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마다 서로 몇 마리의 모기를 잡았노라고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야단이다.
그러나 낮이 아무리 더워도 시절은 속일 수가 없다. 아파트에 있는 네댓 그루의
감나무에는 손이 닿기 어려운 높은 곳에 감이 남아있다. 가지가 늘어진 채로 곱디고운
감이 휘영청 걸린 보름달처럼 이 가을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제 10월이니 올 한 해도 그믐달처럼 지고 있구나’ 여겨지며 돌아보지 않던
일들을 챙겨보게 된다. 이제 뭐라 부인할 수도 없이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일들에 대한 공과를 가려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와중에 원료범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리라 싶어 간단히 소개해 보려 한다.
원료범은 본래 이름이 황학해(黃學海)라는 설이 있으며, 그는 임진왜란때 조선의
요청으로 왔던 명나라 원군사령관 이여송(李如松)을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편모슬하에서 자라 가난하여 과거를 보아 진사가 되고 싶었으
나 공부를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의사가 되면 의술로 생활을 꾸릴수 있을 뿐만 아니
라 남을 구제할 수도 있고, 또 의술에 정통하면 명의로 명성을 떨칠 수도 있다. 이것이
네 아버지의 숙원이다.“ 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의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자운사(慈雲寺)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벼슬길을 갈 사람으로, 내년이면 학궁(學宮:현립학교)으로 진학할 텐데,
어찌 글을 읽지 않는가?”
원료범이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의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자 노인은, “거 아깝다,
자네는 진사가 될 수 있는 훌륭한 관상을 타고 났네. 자네는 그러한 운명의 소유자란
말일세.”라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운남(雲南) 사
람으로 성(性)이 공씨(孔氏)인데, 그가 원료범의 운수를 뽑아 보았더니 이러하였다.
공선생을 통하여 원료범은 평생 동안의 길흉을 점쳐 보았고, 살아가면서 겪어보니
신기하게도 공선생의 예언은 오차 없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성공은 그
런대로 이루어졌으나 실제로 자식은 없었다. 결국 그는 사람의 운명이란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다. 출세도 하고 싶고 떼돈도 벌고 싶은, 갖가지
희망에 부풀어 모두들 안달복달하지만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자식도 없고, 몇 년 몇
월 몇 일에 천명을 마친다는 수명까지 정해져 있으니, 이 정해진 짧은 인생에 무엇 때
문에 부질없는 일을 두고 애를 쓸 것인가?“ 이렇듯 원료범은철저하게 운명론자가 되
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남경(南京) 근처 서하산(棲霞山)에 있는 절에 묵게 되었는데, 거기
에 운곡(雲谷)이라는 선사가 있었다. 운곡선사가 원료범에게 물었다.
“그대가 여기 온 뒤로 지켜보았더니 나이답잖게 잡년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점잖으
니 어떤 수행을 했길래 그런 품격을 지니게 되었는지 참고로 들려줄 수 없겠소?“
원료범이 대답하기를 “저는 소년시절 의술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제 인
생의 전정(前程)을 낱낱이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은 그 뒤로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지요. 그래서 부질없는 일은 체념하고 자연에 맞는 삶을 살기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니 망상할 만한 건덕지가 남아 있을 턱이 없지요.“하였다. 그러자 운곡선사는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며 하는 말이, “나는 그대를 호걸로 여기고 대했는데 이제 보니
그대로 한낱 범부(凡夫), 중생(衆生)에 불과하구려! 이거 크게 잘못 봤구먼!” 하는
것이었다.
이에 원료범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선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대의 체념이나 깨달음이란 극히 단면적이며 저급하고 유치한 걸세. 인간에겐 운
명이란게 있지 그러나 그 운명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일평생 파고들어도 알 수 없는 걸
세. 우리가 한 평생 학문수업 끝에 제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 탐구한 뒤에야 비로소 제
운명이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네.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정해지는 걸세. 그
따위 한 노인의 관찰이나 예언으로 정해져 버리는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
지. 아닌게 아니라 사람은 운명이란 것을 갖고 있기는 하지. 하지만 운명은 학문에 의
해 끝없이 밝혀지는 것이며 수업에 의해 무한히 창조되는 걸세.
운명은 하늘이 이루는 것이면서 또한 스스로 만드는 걸세. 무엇 때문에 많은 성현들
이 생애를 걸고 학문수업을 했겠나? 만약 자네 말처럼 간단하게 인간의 운명이 정해
져 있는 것이라면 그 많은 성현들이 부질없는 일을 두고 허망하게 매달린 꼴이 되는
걸세. 자네의 운명, 즉 자네의 소질적 능력과 작용이란게 그렇게 간단하단 말인가? 그
래 가지고서야 자네는 쓸데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운곡선사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큰 깨달음이 온 원료범은 이제까지의 자
신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어 매일매일 선행을 하며 그것을 일일이 붓으로 기록하며 살
았더니 선행이 3,000가지가 된 이후 자신의 운명이 크게 바뀌어 늦게 자식도 얻고,
53세가 아닌 69세까지 수를 더 누렸다는 것이다. 그가 운곡선사로부터 깨달은 바를
아들에게도 일러주려 쓴 책이 요범사훈(了凡四訓)이라 한다. 그럼 그 운곡선사가 맒
한 개운(開運)의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는 적선이요, 둘째는 명상이며, 셋째는 독서요, 넷째는 풍수알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덕목은 지명(知命)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開運할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믿음과 끊임없는 노력과 세상에 대한 보답이 빠지지 않는 열쇠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