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절기 탓일 듯하다. 그렇게 따지자면 가을보다는 겨울이 더 독서하기 좋았을 텐데. 왜 하필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했었을까?
긴 밤 지새우며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날도 추우니 마실 다니기도 그런지라 이불 깊이 뒤집어 쓴 채 책이나 읽는 게 남을 그런 겨울도 있는데, 그렇다고 겨울잠을 잘 것도 아닌데, 딱히 할 일들 없어서 사랑방에 모여 화투나 치면서들.....
농경 사회에서 연중 가장 큰 일인 가을걷이가 끝난 뒤 찾아오는 뿌듯함과 그로부터 오는 허전함 탓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하니 책읽기가 그만이었으리라.
실례가 안 된다면 겨울이 아닌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삼은 이유를 나름대로 하나만 추가시켜보리라. 겨울에는 편지를 써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나긴 겨울밤은 편지를 쓰기에 제 격이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할 일로서 책읽기 보다는 편지쓰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쓰다가 안되면 지우고 지워도 안되면 찢어가면서... 긴 밤에 그거말고 할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 말고 딴 짓이 하나 있긴 하겠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하기엔 적절치 않은데다 초저녁부터 할 일도, 날밤 까며 할 일도 못되는지라^^
가을에는 책을 읽고 겨울에는 편지를 쓴다?! 그것도 연애편지를 쓴다면 얼마나 낭만적이며 철학적인가? 게다가 합리적이다. 독서로 충분히 공급받은 자양분을 담은 영양가 있는 편지는 모르긴 몰라도 감동의 쓰나미로 다가올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튼 그런 연애편지의 계절이 다가왔나 보다. 오죽하면 한때 인터넷에 매진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온라인교 맹신자가 다 연애편지를 썼겠는가? 지난 3일 노 대통령이 열린당 당원들에게 띄운 편지는 그야말로 연애편지였다. 눈물콧물 다 빠지게 하여 애정마저 식어고무신 거꾸로 신으려는 애인을 붙잡기 위한 그런 편지였다. 그리고 어제(7일) 노 대통령 보좌관 출신의 백원우 의원이 김근태 의장을 향해 쓴 편지는 이미 떠나간 애인 탓에 찌들고 화난 지인을 대신해서 쓴 또 다른 연애편지였다.
같은 연애편지지만 본인이 애인을 향해 쓴 편지고 지인이 대신 써준 편지기에, 하나는 떠나려는 상대를 향해 쓴 것이고 하나는 이미 떠난 사람을 향해 쓴 것이기에 틀려 보일 뿐 참담한 심정과 분노는 같았다.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둘 다 문제가 많은 편지라는 점이다. 연애편지는 당사자에게 은밀히 써야 한다. 공개하는 것은 본인의 망신이고 상대방에 대한 무례라는 점에서 연애할 자격조차 없는 거렁뱅이들의 짓거리로 보인다. 연애편지로서의 기본을 망각한 흠결사항이 원인무효사유가 된다. 또 하나 문제는 독서의 계절에 책을 읽으며 준비한 편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늘을 높고 말이 살찐다는 그 좋은 계절 내내 책 한번 읽지도, 조용히 사색하지도 않은 채 하늘높은 줄 모르고 뼈와 살이 타도록 쌈박질한 냄새만 짙게 밴 글이다.
두 사람의 글은 연애편지로 치장했으되 형식에서나 내용에 있어서 연애편지가 아니다. 본인을 스토커 수준으로 비하시켜 만들어낸 명선전포고문(?)인 듯하다.
가을엔 책을 읽고 겨울엔 연애편지를 쓰자. 그리고 연애편지는 둘만 아는 비밀로 삼자. 그런 상식적인 생각을 굳이 말하게 만드는 것이 온오프라인의 경계에 선 우리 시대정신인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