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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번째 이야기...

고현아 |2006.12.10 20:58
조회 19 |추천 0

                                  #. 취 월 관  

 

 

풍류객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 소리,

밤의 정적을 깨우며 쉼 없이 이어지는 웃음소리..

기녀들의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본채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침울한 기운마저 감도는.. 별채의 마당.

 스산한 늦가을의 바람이..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와 어우러져

쓸쓸한.. 밤풍경을.. 자아내고 있는데..

 다리가 돌계단.. 끄트머리에..상념에 잠긴 체,, 동그마니 앉아있다.

며칠째,

 정신을 놓고 있는 매향과  소식 없는.. 공길에 대한 걱정으로

 기방일도, 기녀들에게 맡겨 둔 채, 두문불출하던 연화.

답답한 맘에.. 밖에 나왔다가, 다리를 발견하고는.. 그 곁으로 다가간다.

 

 “ 춥지 않니? ”

 

 인기척소리에 고개를 돌린.. 다리에게 연화가 다정스레 묻는다.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리.

작은 얼굴에.. 볼우물이 패이게 수줍게 웃는 모양이..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마냥 사랑스럽다.

 

 

 “ 다리라고 했지..?

왜.. 남장을 하고 있던 게냐? ”

 

그때까지도, 사당패에서 도망할 때의 옷차림 그대로

사내아이 복장이였던 다리.

경황 중이라.. 그녀에 대한 얘긴 꺼낼 틈도 없었는데,

 눈썰미 좋은.. 연화가.. 며칠간 함께 지내며, 

다리가 여자아이임을 눈치챘던 모양이다

다리..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듯.. 머뭇거리자, 연화

 

 “ 단지, 옷차림만으로.. 계집이.. 사내가 될 수 있겠느냐?

무슨 사연인진 모르나.. 이젠.. 네 모습을 찾으려무나..

그리.. 어여쁜 아이가.. 왜 사내 옷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느냐..

그런 차림으론.. 정인의 마음을.. 어찌 잡으려누..  "

 

" 예 ? "

 

마치.. 뭔가 알기라도 하는 듯..

다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연화.

어둠이 깔린 밤이 아니였다면, 금세 발그레해진

얼굴로 인해.. 제 맘을 들켰을 거란 생각에.. 다리. 작게 한숨을 내쉰다.

 오~ 그래! 미룰게 무에 있느냐? 내 마음도.. 니 맘과 다를 바 없이 번다

그런 다리가.. 더욱 어여쁜 듯.. 연화.

 

" 그래.. 미뤄둘 것이 무에 있을까?

마음도 번다하던 차이니.. 내.. 널 도와, 니 본모습을 찾아주마! “

 

 연화.. 갑자기.. 다리의 손을 이끌고는.. 자신의 처소로 향한다.

 연화. 여종아이를 시켜, 다리에게 맞을 만한 옷을 가져오라 이르는데,

 그 동안, 뜨끈한 목욕물을 받아, 깨끗이 씻기고는..

 사내들이 하는 머리끈 아래로 바짝 올려 묶어, 감춰 두었던

 긴 머리카락도, 참빗으로 곱게.. 빗어준다.

 난생처음으로.. 단장이란 것을 하는 다리.

 괜히..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데..

광대로 놀이판에 설 때, 어설프게 연지를 찍어보던 때와는..

 느낌이..사뭇 다른 것이.. 설레이기 까지 하다.

 

여종이 준비해온 .. 봄날의 개나리꽃 같은 노란 저고리에..

진달래꽃 마냥.. 붉은.. 분홍치마를 입고,

곱게 빚은 머리끝엔.. 치마 색과 같은 분홍 댕기를 달아매어

등 뒤로 늘어뜨린 다리.

 

 

 “ 이리.. 고운 것을.. 어찌 감춰 두었었누.. ”

 

연화.. 다리의 옷고름을 매 만져 주며,

경대를 앞으로 끌어다가 보여준다.

다리..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낯선 듯.. 한참을 바라본다.

고운 분을 바른 뺨도.. 만져보고,

 가만히 일어나 사각거리는 치맛자락을 살짝 치켜들고,

 흰 버선코가 보이도록.. 사뿐히 걸어도 본다.

연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한 후,  밖으로 나온 다리..

집안 이리저리.. 고운 옷에 흙이라도 묻을까 조심하며,

 장생을 찾아다닌다.

몇 년만에 찾은.. 제 모습을.. 제일 처음 보여주고픈 이였다.

 

 기방의 제일 구석진 좁은 방에서.. 술 한 병에 김치 한 사발 올려놓고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던 장생을 찾아낸 다리..

 방문을 열고는.. 빼꼼히..안을 들여다보는 다리의 얼굴에

반가움을 가득 담은.. 환한 미소가 번지는데..

 

 

 “ 난.. 신경 쓰지 말고, 나가서 일들 보쇼. 술이나 먹다..잘터이니.. ”

 

 장생.. 아이티를 벗지 못한.. 꼬마 녀석일 때부터 함께 지내고서도

 그..고운 처자가 다리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는..

 방을 잘못 찾아 들어온, 기녀인가 하였던 것이다.

 다리..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서..

 새초롬히.. 그 앞에 앉자,

장생.. 그제야 .. 그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는데..

 

 

 “ 다리냐? 이 녀석... 진짜.. 계집애 같네..

뭐하고 온 거야? 너 같지 않아! 못 알아봤다.. 녀석.. “

 

 다리.. 장생의 반응에.. 맘이 상했던지.. 입을 삐죽이며..

장생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빈 잔에.. 술을 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쭉 들이켜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장생..

 

"욘석이.. 술도 못하는게.. 까불긴.. "하자,   

 “ 멋없어.. 그렇게 밖에 말 못해?

나 이렇게..처음 입어봤단 말야.. 그냥 곱다고 해주면.. 좀 좋아? “

 

 

 장생.. 그런.. 다리를 보며, 씨익.. 웃더니,

잔뜩 볼멘 표정의 다리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 에그..그래.. 곱다!

욘석.. 콩 만하던 놈이..언제 이렇게 자라가지군.. “

 

 

제 뺨을 꼬집는.. 장생의 손을 툭 쳐내며..

 다리, 장생에게 살짝 눈을 흘긴다.

 

 

“ 애 취급하지마! 나도 이제 다 컸다구.. ”

 

 장생.. 껄껄 웃으며..  술잔을 들이킨다.

 

 “ 그래.. 우리 길이도.. 그 나이 때.. 참 고왔다.

제 아무리 고운 양반 댁 아씨를 데려다 놔도, 뒤지지 않았을 거야..

 길아.. 우리..길이.. “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던..장생.. 길이 얘기를 하다, 술기운이 도는 지,

 소반 위에.. 몸을 기대며, 그대로.. 엎어져 눈을 감는다.

 

 

 “ .. 길아.. 우리 길이.. 얼른.. 찾아와야 하는데..

길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

 

 

 잠꼬댈 하듯.. 중얼거리는 장생을 바라보고 앉았던.. 다리의 눈이..

 금세..붉어지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갑자기.. 엎드려 있는.. 장생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그를 붙잡아 일으키는 다리.

 장생.. 술기운에.. 몰려오는 잠을 겨우겨우 쫓으며,

고개를 들어 가물거리는 눈으로 다리를 바라보자,

 

 

“ 나랑.. 혼인하자! ”

 

 다리.. 한 손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며, 장생에게 말하는데,

 장생.. 제 귀를 의심하며..

 

 

“ 뭐라구?

꼬맹아.. 술은 내가 마셨는데.. 니가 왜 주정이냐?

 뭘 하자구? 하핫.. 녀석.. 오늘 이상하네.. “

 

 장생.. 껄껄 웃으며,, 다시 엎드리려 하자,

 다리.. 양 볼을 붉히며, 진지한 표정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 나.. 오래됐어..

 형.. 좋아한 거.

이젠.. 사내인 척..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더 이상 어린애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나도 그냥, 평범한 여자로 봐주면 안돼?

이젠.. 안되는 사람, 바라만 보면서.. 힘들어하는 거.. 그만 보고 싶어.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나랑, 그냥 평범하게 살자.

그냥.. 여느 사람들처럼, 같이 밭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면서..

그렇게 살자.. 응? “

 

 장생.. 저녁 내내..마셨던.. 술이 한꺼번에.. 확 깨는 듯하다.

 개다리소반에 위에 놓인, 물 한 사발을 한번에.. 쭉..들이키고는,

 상 위에 탁! 소릴 내면서.. 내려놓고, 다리를 쳐다본다.

 

 

“ 다리야.. 너.. 무슨 일 있었던 거냐?

 인석아.. 왜 그래 갑자기?

 형..진짜. 화낸다! “

 

 장생을 바라보던, 다리.. 두 눈에..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 싫어!! 이젠.. 그 형이란 소리도 싫어!

 나도.. 많이 힘들었어!

눈길한번 주질 않는 사람. 곁에서 바라만 보는 거!  나도 힘들었다구!

 난 왜 안 되는데?

공길이형 때문에 그래?

어차피.. 두 사람.. 안되는 거잖아.. “

 

 장생.. 다리를 바라보며,

 

 “ 임마.. 공길이랑 난.. 그런 게 아니야..

 길이랑.. 난.. 우린.. “

 

 “ 아님.. 아니면.. 그럼 뭐야?

흑흑.. 내 몸이.. 더러워서..그런 거야? 흑흑... “

 

장생.. 다리를.. 마주하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다가,

 앞에.. 소반을 한 켠으로 치우고는..

 다리의 들썩이는 어깨를 잡고 토닥여주며,

양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준다.

 

 

 “ 바보야.. 그런 거..아닌 거 알잖아.. 왜 그런 소릴 해! 바보처럼..

누가 너한테.. 그런 소리 하면.. 내가 가만 있지 않아! ”

 

다리.. 참아왔던 눈물이.. 쉽사리 멈추질 않던 지..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주는 장생의 손을 잡고는..

 

 

“ 형..

그럼 .. 정말.. 공길이형 때문에.. 그런 거야?

 두 사람.. 정말.. “

 

다리의 말을 듣고 있던 장생. 차마,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 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데..

 다리.. 그런 장생의 손을 붙잡아.. 그를 돌려 세운다.

 장생의 품에 와락 안긴 다리..

장생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고는.. 입을 맞추는데..

 

 

 끼이익....

 

 

 “ 이봐~ 장생이! 나 왔.... ”

 

 청에서.. 돌아온.. 지운.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취월관으로 달려온 터였다.

 이곳에 오면, 그리워하던 모든 이들이.. 있을 터이니..

 오는 내내.. 터질 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달려왔더랬다.

취월관에 들어서자 마자, 공길을 찾는 지운에게..

연화, 차마 공길의 이야기는 못하고, 얼른.. 화제를 돌려,

 장생이 와있으니, 만나보라.. 일러준 터였다.

 몇 년만인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쫓아가.. 벌컥 문을 열어젖혔는데..

 다리와 장생이.. 입을 맞추는 광경을 보고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한 체..

지운.. 문고리를 잡고 선체로..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이는데..

장생에게서..얼른 떨어진.. 다리..

 지운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오고,

 장생.. 멀뚱히.. 서 있다가,  뒷머릴 긁적이며,

지운에게 들어오라고  청한다.

 

 “ 이거.. 몇 년 만의 해후인데.. 너무.. 파격적인 걸?

 하긴.. 우리 나이가 벌써 몇인가?

 다른 이들은.. 아이 한 둘쯤 낳고, 아버지 소리 들을 나이지..

허허.. 저.. 당돌한.. 아가씬 누군가? “

 

 장생.. 지운에게 괜한 광경을 들킨 것만 같아.. 영 마음이 좋질 않다.

 

 

 “ 기억해? 공길이와 내가.. 데리고 있던...꼬마말야..  다리라고.. “

 

 “ 어? 그 녀석이.. 사내아이가 아니였던 가?

허긴.. 처음 볼 때부터 사내아이치곤 너무 곱다 했지..

 그럼 그렇지.. 길이 같은 이가.. 또 있을 라구..

 저리.. 어여쁜 아가씨로 자랐단 말이야? “

 

 장생.. 후훗.. 웃어넘기며,

 

 “ 이봐! 세월이.. 몇 년인가?

그래.. 낯선 곳에서.. 고생 많았지? 얼굴은 야윈 거 같은데..

 몸은 더...단단해 보이는 걸?

이젠.. 부잣집 애송이 도련님이 아닐세 그려..하하.. “

 

 잠깐 동안의 어색함이..언제 그랬냐는 듯..

몇 년의 세월을 지나, 마주 앉은 두 사람..

 유쾌하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친다.

 장생에게 받은 술잔을 들이키고는, 장생의 잔을 채워주며,

 지운 아까부터 묻고 싶던 말을 꺼내는 데..

 

 

 “ 헌데.. 공길인 어딨는가?

 내가 제일보고 싶던 사람인데.. 이거 영..볼 수가 없네 “

 

 지운의 눈을 애써 피하며.. 장생.

 눈 앞의 술잔을 들이킨다.

 장생을 바라보는 지운. 어쩐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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