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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ssible is noting

이한승 |2007.01.08 23:41
조회 18 |추천 2


1973년, 이열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씁쓸한 얼굴로 한 출판사의 정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신춘문예 탈락에 이어 출판사에 직접 투고한

원고마저 거절당한 순간이었습니다. 4년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그가 새로 바꾼 이름은 '이문열'이었습니다.

 

1986년, 40대 중반의 한 사업가가 우울한 얼굴로 미 전역을 방랑하

고 있었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대사업에 실패한 뒤 무려 5년간이나

국외를 떠돌아야 했던 그 사업가의 이름은 이건희였습니다.

 

1989년 겨울, 초췌한 표정의 한 젊은이가 인근 가게에서 차비를 빌려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5년간의 무명세월을 청산하고자 마지

막이라는 심정으로 선택한 서울 진출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 순간이

었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신승훈이었습니다.

 

1992년 충무로, 30대 초반의 한 영화감독이 아침부터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계속적인 흥행실패라는 뼈아픈 현실을

맨정신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감독의 이름은 강우석이

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한 학생이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뒤 어찌 어찌해서 겨우 대학에 입학한 그 학생은

이번에는 유급될 위기에 처해 재시험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학교 공부

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수 차례 자퇴를 하고, 영어성적이 나빠

재시험을 치러야 했던 그 학생의 이름은 리양이었습니다.

 

1969년 3월, 한 회사의 사장은 세계은행(IBRD)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귀사의 프로젝트를 면

밀히 검토하였습니다. 검토 결과, 귀사의 프로젝트는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며 경제적 타당성도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귀사

의 융자신청을 거절하게 됨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얼마 뒤,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방 각국의 은행 및

정부로부터 같은 내용의 편지가 전달되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박태준, 그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포항제철 건설'이었습니다. 

 

                               이지성 "18시간 몰입의 법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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