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든지 대답해 줄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때론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한다.
모르는 게 오히려 낫다면
대답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와서
거짓이나 숨김 따윈 무의미한 것이
다.
너와 나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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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용서해 줄 수 있다면.
어린 시절에 만났더라면,
흙투성이가 된 채로 '찰칵'하고 사진이 찍혀,
어딘가 간지럽고 슬픈…
그런 슬픈 너와의 추억이 언제까지나 남을 수 있도록.
- 99' Fuji TV 「Lipstick」 中 -
1.
가끔 상상한다.
너를 아주 어린 시절에 만났다면
우린 지금쯤 어떤 관계가 되어 있을까, 하고…
2.
5살이라면?
내가 5살 때 너를 만날 수 있었다면?
아마 모든 건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넌 옆집에 사는 새침한 초등학생 여자 아이였을 테고,
난 앞니가 반은 빠진 채, 이리저리 고무줄을 끊고 다니는
장난꾸러기 유치원생이었을 테니까.
25살의 너를 만났을 때, 그리고 쭉 너와 함께였던 시간 동안,
넌 내게 항상 "사랑스러운 여자"였었다.
하지만, 5살의 나에게 초등학생이었을 넌,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힘도 세고, 나보다 훨씬 성숙한
"동네 누나"일 수밖에 없다.
3.
나는 쭈쭈바가 먹고 싶어 네게 떼를 쓴다.
너는 난감하고 한편으론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로 향한다.
왜냐하면 너는 "누나"이니까.
사실 나는 이미 집에서 쭈쭈바를 세 개나 해치우고,
배가 살살 아파오고 있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징징거리며 널 보챈다.
왜냐하면 나는 "동생"이니까.
4.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또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무더운 한여름 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대학 MT에 다녀 오는 피곤한 얼굴의 널 만난다.
나는 그리고 어느 순간, 너보다 키가 커진 스스로를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네가 이삿짐을 옮기지 못해 도움을 청했을 때,
나는 또 어느 새 너보다 힘이 세진 나를,
문득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그린 풍경들은
좀처럼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칭얼대는 장난꾸러기 유치원생,
너는 내 손을 잡아 주고, 쭈쭈바를 사 주던 초등학생.
5.
시간이 흘러,
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
너도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
우린 가끔 만나 서로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조언해 주고, 함께 기뻐해 주고, 같이 슬퍼해 주는 것이다.
거머리처럼 "달라 붙는" 남자를 떼어 버리기 위해서,
너와 나는 거짓으로 커플 행세를 하기도 하고
헤어진 애인 탓에 괴로워 하는 내 등을 두드리며
넌 포장마차로 나를 끌고 가 소주를 사 주기도 한다.
마치, 오래 전 아이스크림을 사 주던 그때처럼.
6.
그럴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아주 옛날,
그 어린 시절에 만났다고 해도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틀림 없이,
나는 언젠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네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인지.
7.
그건 아마도,
너와 내가 어린 시절 찍었던,
수많은 회색 필름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가슴에 아로 새겨지는 것이겠지.
8.
그러니까,
변하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