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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분

이해령 |2006.12.31 06:36
조회 33 |추천 0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은 우리 "아버지"다

 

4형제 중 첫째 ..장남인 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초등학교만 보낸 후 농사일을 시키셨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가 야속하게 보였다

다른 분들은 장남을 공부를 시키고 떠받지만 할아버지는 대를 잊기위해 장남인 아버지만 논이든 밭이든 하루 하루 일만 시켰다

가끔가다 할아버지께 혼이 나면 아버지는 볏짚으로 쌓여둔 곳으로 가서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친구들과 마주치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워 보였는지 지게를 짊어진 아버지는 바로 산으로 올라가 뗄감을 주으면서 자기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하셨다

어느날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혼을 내셨다고 한다 책 읽을 시간에 밖에 나가서 일을 하라며 아버지에게 화를 내셨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작은아버지는 멋진 교복을 입고 중학교로 가는데 장남인 나는 그런 교복도 입지 못하고 공부도 못하게 하니 왠지모를 서러움이 밀려왔고 중학교 책을 보면서 부러움만 가득차 가슴에는 시퍼런 멍만 들어 눈물을 삼키셨다고....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아버지는  도저히 이렇게 일만 하지는 않겠다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한다는 마음에 중학교 책 몇권을 옷속에 넣고 지게를 질머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친구들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때 아버지는 흙이 묻은 옷을 입고 산에 올라가 선생님도 없이 텅빈 곳에서 새소리만 들려오는 그런 곳에서 책을 읽으셨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할아버지가 산에 올라오지 않으시기에 우선 땔감을 미리 챙겨두고 책을 잃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산속에서 홀로 공부를 하셨다

열여덟살이 될 무렵 원주에서 노래자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말은 했지만 할아버지는 안된다는 말만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아버지 잠시 어디 갔다 온 다고 했으니 어여 가봐 아버지 오시면 엄마가 어떻게든 너 어디 좀 갔다고 말할터이니 어여 가봐"

아버지는 바로 원주로 향했다 그땐 버스가 없어서 아버지는 3시간동안 원주까지 걸어가셨다

수많은 사람들 중 아버지가 있으면 어떻하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는 겁이 생겨 노래를 부를때 손이 부들부들 거리셨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장려상을 받으셔서 소주 한병과 후라이팬을 받아오셨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셔서 아버지가 소주를 드리자 할아버지는 "왠 술이냐"하며 그날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웃음을 보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하시기에 술만 취하시면 할머니에게 손지검을 하셨다 그 다음날 할머니 이마에는 흉터가 있고 멍이 들어 아버지와 그리고 작은아버지 고모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매우 싫어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술을 가까이 하지 않으신다

나중에 미래의 2세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험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몇달 후 윗집에 사는 동생이 여행을 가자고 아버지에게 제촉했다 아버지는 분명히 반대하실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하는 말은 다 안된다고 말하셨다

할머니는 그래도 아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데 할아버지께 설득을 했지만 오히려 화를 내시고 안된다고 말만 하시니 할머니는 안되겠다 싶어서 할아버지 몰래 빨간고추 한포대를 들고 방앗간에가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아버지에게 여행갔다 오라며 돈을 주셨고 그날도 아버지는 할아버지 몰래 그 하루동안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로웠다고 말씀하셨다

스무살이 될 무렵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서 해방이 되었다

바로 군대에 가는 것이 아버지는 해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족들 중에 아버지가 훈련소에 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만틈 어려운 집안이였기에 가족들은 아버지가 가는 것을 집 마당에서만 마중을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그 기간동안 아버지는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한다

그렇게 야속하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뒷바라지 해주시는 할머니 그리고 동생들

여기와서 부모님이 안계시는 동기들을 보니 왠지 나에게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리고 세끼 꼬박꼬박 먹고 따뜻한 방에서 푹 잠을 잘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보다 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셨다 그리고 남들은 몇kg짜리 군장을 메고 힘겨워할때 땔감을지게에 메고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군장이 더 가벼워 다른 사람들보단 힘이 들지 않아 왠만한 훈련은 잘 참아와서 아버지는 농사짓는 것보단 군인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병장에서 부사관으로 군인생활을 하셨다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고 그리고 81년 5월 1일 내가 태어났다

8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아버지는 전역을 하셔야만 했다

동생들은 대학교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아 일을 했기에 농사지을 사람은 늙은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두분 뿐...

 세월이 훌쩍 지나서인지 할아버지는 패염으로 인해 누워계시고 할머니 혼자서 농사일을 한다는 것은 감당이 안되었다

할아버지는 누워계시는 동안 아버지에게 늘 전역을 하고 내려와 농사 짓고 살으라는 말만 되풀이 하셨고 그리고 생을 마감하실때도 아버지 손을 잡고 대를 이룰 사람은 너 뿐이 없다 하시여 아버지는 군인이란 직업을 접으셔야만 했다

8년이란 그 시간동안 가끔 집에 내려와 농사일을 거두었지만

이제 혼자서 논과 밭을 일구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1년 농사를 망치고 후회하는 일만 가득했다

점점 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도저히 농사만 하면 가족들 굶어죽을거 같아 탄광촌에서 3년동안 일을 하셨다

그때 나는 7살이였고 동생은 5살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만 데리고 나는 할머니에게 맡겼다

어두운 터널 속

               뿌연 연기들

이마에 흐르는 땀

                 그리고 허리디스크

아버지는 참고 또 참고 그 안에서 일을 하셨다 언젠간 좋은 날이 오겠지 하며 아버지는 힘들어도 어릴적에 흘렸던 그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그만틈 힘든 일을 견뎌내셨고 아셨기에 아버지는 이것이 자신에 어쩔수 없는 인생이고 그리고 삶이라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힘든 노동을 하시면서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부족한 것을 더 채우기 위해 한문을 배우셨고 일이 마치면 서예를 하셨다

집중력이 필요했고 그만틈 공부를 해야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탄광촌에서 일을 그만두시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낮과 삽을 메고 다시 일을 하셨다

농사에 관한 책을 보면서  가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몇십년동안 고향을 떠나지 않으신 분들에게도 하나 하나 배우면서 아버지는 스스로 논과 밭을 일구워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유언대로 우리집에 기둥이 되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논과 밭을 자식처럼 키우신다

이마에 흐르는 땀과 그리고 고통을 이겨내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처럼 살지는 마라 농사꾼이 되지는 말아라"

어릴적에는 아버지에 힘든 모습을 보고 농사꾼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고 또한 농사꾼이 되어도 후회를 안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또한 자랑스럽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 ,힘든 훈련을 하면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 보다도 힘든 농부의 삶

가족을 위해서 피 한방울이 흘려도 참고 이겨내시는 아버지

저도 아버지처럼 살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중에는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 좋은날이란 풍부한 수확을 얻는거겠지요

여자로써 농사 짓는 일은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농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거겠지요

아버지에 희생과 노력이 아니였다면 우리 가족들은 늘 힘겨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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