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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to Prayer_New Wine에 기고한 글_영어버전첨부

김은선 |2006.12.16 04:48
조회 51 |추천 0


 


Call to Prayer

- 24/365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



1. 월요기도모임으로 시작된 Call to Prayer



1990년 8월 고(故) 박을용 박사님(온누리교회 장로, 한동대 부총장, 2005년 4월 소천)을 포함한 6명의 형제자매들이 국가를 위한 중보기도모임을 만들기 위해 준비 모임을 가졌다.



그 당시, 음란과 퇴폐적 향락 문화가 급속도로 번지며, ‘법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지키는 것’, ‘교통경찰 3년 하면 집 한 채 산다.’는 말들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또, 뇌물이 횡횡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었고, 부동산 투기, 배금주의와 한탕주의, 그리고 파벌주의와 지역 갈등 등의 망국적 풍조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그 때, 주님은 이 민족의 죄악을 짊어지고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막아서서 하나님으로 멸하지 못하시게 할 중보기도자들을 찾기에 급하셨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겔 22:30).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족의 앞날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기독 국가건설’이라는 부르심을 받고 기도 모임이 시작되었다.



1992년 7월부터는, 월요일을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하고, 정기적인 월요기도모임을 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에서 시작했다. 모일 때마다 기도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말씀들을 나누었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매스컴/미디어, 교회, 북한/통일,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 모임을 진행했다.



1994년이 되면서 특별히 ‘북한’을 위해 많은 부담을 느끼며 기도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셨다. 주님의 음성은, 공산주의 곧 무신론의 적그리스도 세력으로부터 영혼과 육신이 짓밟힌 채,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 만난 자의 모습같이,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매 맞고 굶어죽어 가는 북녘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애절한 부르심이었다. “누가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의 이웃이 되겠느냐?” 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죽어 가는 형제를 외면하고 피해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이었다.



1995년 말부터 북한의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졌고, 그들의 극한 상황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 우리는 더욱 집중적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했고, 우리의 중보기도는 곧 치열한 영적 전투였다.  1996년 7월 29일, 월요기도모임에서는 북한 상황을 비상사태로 간주하고, 최악의 식량난이 예상되는 7월 30일부터 9월 30일까지 63일을 “북한동포 살리기 특별기도기간”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운동을 시작했다.



1. 하루 3번 식사기도 시 ‘북한 동포 식량난’을 위한 기도

2. 하루에 30분 이상씩 북한 동포를 위한 기도

3. 63일간 금식기도 릴레이

4. 8·15 전체 특별 금식기도: 북한동포 영육간의 구원을 위한 기도



동시에 남한 교회에 북한동포 살리기의 중요함과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남한에 소재한 4만 6천여 교회에 취지문과 최근 북한 소식들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작은 중보기도모임에서 4만여 통의 인쇄물을 전국 교회에 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8월 12일부터 9월 1일까지 21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철야작업을 하여 봉투발송 작업을 마쳤다. 성령에 취한 듯이 여름 더위보다 더 강렬한 북한동포 사랑의 열기로 우편 발송 작업을 했다. 기독 언론(방송, 신문, 잡지 등)을 통한 ‘북한 동포 살리기’ 홍보 작업도 병행되었고, 또 여러 구국기도 모임과 집회에서 북한의 실상과 ‘북한동포 살리기 운동’을 호소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셨다.



민족과 시대를 일깨우는 예언자적 외침이 요청된다. 복음을 듣지 못한 채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300만 북한 동포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통분히 여기사 마음 찢으시며 오열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



2. 24/365 신촌 기도의 집으로 이어지는 Call to Prayer



개인적으로 2003년부터 미국 캔자스에 소재한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에 매년 여름마다 가게 되었다. 24시간 365일 계속되는 경배와 찬양, 그리고 기도와 말씀이 함께 어우러지는 IHOP에서 강의를 듣고 기도하며 많은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IHOP에 계신 한국인 사역자들과 교제하며 함께 기도할 때, 많은 분들이 월요기도모임에서 24/365 기도 사역할 것을 권하시며 축복하며 기도하셨다. 2005년 8월 워싱턴 D.C.에 있는 JHOP(Justice House of Prayer: 하나님의 정의 구현을 위한 기도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떠나는 날 Lou Engle 목사님과 JHOP 사역자들이 한국에 JHOP를 세울 수 있도록 안수하고 축복하며 기도해주셨다.



기도의 집을 세우는 일에 대해 계속되는 기도를 들으면서도 설마 그 일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직장과 선교단체와 교회사역 등을 생각할 때, 24/265 기도사역을 추가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2005년 9월부터 IHOP 한국 사역자들은 매주 모여서, 월요기도모임이 신촌에 24/365 기도의 집을 세우도록 합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주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바꾸시기 시작하셨다.


첫째는, 남북한이 영적으로 총체적인 위기상황인데, 월요일 저녁만 모여 기도해서는 역부족이라는 마음의 부담이 계속되었다. 북한 동포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해 왔는데, 이제는 오히려 남한마저도 공산화될 수 있고, 또 전쟁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온 밤과 온 낮으로, 목숨을 걸고 함께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는 국가적인 영적전쟁으로 느껴졌다.


둘째는, 주님께서 24/365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시는데, 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네가 선포하면 내가 예비한 자들이 헌신할 것이고, 내가 그들에게 중보기도의 기름을 부어 종일 종야 기도하게 할 터인데, 네 계산으로 내 뜻을 막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2005년 12월 중순 경에, 주님께서 24/365 기도사역에 대해 어렵게 여기는 마음과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나에게서 말끔히 지우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하시는 일에 나는 그저 수종만 들면 된다는 마음을 내게 주셨고,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신 감동과 비전을 나누게 하셨다. 월요기도모임 지체들은 일치된 좋은 마음으로 24/365 기도사역의 비전과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2006년 2월 말 기도학교 수련회를 가졌고, 20명의 중보기도자들이 24/365 기도를 위해 full-time(주 40시간 이상)과 part-time(주 20시간 이상) 기도사역자로 각각 헌신하였다. 우리에게는 기도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약 3개월 정도 합심해서 기도한 후, 드디어 지난 5월 주님께서는 24/365 기도를 위한 축복된 기도의 집을 주셨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 속에 이렇게 24/365 기도사역이 신촌에서 시작되었다.



* 24/365 기도사역이 갖는 의미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예수님의 초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나를 24/365 기도로 부르셨다. 그래서 그녀는 아기 예수를 기도로 예비했고 맞이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했다.



24/365 기도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있어왔고,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 웨슬리를 회심시키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모라비안 교도들의 100년을 넘긴 연속기도였다. 또한 역사 가운데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수도원이나 지역 교회나 혹은 무명의 기도모임에서, 24/365 기도사역은 성령님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져 왔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IHOP을 비롯해서 세계 도처에서 시작되고 있는 기도의 집과 24/365 기도사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대대적이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1999년 시작된 IHOP은 벌써 500명이 넘는 full-time 기도헌신자들이 주야로 기도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만도 10군데 이상 24/365 기도사역을 지향하는 기도의 집이 세워져 있다. 미국 이외에도 싱가포르, 홍콩,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서 기도의 집 사역을 하는 중보기도자들을 IHOP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24/365 기도의 집이 전국적으로 곳곳에 세워지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곳곳에 기도의 집이 세워지도록 계속적으로 기도하게 하셨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많은 기도의 집들이 남한에 세워지리라고 믿으며 곧이어 북한에도 세워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24/365 기도사역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시대를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 62:6, 7).



이사야 62장 6, 7절 말씀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온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때까지 종일 종야(24/365)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지금 이 시대는 주님이 곧 재림하실 때이며, 이 때를 위해 주님께서 많은 기도자들을 24/365 기도로 부르신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초림을 안나가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로 예비했다면, 주님의 재림은 주님의 신부 되는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함께 연합해서 기도로 예비하게 될 것이다.


지금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24/365 기도 운동은 우리 주님의 재림 전에, 주님의 지상명령인 ‘땅끝까지 전도’ 를 완성할 수 있는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천국열쇠다. 그래서 24/365 기도와 함께 시작되는 부흥은, 과거의 국지적인 부흥이 아닌 온 국가적인 부흥으로 치달을 것이며, 이 부흥의 파도는 국가에서 국가를 넘고 민족에서 민족을 넘는, 유례없는 세계적인 영적 부흥과 마지막 영혼구원의 대추수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도 함께 이룰 것이며, 동시에 믿는 자들을 예수님을 향한,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가득 찬 ‘순결한 신부’들로 단장케 할 것이다



3. Call to Prayer : 7,000명 에스더 구국 단식


지난 7월 7일, 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에서 Again 1907과 24/265 신촌 기도의 집 회원들이 함께 금요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철야 중 이은형 집사님께서 주님께 받은 감동으로, 2007년 1월 1~3일, 7,000명 에스더 구국 3일 단식기도(이하 ‘에스더 단식’)에 대한 부르심(Calling)을 나누셨다. 나로서는 솔직히 흘려버리고 싶은 부르심이었는데 오히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감동이 일었고, 피할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감동은, 아멘으로 받고 앞에 나가서 이를 선포하라는 것이었다. 철야갸 끝날 무렵까지 미루다가 결국은 순종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5월 26일 신촌 기도의 집을 오픈하고 이제는 한숨 돌리나 했는데 곧바로 에스더 단식을 섬겨야 한다니...’


7월 18일 미국 캔자스의 IHOP으로 출발하면서, 내 마음은 에스더 단식에 대해 주님께서 주신 부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이 같은 기도가 없이는 국가적 위기국면이 돌파될 것 같지 않았고, 마땅히 해야 될 기도라면 좋은 마음으로 감당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도 7,000명이 3일간 단식하는 기도모임을 섬긴다는 것은 나와 신촌 기도의 집 지체들에게 너무나도 큰 숙제로 다가왔다.



시카고에서도, IHOP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2007년 정초에 있을 에스더 단식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안 가리고 말만 통하면 에스더 단식을 얘기했다. 함께 기도했고 또 계속적인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8월 7~9일은 IHOP 전체 금식 기간이라 나 또한 에스더 단식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캔자스 선교교회에서 말씀을 전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처음에는 금식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거절했는데, 곧이어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내게 주신 감동은 “이제부터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모든 기회 때마다 에스더 단식을 선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고, 가서 조국의 위기 국면을 설명하고 에스더 단식을 선포했다. 그 때 주님께서 많은 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감동된 그들 중에 특별히 에스더 단식을 위한 켄사스 중보팀을 세우셨다. 이들의 전폭적인 헌신과 계속적인 금식기도 속에서, 성령님께서는 미국과 전 세계의 한인 사역자와 성도들에게 에스더 단식의 기름 부으심을 나누어주심을 보고 있다.


매주 IHOP 한국 사역자 기도모임에서 에스더 단식을 위해 기도했고, 내가 IHOP을 떠나기 전날 밤에 다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님께서 함께한 이들을 통해 많은 말씀들을 주셨다. 한 선교사님께서 그림을 그리셨는데, 그것은 피라미드 같은 체인이었다. 즉 한 사람을 통해 5명이 에스더 금식에 동참하고, 그 5명을 통해 25명이, 그 25명을 통해 125명이, 125명을 통해 625명이, 625명을 통해 3,125명이, 3,125명을 통해 15,625명이 연결되는 그림이었다. 내게는 주님께서 지남철 자석을 생각나게 하셨다. 자석이 지나갈 때 많은 쇠들이 달라붙게 되는데, 달라붙은 쇠들은 자력을 갖게 됨으로 또 다른 쇠들을 끌어당기게 되고, 계속적으로 많은 쇠들이 달라붙으며 큰 무리를 이루는 것이었다. 주님으로부터 에스더 단식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그 감동을 나눌 때에 들은 자들이 또 감동을 받고, 그들을 통해 듣는 자들이 또 감동을 받아서 계속 이어짐으로, 연합된 기도의 큰 군대가 일어나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다. 또 내게 반복해서 주신 말씀은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요엘 2:15)였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감동은 고국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많은 교포들을 기도에 동참케 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 교포 2세, 3세들도 고국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기도할 것이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670만 디아스포라 한민족 중에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또 주님께서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중국의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도 남한의 위기상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남북한 교회와 중국 교회는 남북통일 후 함께 손을 잡고 'Back to Jerusalem'의 사명을 감당할 동지들이기에 남한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남한 교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IHOP 미국 스태프들과의 미팅에서도 에스더 단식을 설명하고 기도를 부탁했다. 이제 남한교회는 지구적 교회의 지체로서, 주님의 재림 시 주님의 신부로 연합될 한 몸이기에, 세계 모든 교회가 남한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사탄의 궤계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2007년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며 기대했던 평양 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 2007년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이 시기에 남한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함께 멸하고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임을 나타냈듯이, 무신론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인 공산주의의 영과 음란의 영과 맘모니즘을 멸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통일 한국, 선교 한국의 초석을 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극심한 영적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2007년 정초에 3일을 단식하며 기도할 때에 이 민족의 극악한 수많은 죄악들로 인해 마음을 찢으며 처절하게 회개하고 주님께 울부짖어야 할 것이다. 에스더가 왕의 총애를 얻어 하만을 멸했듯이, 우리도 혈과 육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영적인 하만을 멸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왕 되신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3일을 단식했다고 국가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에스더 단식은 이 민족을 구하는 기도의 시작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함께 모여 헌신하며 기도한 자들에게 에스더의 기름을 부으실 것이고, 이 때 에스더로 세워진 자들을 통해 기도의 군대를 일으키실 터인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중보의 용사들로 세워질 것이다. 주님께서 이 기도의 군대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성령 안에서 연합하여 기도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줄기찬 기도가 남한을 구하고, 북한 동포들을 구하고, 열방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주님께 모든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금식하되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




글쓴이 : 이 용 희

경원전문대 무역과 교수이며 신촌 24/365 기도의 집과 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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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

 

 

Call to Prayer
-24/365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1. Call to Prayer launched at Monday Prayer Meeting

 

On August, 1990, late Eul-Yong Park, Ph D. (an elder in Onnuri Church and assistant president at Handong University, passed away on April, 2005) called for a preparatory meeting with five like-minded people to start an intercessory prayer meeting for Korea.

 

At that time, immorality and decadent Epicureanism were rapidly spreading, corroding Korean society. Folk saying such as “only the non-privileged obey laws” became popular. Bribery and corruption were rampant. The decaying morals of the country brought rise to a culture steeped in the love of money, obsessed with partying and filled with nationalistic pride. At the same time, the Lord was desperately seeking people who would offer up intersession, repenting for this people’s iniquities on their behalf, building up the wall and standing before Him, so He would not have to destroy us.

 

"I looked for a man among them who would build up the wall and stand before me in the gap on behalf of the land so I would not have to destroy it, but I found none.” (Ezekiel 22:30)

 

An intercessory prayer meeting had begun through this national consciousness of future crisis that was to cry out for “building a righteous society” to accomplish God’s justice.

 

On July, 1992, the Upper Room Evangelistic Association of Ewha University started regular Monday prayer meeting for our country. Intercessory prayers shared Lord’s guiding words in each meeting and held seminars to be equipped with professional knowledge from specialists in various fields. The Holy Spirit directed intercessory prayer meetings to pray for politics, economy, society, education, mass media, churches, North Korea/Unification, and ministry.

 

As the year of 1994 began, the Holy Spirit laid even more burdens on our hearts to pray harder, especially for North Korea. Lord deeply convicted us because we had been indifferent of the cries of agony and groans of 23 million North Koreans. It was His own pathos for the perishing North Koreans who were beaten and starved to death, without having an opportunity to listen to gospel. They have been dying of anti-Christ’s attacks -Communism and Atheism- just like the Samaritan beaten and robbed on the way to Jericho. God was asking “who would be neighbors to the starved North Koreans?” In God’s eyes, we were exactly the same as the priest and Levite who turned away from their brother’s suffering.

 

The shortage of food in North Korea was worsened at the end of 1995. As North Korea’s extreme poverty was being reported, our intercessory prayers became more concentrated on North Korea, the spiritual warfare was intense. On July, 1996, Monday Prayer Meeting considered it as an emergency and urged a praying movement, “Intensive Praying for North Korea” which continued for 63 days from June 30th to September 30th. The most critical shortage of food was anticipated in North Korea during this period. The agenda was as follows:

 

1. Praying three times a day at meal times for the food shortage in North Korea.
2. Praying more than half hour a day for North Korea.
3. Relay fast and praying for 63 days.
4. Special fast on August 15th; the spiritual and physical salvation for North Koreans.

 

Simultaneously, we began undertaking the serious task of bringing South Korean churches’ attention to the significance and urgency of North Korean crisis. A prospectus and newsletters about North Korea were mailed out to 46,000 churches in South Korea. It was a tough task for a small prayer meeting to mail out more than 40,000 printed materials. Mailing process continued for 21 nights and days in a row from August 12th to September 1st without a pause. We were given Holy-spirit-driven burning love for our Northern brethren. Our love for them was stronger than the heat of that summer. PR for “Aid for North Korea” was carried out via Christian mass media (broadcasting, newspaper, and magazines). God himself made a way for us to present the reality of North Korea and “Aid for North Korea” to many prayer meetings and seminars.

 

A prophetic outcry is needed to awaken this people in this age. Who would stand up for Jesus’ wailing heart toward three million North Koreans while they are dying of starvation and diseases?

 


2. Call to Prayer leads to Shinchon 24/365 House of Prayer

 

I have been visiting 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in Kansas every summer since 2003. Abundant grace was poured out upon me through classes, worship, praising, praying, and the hearing of God’s word. Programs in IHOP go on 24 hours 365 days. I had many opportunities to meet with Korean missionaries there. They encouraged me to expand the Monday prayer meeting to a 24/365 prayer ministry and blessed it. On August, 2005, when I visited JHOP (Justice House of Prayer) in Washington D.C., Pastor Lou Engle and several JHOP staff members blessed us and prayed for me to start JHOP in Korea.

 

I doubted its possibility while listening to their prayers about the 24/365 prayer house. I could not think it was feasible to manage a 24/365 payer ministry along with my full time job, evangelical ministries, and church ministries. Despite my negative reasoning, on September, 2005, Korean staffs in IHOP started a weekly prayer meeting for the 24/365 house of prayer in Shinchon. I felt God was working in me to transform my pessimistic attitude.

 

First, the thought that just a Monday prayer meeting was insufficient kept bothering my conscience.  Both South and North Korea were in spiritual crisis. Great fear of the possibility of communized South Korea and the inevitable judgment of war overwhelmed me every time I prayed for the liberation and salvation of North Koreans. The fear seemed to me to be a spiritual war in a national scale which would be unbeatable without day and night prayer.  Life and death were in the balance.

 

Second, I saw myself standing in the way of God’s purpose to start the  24/365 prayer. God said to me, “Do not block my way with your own counting. Once you declare it, numerous people I reserved will devote themselves to it. I will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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