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영웅이 나타났다.
축구선수 고종수 바로 그 였다.
공격형미드필더인 그의 발끝에서 뿌려지는 패스는
안전한 패스와는 거리가 먼 항상 모험? 혹은 도전적인
패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공을 받아줄 능력이 충분한 선수들과 항상
그의 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역활을 충실히 해준
김진우선수 및 든든한 수비를 보아주던 신홍기선수등
그를 더욱더 빛나게 해주 더없이 좋은 수원의 모든
선수들과 김호감독님이 있었기에 그는 그의 능력을
팬들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프리킥은 수원을 응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TV, 또는 경기장에서 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골이라는 기대감과 특유의 덤들링 쎄레모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의 골을 기다리는 사람중의 한명이
였으니깐..............
하지만 그는 수 많은 부상이 끊이지 않았을 뿐더러
여러가지 시련이 많았다. 거듭되는 실패........
2005년에 실패..............
2006년에 무적선수..........로 되느니 차라리 N-리그에서
라도 그라운드에서 서있는 그를 보고 싶었지만 포차를
개업했다는 기사까지 인터넷에 나온걸 보고 많은
실망을 했었다. 그해 일본의 최고의 축구 영웅 미우라는
2부리그로 팀을 옮기는 일까지 있었으니.........
나 역시 무적선수보단 그걸 바랬을지도 모른다.........
2007년 다시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다들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화려한 부활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를 가장 대표하는 닉네임은 '앙팡테리블', 하지만
그에게는 20살에 '대학 5년생'이라는 닉네임도 있었다.
그많큼 나이 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로 당신의 축구열정을 다 불살라 최고의 플레이가 아니더라고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길 바란다.......
-10년전 당신을 영웅으로 생각한 한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