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년 연기인생 변희봉 조연상이 너무 값진 이유는?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돌아가신 부모님 오늘 밤 꿈에라도 만났으면 좋겠다.”청룡영화상에서 ‘괴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변희봉(64)의 소감을 들으면서 두가지 장면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떠오른다.
하나는“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본 적 있어?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괴물’에서 현서 할아버지역의 변희봉의 짧은 대사연기에서 느꼈던 감동의 전율이고 또 하나는 휘황찬란한 주연의 광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대중과 대중매체의 환호를 받지도 못했지만 41년 동안 그만의 연기의 색깔을 표출하며 드라마나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헌신한 연기자로서의 변희봉의 참모습이다.
그의 “돌아가신 부모님 오늘 밤 꿈에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변희봉의 수상소감에는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연기라는 한길을 간 것에 대한 너무 늦은 세상의 자그마한 평가를, 그를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던 간절한 소망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변희봉에게 주어진 조연상은 주연상의 그것보다 너무 값지고 빛났다. 41년이라는 기나긴 연기 여정에 젊은 스타들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한번도 받지 못했지만 변희봉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연기의 강렬함을 발산하며 힘든 연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에 대한 너무나 늦은 우리들의 인정한 것이기에 말이다.
그의 이번 청룡영화상 조연상이 너무 값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월간조선 9월호에 실린 기자의 ‘변희봉, 41년 아웃사이더였지만 진정한 주역-배국남칼럼’이라는 글에 담겨 있다.
다음은 포털뉴스와 월간조선에 소개된 ‘변희봉, 41년 아웃사이더였지만 진정한 주역’이라는 글이다.
한편으로 서글프면서 한편으로 통쾌하기까지 하다. ‘변희봉, 제2의 연기인생의 봄날’‘중견 연기자 변희봉의 재발견’‘아주 특별한 배우, 변희봉’..... 64세의 중견 연기자 변희봉에 대한 이례적이며 집중적인 언론의 화려한 조명은 이렇듯 두 가지 빛깔로 다가온다.
늘 그에게 연기는 봄날이었다. 그 봄날의 진가를 평가하지 못한 것은 언론이었고 비평가였다. 변희봉의 연기적 특성을 갈파하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것은 대중매체였고 연출자였다. 단역에서 조역 연기까지 아주 특별했지만 그 연기에 특별성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시청자와 관객이었다. 왜냐하면 주연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 젊은 스타만을 향한 지독한 상업성은 어느 사이 대중매체를, 그리고 감독과 PD, 투자자의 의중을, 드디어는 비평가와 관객, 시청자의 눈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시사회 때 주연이 아닌 조연의 중견 연기자에게는 질문 하나 던지지 않는 대중매체 종사자의 인색함과 젊은 스타에 올인 하는 연출자와 관객, 시청자들의 몰염치성을 연기적 정열과 연기혼, 연기력을 위한 노력으로 신나게 조롱해준(?) 변희봉은 어쩌면 인생과 연기에 있어 아웃사이더였지만 분명 주역임에 틀림없다. 이 아웃사이더 주역은 ‘괴물’의 박노인이라는 캐릭터의 기막힌 체현으로 촉발된 관객과 비평가, 대중매체의 찬사로 너무나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인사이더 주역으로 전환된 느낌이다.
변희봉, 그는 삶과 연기 연륜의 긴 물리적 시간만큼이나 연령층에 따라 다양한 빛깔과 문양의 연예인으로 다가간다. 그와의 동년배들에게는 성우이자 연극인으로, 그리고 30~50대들에게는 ‘수사반장’이나 ‘113수사본부’같은 드라마에서 잡범이나 악역으로 또는 사극의 개성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탤런트로, 그리고 10~20대에게는 개성 강한 중견 배우로 말이다.
전남 농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여느 시골청년처럼 서울로 돈벌러 왔다가 우연히 들은 성우의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한번 도전해 본 1965년 MBC 성우공채시험에 덜컥 붙은 것이 오늘날의 변희봉의 모체이다. 그리고 나문희, 정혜선 등 성우로 출발했다가 연극 무대로,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연기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전형적인 1960~1970년대 연기자의 코스를 변희봉도 밟았다. 하지만 변희봉은 다른 성우들이 주연에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스타로의 부상을 지켜봐야만했다.
촬영장에서 몇 번 만나며 들려줬던 이야기. “배우로서 지녀야할 것을 난 단 하나도 타지 않고 태어났어요. 얼굴도 배우 얼굴이 아니지, 전라도 사투리 쓰지. 뛰어난 연기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
그의 말처럼 그가 연기자로 출발선에 서 출발할 당시 주연을 독점하는 신성일류의 외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울말을 근사하게 구사한 것도 아닌 약점 투성이었다. 그때부터 생긴 것이 지독한 캐릭터 연구와 연습이었다. 그는 지금도 드라마 대본을 받거나 극본을 받으면 그걸 옮겨 적으며 분석하고 외운다. 연기자로서의 내재적 약점을 그는 지독한 훈련과 연습 그리고 노력으로 하나씩 하나씩 극복해 나갔고 그 오랜 세월의 연기적 연마가 기막힌 배역을 만나 빛을 발하는 것이다.
범죄인의 실화를 다룬 ‘법창야화’ 등을 통해 라디오 성우로서 주가를 올렸지만 연기자로선 빛을 보지 못했다. ‘수사반장’이나 ‘113수사본부’에서 이계인 등과 함께 잡범이나 악역이 그에게 떨어진 일에 전부였다. 이때 악역을 주로 했던 연기자들이 느꼈을 아픔은 그역시 비켜가지 못했다. “어린 딸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방송국에서 간부로 일한다 했는데,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 온 큰딸이 “아빠, ‘수사반장’에서 사기꾼이었다며?”라며 묻는 거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픈 생채기 속에서도‘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진리를 한 시도 잊어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를 그나마 연기자로서 존재를 각인시킨 것이 ‘조선왕조 500년’시리즈의 ‘안국동 아씨’‘설중매’등이었다. 점쟁이 등 개성적인 캐릭터를 변희봉식으로 체현해 낸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단역과 조역으로 단련된 연기의 세기는 빛을 발했고 한 장면에서도 변희봉만의 연기의 강렬한 빛깔을 발산했다. 이 때문에 봉준호, 류승완 등 그와 작업을 해본 감독들은 어떤 캐릭터를 변희봉만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린다.
조단역의 중견 연기자로 이땅에서 연기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생존위협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정도로 조역 연기를 하는 중견 연기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는 비참하다. IMF로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중견 연기자를 기피하는 방송사에서 변희봉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를 대중이 다시 만난 것은 스크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 배우 변희봉으로 인식의 전환을 꾀하게 한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그는 웬만한 연기자들은 도전하기도 힘든 8분 롱테이크에서 “보일러 돈다이∼잉”을 반복하며 아파트 괴담을 들려주던 익살스런 경비원 캐릭터를 그가 아니면 안되는 방식으로 표출해냈다. 이후 그는 ‘살인의 추억’‘시실리 2㎞’‘여선생 VS 여제자’‘공공의 적 2’‘주먹이 운다’변희봉식 캐릭터를 연출해 영화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캐스팅 1순위 중견배우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그 외형적 성과보다 관객들은 변희봉에게서 더 한 것을 얻었다. ‘괴물’에서 현서 할아버지역의 변희봉이 한 대사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본 적 있어?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에서처럼 느꼈던 감동의 전율을 여러 영화에서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변희봉은 한마디 건넨다. “고마울 따름이지.”그 말속에는 아웃사이더 연기자로서 살아왔던 아픔과 슬픔이 배어나는 것 같아 서글픔마저 든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당당한 인사이더의 주역이다.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