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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둘리

고영준 |2007.01.11 22:11
조회 440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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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일보에서 퍼왔습니다. ☆

 

제        목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작        가  : 최규석

출   판  사   : 길찾기     

국내상륙일자  : 2004 년 4 월 10 일 출간

평        점  : ★★★★+★★

주        의  : 아기공룡 둘리를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 필독. 삶에 찌든... 그러나 스스로 찌들었다고 생각 못하는 워커홀릭들 필독. 한국 만화를 살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이들 필독.

 

2003 년에 본 필자는 두 명의 신인작가를 알게 되었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지금은 폐간된 전설의 잡지... 한때 인디 만화가들의 유일한 창구가 되어주었던, 인디만화의 보고였던 서울문화사의 [영점프]. 이 영점프에서 발굴한 두 명의 걸출한 신인이 있었으니, 한 명이 일전에 소개드렸던 [굳세월아 군바리]의 나병재 작가이고, 나머지 한 명이 전혀 만화가 답지 않은 만화가 최규석 작가이다.

최규석 작가... 솔직히 최규석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처음으로 나온 말이

잘생겼네...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진짜 몸 좋다....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그런데 왜 만화 그리지?

였었다. 그렇다 최작가는 잘 생겼다. 최규석 작가의 첫 독립단편집에 실려있는 의 이진석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는 잘생겼고, 남자가 봐도 멋있는 근육질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차라리 배우를 한다고 그러면 더 잘 어울릴 작가... 그렇다 최규석 작가는 잘 생겼다.

2003 년 6 월 25 일 만화계의 화려한 반란이었던 서울문화사의 [영점프]가 사실상의 폐간을 당하면서 나는 몇 명의 신인만화가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몇 명의 만화가들의 진솔한 속내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작가들... 그 중에서 다시 한 번 이 험난한 만화수난기에서 그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던 이들이 두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병재 작가와 최규석 작가이다. 언제부터인가 돈되는 만화를 그리겠다며 일본식 그림체와 화풍에 젖어든 우리 나라의 신인작가들... 그 중에서 만화란 장르가 보일 수 있는 한계를 찾아가는 이들과 그들만의 작가관을 가지고 이 사회를 그려내는 작가들을 찾는다는 건 포기해야 했었다. 그런 나에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나병재 작가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최규석 작가와의 만남은 축복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들과 만나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500 cc 맥주잔을 기울이며 대한민국 만화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1. 작가 최규석

1977 년 창원 출생
1998 년 이란 작품으로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 금상 수상.
            그러나 군입대 문제에 걸려 본격연재에 들어가지 못하고 군대로 끌려감.
2002 년 으로 동아 LG 국제 만화 페스티발 극화부문 대상 수상.
            이때부터 만화계에선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최규석 작가는 2 번 데뷔를 한 셈이다.
            이란 작품으로 이미 데뷔 했지만,
            군입대 이후 모든걸 다시 시작하여야 했다.)
2003 년 상명대학교 만화학과 졸업
2003 년 5 월 1 일. 그를 대한민국에서 각인시킨 사실상의 3 번째 데뷔작인
            를 영점프에 발표.
            둘리 탄생 20 주년에 맞춰 준비한 영점프의 회심의 카드였었고,
             최규석 작가는 이 한 편으로 만화계에 그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2003 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 초청작가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 선정

최규석... 그는 사실상 세 번 데뷔를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소개하려 하는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역시 그의 데뷔작 모음이라 보는 것이 편한 책이다. 왜 그는 데뷔를 세 번이나 해야 했을까? 서경순, 정현욱과 공동작업으로 1998 년에 으로 한 번 데뷔하고 나서, 동아 LG 국제 만화 페스티발에 으로 다시 한번, 그리고 본격 상업지 시장에 로 다시 한 번 데뷔한 최규석 작가... 그는 6 년동안 데뷔만 세 번한 작가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최규석 작가의 소개는 딴지일보가 최초였을 것이다. 2003 년 5 월 1 일 가 영점프에 실리고 나서 본 필자가 처음으로 최규석 작가를 소개했던 것이 바로 딴지일보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줄을 잇는 각 언론들의 최규석 작가에 대한 코멘트와 소개로 결국 최규석 작가의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문을 닫아야 했고, 없는 살림에 서버를 추가로 확보해야 했고, 종국에 가선 가 스캔본으로 인터넷 상에서 떠돌게 되었다. 이에 보다 못한 최작가가 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상황은 일단락 지어지게 되었다.

그의 세 번에 걸친 데뷔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화려하면서(?) 소란스러운 데뷔였었다.
 

2. 남루한 현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은 남산 애니센터에서였다. 그는 남산 애니센터에서 숙식을 하며 후배들과 함께 만화를 그렸다. 남루하다 해야 할까? 남루한 현실일까? 글쎄... 남루하다면 본 필자도 만만치 않은 인생인데, 그는 언제나 만화 이야기로 화제만발이었다. 그의 현실은 절대 남루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만화는 남루하다... 아니 상당히 괴롭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흥미의 만화가 점점 더 음습함으로 빠져들었다면, 그의 만화는 남루한 현실에 역설적인 웃음을 결합한 일상의 페이소스가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남루한 현실 + 역설적인 웃음 = 작가 최규석

이란 공식은 그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표현해 낸 공식일 것이다.

겨우(!) 27 살 짜리 신인 만화가가 이 정도의 현실 인식과 그만의 작품관을 보여준다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이다. 그는 충분히 21 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에 선정될 만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단편집의 첫 스타트를 끊는 이란 작품을 보면, 이런 남루한 현실과 역설적인 웃음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 지망생들로 보이는 외딴 사무실...야식으로 치킨이 결정되고, 돼지 저금통을 뜯어 치킨을 시키는 데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문제는... 닭이 치킨집 사장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주문을 했기에 닭을 잡아야 하는데...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 '닭돌이' 를 튀겨서 가져온다.


유난히 눈이 맑고... 이... 이 못난 애비를 끔찍이도 따르던,
착하디 착한 아이랍니다. 부디... 그것을 알고... 먹어 주시오.

이 장면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장면 하나만으로 보면 그걸로 끝이 나야 할(한마디로 뒤를 수습할 그 어떤 스토리가 생각이 안 나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최작가는 끌고 나갔고, 결론에 이르러선 닭돌이를 먹고 남은 뼈를 마늘 다지는 절구통에 넣어 곱게 '분골' 을 한다. 그리곤 풍선에 달아 날려버린다. 마지막으로 뱃속에 있던 닭돌이의 영혼이 방구로 빠져나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최규석 작가는 남루한 현실을 기묘한 그만의 상상력으로 비틀어 웃길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일과성으로 '현실참여 작가' 로 규정짓기엔 그의 재능이 너무 크다.
 

3. 공룡둘리...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2003 년 4 월 22 일 둘리탄생 20 주년 행사가 소박하게 부천시에서 거행되었다. 부천시에선 둘리의 명예주민등록증을 발급하였고, 네티즌들은 830422-1185600 라는 둘리의 주민등록번호가 실제로 인터넷 상거래에서 쓰이는지 안쓰이는지를 확인해 보느라 키보드를 두들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는

쌩 구라잖아!!!

라는 일갈로 끝이 났다. 그랬다. 말 그대로 '명예' 주민등록증이었다.

그때 당시 딴지일보에 아기공룡 둘리 탄생 20 주년 기사를 썼던 본 필자가 쌍문동 동사무소에서 둘리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지 않고, 애매한 부천시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한 것이 아쉽다는 요지의 글을 썼었다. (아기공룡 둘리를 보셨던 분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둘리가 지구상에서 터를 잡았던 곳은 고길동의 집... 바로 쌍문동이었다. 부천시가 아무리 만화도시라지만, 둘리의 집은 쌍문동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쌍문동은 반성해야 한다.)

'부천시 원미구 상 1 동 412-3 번지 둘리의 거리' 라는 둘리의 본적 역시 거짓이었다. 탄생 20 주년 만에 겨우(!) 한국 국산 캐릭터 시장의 25 % 를 차지하고 1 년 로열티 수입만 20 억이 넘게 거둬들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캐릭터물이 되었다며 자화자찬하던 2003 년의 4 월이 지금 생각난다. 둘리를 일본의 아톰과 비교하던 그때 둘리 정도 되는 캐릭터가 겨우(!) 이 정도 성과를 올려야 하냐는 생각에 가슴 아팠던 그때... 둘리는 20 주년 생일선물 중 가장 확실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최규석 작가의 의 등장이었다.

당시 [영점프] 편집부의 천강원 기자의 코멘트를 잠시 들어보자.

천강원 : 흐흐... 실제로 의도했었죠. 둘리 탄생 20 주년인데, 솔직히 그때에 맞춰서 나온거였죠. 최규석 작가도 공룡 둘리 작업 들어가기 전에 김수정 선생님 찾아 뵙고 허락을 받았고, 그리고 나서도 감수를 받았죠.

펜더 : 제대로 한 번 [영점프]의 힘을 보여준 거군요?

천강원 : [영점프]의 힘이 아니죠... 작가 최규석의 힘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영점프]는 최규석 작가같은 문제작가의 '멍석' 이구요

2003 년 5 월의 어느 날 천강원 기자와 본 필자의 전화통화였었다. [영점프]... 정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점프]가 있었기에 최규석 작가와 나병재 작가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영점프] 정도로 '막나가는 잡지' 는 없었다. 막나가는 편집장 전재상과 그의 수하(?)들이 있었기에 [영점프]의 신화는 불을 지폈고, 지금 이렇게 [만화 길라잡이]를 통해 소개할 수 있는 걸출한 신인작가들의 등장을 알릴수 있는 것이었다... 많이 아쉽다.

각설하겠다. 여하튼 의 반향은 침체기에 있던 한국 만화계에 일대 충격이었다. 단행본이 나온 것도 아니며(공룡 둘리가 나온 지 꼬박 1 년만에 단행본이 나왔으니... 쯥) 그렇다고 잘 나가는 작가도 아닌 신인 최규석이 대한민국 만화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에 열광했을까?
 

4. 둘리... 바로 우리의 모습

공룡 둘리... 40 대 둘리와 둘리의 친구들이 중년을 넘어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양아치가 된 희동이, 동물원 타조 우리에서 몸을 팔게 된 또치, 사기꾼 도우너, 폐인이 된 철수... 그리고 더 이상 '호이' 하면 뭐든지 이루어 낼 수 있는 '초능력 내 친구' 가 아닌 노가다 막일꾼이 된 둘리... 둘리는 프레스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짤려 더 이상 초능력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충격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의 친구였던 둘리는 전혀 다른 모습... 삶에 찌들고, 세상에 채인 평범한 우리의 40 대 아저씨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 덕분에 아름답던 둘리의 추억을 가지고 살던 수많은 둘리팬들에게 욕을 얻어먹기도 했었다.)

세상은 그러했다. 1983 년 4 월의 둘리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2003 년 4 월의 둘리는 우리에게 허탈함과 체념만을 남겨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꿈과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도 '삭막' 했던 것이다.

어쩌면 '둘리' 란 아이콘이 아니라 다른 정상적인 캐릭터, 혹은 최규석 작가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이야기를 전개해도 이 이야기는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공룡 둘리를 택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어렸을 적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 캐릭터인 둘리를 통해서 20 년의 세월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남루한 현실만이 남아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최규석 작가...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다. 우리의 아련한 추억마저 짓밟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공룡 둘리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양아치가 된 희동이가 사람을 팼고, 철수는 그런 희동이를 빼내기 위해 도우너를 팔기로 결심... 외계인 해부를 원하는 외계인 연구가에게 도우너를 팔게 된다. 둘리는 철수에게 사정하지만 안되자. 결국 옛 동료들을 끌어모아 도우너를 구출하려 한다. 이미 프레스에 짤린 손가락과 노가다로 지친 노구를 이끌고 찾은 친구들... 여전히 밤무대에서 기타를 치는 마이콜과 동물원에서 몸을 파는 또치... 그 누구도 둘리를 따라 나서지 않는다. 아니 둘리 스스로도 인정한다.

첨부터 구하러 갈 맘도 없었으면서... 나쁜 놈 아니란 소리를 들으려고...

그랬다 현실의 둘리는 너무도 미약한 위선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바로 현실의 우리처럼 말이다... 작가 최규석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현실의 우리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정의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할 수 있고, 정의는 늘 승리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명랑만화와 같은 결말이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정의가 꼭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현실은 언제나 나를 미약한 존재로 만든다는 걸 '각인' 시켜주는 작품으로 말이다.

우리의 꿈과 희망이 비겁해졌듯이, 우리도 비겁해졌다. 그리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존재 바로 였다.
 

5. 기억에 남는 대사

를 보면서 잠시 잠깐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거 혹시 외국인 노동자들 이야기를 비꼰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다. 둘리 보고 '민증도 없는 새끼' 란 말을 하며 내쫓았던 공장 사장의 모습, 또치가 둘리에게 했던 말,

종합적으로 바라 보면 딱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늘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을 작가에게 못하는 나로선 좀 더 고민해 본 뒤에 작가에게 물어볼 심산이다. 언제고 대답해 주겠지.

이 작품에서 본 필자가 '기억에 남는 대사' 로 최후까지 본 필자를 갈등하게 만들었던 대사가 두 개 있었다. 하나가 둘리에게 던진 또치의 대사...

란 대사이다. 그렇다 현실은 더 이상 명랑만화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 영화가 아니듯이 말이다.

그리고 둘리가 고길동의 무덤에서 읊조리는 대사들...

그렇다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그리고 둘리에게 있어선 현실은 춥고 배고픈 동네였다. 그의 말처럼 빙하기가 다시 올 정도로 현실은 싸늘했던 것이었다.

어느 걸 최고의 대사로 삼을 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P.S 이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최규석 작가에게 전화를 했었다. 최작가에게 책이 너무 예쁘게 나왔다고 말하자, 이 책에 결정적인 오탈자가 있음을 말하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 수정본을 올려놨으니, 이걸 꼭 좀 글을 쓸 때 독자들에게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이트 주소는http://mokwa.hompy.com이다. 홈페이지 방문하면 최규석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많으니 한 번 들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딴지일보에서 퍼왔습니다. ☆

 

 

출처 : 히서기꼬 (http://blog.daum.net/heesug/531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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