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이상학 객원기자]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프로야구를 얘기할 때 정민태(36)라는 이름 석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정민태는 다승왕 3회(1999, 2000, 2003), 한국시리즈 MVP 2회(1998, 2003), 골든글러브 3회(1998, 1999, 2003), 선발투수 최다 21연승, 5시즌 연속 200이닝 투구(1996~2000),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1999) 등 화려한 업적을 자랑한다. 특히 정민태의 활약에 힘입은 현대는 4차례 우승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국내 최고투수 정민태의 자존심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2004년 연봉 7억4000만원으로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연봉 7억원 시대를 연 정민태는 불과 3년 새 연봉이 절반 이하(내년 연봉 3억1080만원)로 떨어졌다. 성적과 연봉에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한 정민태. 추락의 원인과 내년 시즌 부활 여부를 진단해본다.
▲ 정민태, 왜 추락했나?
◇ 데일리안 스포츠 ⓒ NEWSIS정민태가 추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부상이었다. 특히 투수에게 민감한 허리가 아팠다. 150km에 육박했던 구속은 140km대로 뚝 떨어졌고, 더 이상 과거처럼 상대 타자를 압도하지 못했다. 허리의 힘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구속과 구위가 눈에 띄게 저하된 것이었다. 2004년의 피로누적으로 허리 부상이 악화됐고 이 때문에 한 때나마 선수생명에 위협을 받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마지막 전성기로 기억되는 2003년에 위력을 떨쳤던 투심 패스트볼은 구위가 떨어진 2004년부터 타자들에게 배팅볼이나 다름없었다.
허리부상으로 정민태는 강점이던 제구력을 잃었다. 홈플레이트를 절묘하게 걸치던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투구 패턴이 단순해졌고 상대 타자와의 수싸움에서도 번번이 밀렸다. 사실 정민태는 구위도 구위지만, 완벽한 좌우 코너웍을 자랑할 정도로 제구력이 좋은 투수였다. 다승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던 2003년에도 정민태는 직구의 위력이 떨어졌으나, 절묘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 안정된 경기운영능력으로 승부를 봤다. 그러나 허리 부상으로 제구력이 흔들리면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재기를 다짐했던 2005년부터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도 모자라 어깨와 허벅지까지 정민태를 괴롭혔다. 끊이지 않은 부상 악령에 지난해부터는 아예 '개점휴업'에 들어가야 했다. 올 시즌에도 시즌 막판에 나와 한 경기에서 2이닝을 던진 게 고작이다. 올 시즌 내내 재활훈련에만 몰두한 만큼 팀에 공헌한 게 없다. 연봉이 대폭 깎여도 할 말이 없는 정민태다.
▲ 팬들의 차가운 시선
정민태는 안티팬이 가장 많은 프로야구 선수 중 한 명이다. 고액 연봉자임에도 몸값을 못한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다. 사실 정민태가 2003년에 승승장구했을 때에도 팬들은 그를 평가절하 했다. 물론 그 당시 정민태의 17승에는 팀 타선의 도움이 적잖았지만, 그래도 다승왕 및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투수치곤 비난의 강도가 센 편이었다.
여기에는 우여곡절 끝에 진출한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대실패한 정민태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리그를 평정한 것이 한 원인이었다. 팬들은 눈물까지 보이며 진출한 일본에서 정민태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떨어뜨렸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돌아오자마자 맹활약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역시 연봉이다. 이제 정민태는 연봉의 '연'자만 들어도 진저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정민태는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3승을 따냈으며 시리즈 최종전인 7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우승 프리미엄을 기대한 정민태는 대뜸 구단에 10억을 요구했다. 이 때부터 정민태를 향한 여론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구단과의 연봉 줄다리기로 정민태는 훈련시간을 스스로 까먹었으며 뒤늦게 연봉협상을 마무리하고 전지훈련에 합류했지만 훈련량이 부족했다. 볼끝이 무뎌진 것이 부상 못지않게 훈련량 부족 때문이라는 시각도 파다했다. 정민태는 2004시즌 종료 후 연봉협상에서도 구단과 마찰을 빚었는데 이것이 또 한 번 팬들을 자극시켰다. 지난해에도 정민태가 몸값을 못하자 이제 팬들은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물론 정민태가 지난 2년간 부상으로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이런 비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에게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진출(2001~02) 시기를 제외하면 정민태는 줄곧 현대에서 활약했다.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한 1994년 태평양 시절부터 2004년까지 9년간 정민태는 평균 175.4이닝-13.6승-방어율 3.37을 기록한 정상급 투수였다.
최전성기였던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은 평균 213.3이닝-16.6승-방어율 2.92를 기록했다. 현대 창단 초창기 동안 정민태는 선발투수로서 최정상급 활약을 보이며 현대가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민태는 팬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처지다.
▲ 부활의 2007시즌 다짐
◇ 데일리안 스포츠 ⓒ NEWSIS현대 구단은 아직 정민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올 시즌 활약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연봉으로 3억원대를 유지한 것은 정민태의 내년 시즌 재기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팀에 공헌한 점과 내년 시즌 기대치가 더해지면서 정민태는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연봉 3억원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정민태로서는 내년 시즌 부활만이 구단에게 보답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일관하고 있는 팬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길이다.
정민태는 지난 10월1일 수원 삼성전에서 부상 후 처음으로 1군에 등판했다. 이날 경기에서 비록 심정수에게 시즌 첫 홈런을 내줬지만, 2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선방했다. 무엇보다 직구 최고구속이 144km까지 나왔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허리 부상에서 나아지고 있는 만큼 구위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비록 구위가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민태는 제구력-변화구-경기운영능력으로도 충분히 승부가 가능하다. 정민태 역시 힘으로 안 된다면 기교로의 스타일 변신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실전 감각만 어느 정도 회복한다면 내년 시즌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정민태는 술을 못 마시지만 애연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제 정민태는 담배까지 끊을 정도로 몸관리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지긋지긋했던 부상악령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선수생활에 대한 의지도 강해지고 있다. 어깨 수술 후 선수생활의 연장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적어도 40살까지는 현역으로 뛰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정민태는 일단 2007시즌 부활로 명예회복부터 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다. 과연 정민태가 극적으로 재기해 현대 구단에 보답하고 등 돌린 팬들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그의 2007시즌이 주목된다./ 이상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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