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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번째.. 이야기

고현아 |2006.12.10 20:57
조회 15 |추천 0

<EMBED src=http://home.naver.com/yyang1/bgm1.WMA hidden=true autostart="true"> #. 김 윤무의 집

 

 

 “ 저.. 송구하지만, 어르신.

 왜 갑자기.. 관직에서도 물러나시고, 재산까지 처분하시려는

 것이온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

 

 행랑아범.. 걱정스런 눈으로 김윤무를 바라보며, 묻자

 

“ 내가.. 죄를 참.. 많이 지었어. 참으로.. 몹쓸 짓을 했거든..

 이젠.. 평생..나를 짓누르던..욕심일랑 내려두고,

 조용히 살려하네.

이제라도..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고 싶어... “

 

행랑아범.  잠시..망설이듯 머뭇거리다가,

 

 “ 저.. 혹... 그때.. 그 기녀 매향이.. 아이를 낳았더이까?

그 아이가.. 공길입니까? ”

 

 “ 자네가.. 어떻게.. ?

 흠.... 알고 ..있었는가? “

 

“ 너덧 살 때부터 어르신을.. 모셔왔던 저입니다.

 한 평생을 거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어르신..그림자처럼 살았더랬지요..

 헌데.. 제가 딱.. 한순간.. 어르신을 놓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매향이란.. 기녀와 함께 계실 때 말입니다.

... 아십니까?

쇠락한..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한순간도 흐트러진 모습..보인 적 없으셨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투정 부린 적도..

 아프다며 울며불며..한 적도  없으셨지요..

 마치..감정이라고는 없는.. 돌덩이 같으셨습니다.

 마님과 혼인하여.. 두 도련님을 얻으실 때까지도..

 단 한번도.. 어르신.. 환히 웃는.. 모습.. 뵌 적이 없었습니다.

 헌데.. 그 여인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실 때..

 그때.. 처음 뵈었습니다.

 처음으로.. 세상.. 모든 시름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이셨지요..

 말씀은.. 안하셨으나,

 진정으로.. 대한 이는..그 여인뿐이란 것.. 알고 있습니다.

 조선제일의 명기라던 매향이,

갑자기 도성에서 자취를 감추었단 소문이 돌고,

 그 후..몇 년 동안을.. 몇 달에 한번 씩은.. 꼭.. 저도 대동하지 않으시고,

 홀로.. 지방의 벗에게 다녀온다 하시는 걸.. 보고는..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공길이.. 그 아이를 보았을 때.. 한번에.. 알아봤지요.

어미의 고운 얼굴을.. 그대로 빼닮았더군요..

다른 이는.. 몰라도.. 저는.. 어르신 마음. 헤아릴 수 있습니다.

 당시엔.. 그리 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지금 이만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하루도 마음 가는 데로 해본 것이 없는 분이셨는걸요..

 제가 알지요. 허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어요... “

 

 

 널따란 방에.. 마주 앉은.. 반백의 두 사람.

 긴 세월 함께 해온.. 이들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것이고,

감추려 해도.. 감추어 지지 않았던 것이리라..

 평생을.. 자신을 위해.. 온갖 궂은 일 마다 않고, 손발이 되어줬던,

오랜 지기와 같은.. 그를 바라보며.. 김윤무..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 이보게.. 용이.. 이 사람아..

 자네.. 이름 불러본지도.. 오래되었구먼...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내겐.. 처음이였고, 마지막일 사람일세..

헌데.. 나는. 왜?

왜.. 내게 가장.. 소중한.. 이를.. 내 손으로..그리 아프게 했을까?

그 사람이.. 나를 보던.. 눈이 잊혀 지질 않네..

왜 그랬냐며.. 묻던.. 그 사람의 눈빛이 잊혀 지질 않아..

평생을.. 가슴에 묻어둔 이를 만났는데..

눈조차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었네...

 

 ( 창 밖을.. 바라보며.. 말을 잇던.. 김윤무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눈물 섞인 눈으로 앞에 앉은 행랑아범을 바라보며.. )

 

 자네라도 없었으면.. 이리 말할 이도 없었을 것을..

저승 가는 길만은 함께 할 수 없을 터이니..

외로워 어찌 가려나 모르겠네..

 다음 생엔.. 자네가 내 상전으로 나게나..

 자네가 해준 반만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그래.. 다음 생엔.. 우리..상전도, 종도 아닌..

 그냥.. 지기로.. 만나세나.. 꼭.. 그럼세... “

 

 그의 앞에 앉아..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행랑아범

.. 눈물 고인..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시각.. 집 뒤뜰에 홀로 나와 섰던.. 공길.

 

 막상.. 모진 말을 내뱉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척 하였으나,

 처음으로 느껴본.. 제 뺨을 스친..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친 게..

마음에 걸린다.

 

 이래서.. 부모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다 했던가..

그토록.. 원망스럽던.. 아버지였는데..

어릴 적.. 기억속의 그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노쇠하고, 작아보이던.. 쓸쓸한.. 그의 모습이 떠올라,

 공길의 마음 한 켠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겨울을 싣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던.. 그.

 아버지를 찾아왔다던.. 어머니가 떠오르는데..

 

 ‘ 어머니.. 몸이 아직..편치 않으실 터인데..

 내가..끌려온걸 알고..얘까지 오셨다면,, 많이.. 걱정하고 계실 텐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

 

 

 #. 취 월 관

 

 

지운.. 공길의 얘기를 듣고는.. 벌떡 일어서자,

 장생. 그런 지운의 손을 잡으며..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 당장 쫓아가고 싶지 않아서..이러고 가만있는 거 아냐!

어머니.. 그 댁에 가시기 전에, 당부하신 게 있어.

 흥분하고, 쫓아간다고 해결되는 일 아니니까..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까..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면, 공길일 더.. 난처한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는 거니까..

 일단, 그 댁에서 대답이 올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보자고..

 함부로.. 공길일 대하진 않을 거라고.. “

 

 

 지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장생을 바라본다.

 

“ 그래.. 마냥. 손 놓고 있진 않으셨겠지..

헌데.. 그 말을 어떻게 믿냐구.. 종으로 만든다고.. 끌고 갔다며..

 만약.. 길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

 

 “ 그 사람.. 그.. 김 대감이란 자.

 나랑 공길이가.. 종살이 하던 집.. 나리마님.

 그 사람이.. 공길이.. 생부란다. “

 

 장생의.. 말에.. 지운..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지운의 집에서.. 연희가 있던 날 밤.

 제 아버지 사랑채 앞 마당에서..

백지장 같은 얼굴로.. 멍하니 달빛아래 서있던 길이가..떠오른다.

 그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슬픔을 가득담은.. 눈물도..

 

지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 나.. 길이가.. 좋아.

 처음.. 녀석을 봤을 때부터.. 그냥 좋았어.

 왠지.. 녀석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맘. 다.. 알아줄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지켜 줄 꺼야. 어떻게든..

뭔가 되지 않아도 좋아. 다른 이들이.. 비웃어도 상관없어.

 녀석이.. 웃을 수 있게..해주고 싶어.

이젠.. 혼자두고, 도망치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꺼야. “

 

 지운을.. 바라보는.. 장생의.. 눈에..그늘이..어린다.

 

오랜 세월을.. 둘이 아닌.. 한 사람인 양..함께 했던.. 공길과 그다.

 어떠한 말로..표현할 순 없지만,

 그에게 공길은.. 전부였다.

 그가 있었기에.. 누구 앞에서든.. 두려울 게 없었고,

그가 있었기에.. 세상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단 한번도.. 공길이 없는.. 삶은.. 상상 해본 적도 없었다.

 헌데.. 왜..

지금.. 장생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단 한가지였다.

 

 ‘ 난.. 왜..

 이 녀석처럼.. 이렇게..

단 한번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을까?

 단.. 한번도... ‘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매향이의 방을 찾은.. 지운과 장생.

안으로 들어가니..

어제까지도, 전혀 의식 없이 ..맥을 놓고, 잠만 자고 있던.. 매향이,

 거짓말처럼 일어나 앉아 있다.

 

 “ 어머니.. 괜찮으세요? ”

장생.. 매향의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그녀의 안색을 살피자,

 매향.. 장생의 손을 끌어다 잡으며..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곁에 앉아, 소세한 물을 여종에게 건네주던 연화가,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며.. 오랜만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 그리 사람 걱정시키더니..

 아침에 들어오니까, 어느 틈에 일어나 앉아 있는게 아닌 가?

 소세물 준비하라며, 일어나 앉아, 단장도 하고..

 이 사람.. 어제까지 죽은 듯.. 맥 놓고 있던 이가..맞나 싶어.. “

 

 연화의 말에.. 장생.. 제 손을 잡고 있는 매향의 손을 꼭 쥐어본다.

 매향.. 지운에게로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하자,

지운.. 멋쩍은 듯..웃으며,

 

 

“ 정말.. 한참 만에.. 뵙네요..

건강하셔야죠!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세요.. “

 

 매향.. 공손히.. 인사를 하며,

 

“ 이거.. 도련님께.. 이리 앉은 체로, 인사를 드려.. 송구합니다.

 듣던 대로, 대인이십니다.. 반상의 구분이 엄연한 때에..

이리 허물없이 대해주시니.. “

 

지운.. 껄껄 웃어넘기며, 곁에 앉은 장생의 어깨를 툭 치면서

 

 “ 양반이니, 상놈이니.. 그런 하나 쓸모없는 것에 묶여 있다면,

 이런 기백이 넘치는 사내중의 사내와 지기도 못했을 터인데..

 그럴 순 없지요.. 하하.. “

 

 지운의 너스레에.. 모두들.. 오랜만에.. 웃어본다.

 

 “ 저.. 행수어르신.. 김윤무 대감댁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

 

 그 말 한마디에, 화기애애하던 방안이.. 찬물을 부은 듯 조용해지고,

 서신을 받아든.. 매향.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읽는다.

모두들.. 숨죽인 체.. 바라만 보는데..

 매향. 모두 읽은.. 서신을 가만히.. 접어..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 그 분이... 길이와 함께.. 오신다네.. 그 아이와 함께 말이야.. “

 

 

 # 김 윤무의 집

 

 

“ 저.. 공길입니다. ”

 

아직 이른 아침.. 공길이.. 김 대감의 사랑채를 찾았다.

 김 대감.. 반가움을 금치 못하고.. 길이를.. 들라하는데..

 대감의 앞에.. 마주 앉은 공길.

 

 “ 청이 있어.. 왔습니다.”

 

 “ 오.. 그래.. 뭐든 게의치 말고 말해보려무나.. ”

 

 “ 어르신의 재산.. 받지 않겠습니다.

 처음..말씀드렸던 데로.. 제 벗. 장생의 면천만.. 허락해주셔요.

그리고.. ....

 마지막으로.. 저와 함께.. 어머니께 가주십시오.

 평생.. 어르신 가슴에 묻고 사신 분. 살갑게 한번만.. 안아주십시오.

마음 다해서.. 진정으로.. 미안하다... 사죄하여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들어 .. 주시겠습니까 ? “

 

공길을.. 바라보고 섰던.. 김윤무.

공길에게로.. 다가가.. 그.. 손이라도 한번 마주잡고,

 한번이라도 감싸주고 싶어.. 손을 뻗었으나..

공길..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 손이 미치지 않을 만큼.. 떨어져 선다.

 

 

 “ 제가 청한 건,

 제 어머니의 평생의 정인으로써의 예를 갖춰달란 것 그것뿐입니다.

 어르신께.. 아버지로써의 자리를 내어드린 것은 아닙니다.

 어르신이.. 저와 제 어머니를 버리고 택하신,  재물과 명예.

 그것을 받지 않겠단 제 뜻.. 모르시겠습니까?

 그.. 하잘 것 없는 것.

 그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보겠단 생각은 마십시오.

 어르신께는.. 그것이.. 가장 중한 것으로 여겨지실지 모르나,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말 한마디의 값어치만도 못한 것이니까요...

 저는.. 평생.. 어르신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 미움과 원망조차도..잊을 것입니다.

 제겐.. 처음부터..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

 

“ 길아.. ”

 

 “ 그렇게.. 제 이름.. 부르지 마십시오.

그럼. 채비가 끝나면 말씀해주셔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어르신도.. 보셨다니..아시겠지만, 어머니. 많이 편찮으십니다.

 기다리면서.. 더.. 안 좋아지셨을지 몰라요.

 한 시라도 빨리.. 가서 뵈어야 겠습니다. “

 

말을 마친 공길..

총총히.. 밖으로 나서고..

망연히.. 홀로 앉았던 김윤무. 의관을 정재한 후,

밖으로 나오자, 공길.. 걸음을 옮긴다.

 

십년이 넘은.. 세월을 거슬러..

일곱살 박이.. 어린 길의 손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왔던 그때처럼

다시..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

말없이 제 곁에서 걷고 있는.. 공길을 바라보며,

김윤무.. 세월을 그때로 돌릴 수만 있다면 하는 헛된 생각에

쓴 웃음을 짓는다.

 

한 걸음만 다가서면, 옷깃이 스칠 듯한 거리임에도..

그들 사이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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