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내내 여름인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 룸푸르. 수십개의 섬들이 모여있는 동남아.
비행기가 땅에 풍 떨어졌을 땐 오후 5시 즈음이었다. 뜨거운 열대 기운이
공항안까지 느껴졌다. 차가운 에어컨이 비록 몸을 휘감았지만.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는 밤 11시 20분.
6시간을 공항안에서 보내야 했다.
하늘에서 봤을 때 십자가 모양의 쿠알라 룸푸르의 신식공항은 많은 사람들도 붐볐다.
Q는 십자가 한 가운데 서서, 안내판으로 11시 20분 말레이시아 항공, 프랑크 푸르트 행 탑승 게이트를 찾는다.
사람들은 그의 뒤로 앞으로 바쁘게 스쳐간다. 모두 바쁘다.
Q에겐 6시간이 주어졌다. 캐리어를 카트에 올려 천천히 밀며 걷는다.
게이트는 서쪽 끝에 있었다. C-27. 아무도 없었다.
창밖으로 커다란 날개를 단 새들이 보였다. 여러마리가 조용히 말없이 그곳에 있었다.
Q는 번잡한 십자가 중앙, 공항 중심으로 돌아왔다.
머리에 천을 둘러쓴 여자들이 보였다.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빈라덴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 한 아랍사람은 진한 청바지 차림으로 옆 사람에게 뭔가를 물어본다. 마르고 검은 피부의 남자는 손을 들어 가리킨다.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이 검고 윤기나는 미소를 지으며 폼나게 걸어온다.
부시시한 백인 아가씨가 카트에 커다란 배낭을 싣고 두리번 거린다.
Q는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그는 볼펜을 꺼낸다.
' 시작은 이렇게.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 룸푸르 공항 한가운데다.
난 한국에서 왔고 지금 이곳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명해 보겠다.'
공책을 옆자리에 놓고 Q는 일어났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그들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 잊혀지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전 나는 그 시간을 남겨두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사람의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난 도망자입니다. 지금 난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나로부터 난 지금 탈출을 시도합니다.
Q는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아까부터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던 백인 노부부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짓는다.
Q가 다시 공책을 집어 들었을 때, 그의 옆자리에 작은 수도승이 와서 앉았다.
빡빡 민 민둥머리에 황금색이 나는 노란색 불교승려 복장을 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의자위로 양발을 끌어올려 가슴에 끌어앉았다. 맨발이었다.
이마엔 붉은 점이 찍혀있었다.
Q는 그 소년이 티벳에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 소년의 삼촌정도는 티벳출신일 것이라고 믿었다.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소년이 Q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Q는 소년에게 미소 지었다.
소년이 움크리고 있던 손을 내민다.
- 1달러 있어요?
Q는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 건내며 말했다.
- 여기 내 공책에 행운을 빌어주면 1달러를 줄께.
- 난 그런거 못하지만, 2달러 주면 한번 해볼께요.
소년은 선불로 2달러를 받고 받아든 공책에 꾸불 꾸불 글씨를 써내려 갔다.
그가 글쓰기를 끝내자 Q가 물었다.
- 무슨 뜻이지?
- 당신이 언젠가 괴로울 때, 오늘 내게 준 2달러를 기억한다면
그 순간 난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