍힌 죄(罪)가 들어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은?
그 어떤 종교 단체에서 정해놓은 교리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그 무슨 용도(用途)대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오로지, 목적용, 용도용으로 만들어진 공구, 도구, 기계 따위나
목적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 사람은 도구가 아니다.
따라서 그 어떤 종교단체에서 정해놓은 기준,
교리가 그럴 듯하다고 해도,
그런 기준, 그런 교리는 그 종교단체 내(內)에서 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나친 것이다.
그대들의 이해력을 도와주기 위하여, 예를 들어보기로 할까?
축구의 규칙은 축구의 경기 중(中)에만 그 가치와 효력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야구의 규칙, 농구의 규칙, 권투의 규칙... 등등의 모든 규칙은
그 경기장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독교도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야기 중(中)의 하나에…
마태오(21:19)와 마르코(11:14)가 있다.
무화과 나무에서, 예수가 배가 고픈데, 열매가 열렸는지 찾아 보았더니,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예수가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고, 심판하여, 죽게 하였다.
기독교도들은 그런 예수의 저주와 심판 조차도,
위대한 ‘초능력의 연출 행위’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와같은 만행을 자랑스럽게 까지, 여기고 있는데…
다시 한번 이야기 하건데,
자연(自然)은 종교 단체의 敎理(교리)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 단체의 교리를 따라서 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자연(自然)은 교리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自然은 종교단체를 위하여(For)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가 행하였다는 그런 식의 ‘초능력(?)의 연출행위’에는,
전혀 관심조차도 없는 사람이기에,
예수가 그 무화과 나무를 심판하고, 저주해서, 말려 죽이기 전(前)에,
그가 이성(理性)이 있는 者라면?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못하게 된 원인을,
제대로, 찾아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 뿐이다.
(만약 말이다…
예수에게 초능력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었다면?
그리고 예수에게 자기의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그 보잘 것 없는 무화과 나무나 말려 죽이는 짓을 하기 보다는…
그 사막을 옥토로 변하게 하였어야 되는 것 아닌가?)
「아직 시기가 이르지 않은가?
(실제로, 시기도 일러서 그 때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
그 나무가 다른 나무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햇빛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가?
길가에 서있는 나무가 되어서, 사람들이 건드려서 그런가?
토양이 나빠서 그런가?
비료는 제대로 주었는가?
수분은 충분 했었나?
나무에 병이 있었나?
나무에 벌레는 없었는가? 」등등을…
어떻게 해서, 그 무화과 나무의 운명을,
오직 ‘자기의 기준 (예수의 배고품)’에만 두어야만 했을까?
왜? 모든 자연(自然)이 자기를 위하여(For)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사람이란, 단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인데…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그 어떤 종교의 교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행복을 찾아서,
한 평생을 흘러가는 것이기에
‘선과 악’이라는 것이 이따금 함께 섞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선(善)과 악(惡)이 그 무슨 기찻길 처럼, 평행선을 이루면서,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이 교차되듯이,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쾌감과 고통, 사링과 미움 등등이…
서로 서로 얽히고 풀리면서 삶의 여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들 나름대로의 마지막 도착지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높은 곳, 낮은 곳, 추운 곳, 더운 곳, 더러운 곳, 깨끗한 곳,
급한 곳과 느린 지점을, 골고루 모두 다 거치면서,
수천마일의 먼거리를 거쳐서 바다에 이르게 되듯이...
그렇다!
사람의 삶도,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다 거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도착지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인간들의 삶, 인생을 통한 모든 노력은?
단지 ‘자기의 행복’을 찾는 것 뿐이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자기의 지식內에서, 제 몸에 맞게 찾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큰 잘못으로도 보이고,
씻지 못할 실수로도 보여질 수는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다 ‘한때의 물거품’일 뿐이다.
그러한 ‘한때의 물거품’을, 심판하고 있다는,
‘종교단체에서 내세우는 신(神)’을
그대들은 까닭없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 뿐이다.
‘두려운 신(神)’ 그것은 바로 종교의 산물이다!
나는 그대들이 어떤 종류의 신(神)을 믿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발, 그 교활한 발상에서 나온
‘신의 속성(屬性)’만큼은 피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왕 신(神)을 믿으려면,
삶의 원동력, 삶 자체의 근원, Creativity 자체를 믿어보면 어떨까?
그렇다!
모든 것은?
그대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삶속에서 얻어지는 모든 지혜를 통하여,
그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대는,
하느님, 神, 야훼, 예수 또는 어느 누군가가
그대의 삶을 심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맡기려고 하려는가?
~글/ 李相奉 (철학박사)
*서울대 동창회보 (2000,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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