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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나라도 존경하지 않는 것 같다. -가치 부재 시대의 리더십

김새해 |2007.01.27 12:09
조회 67 |추천 2

가치 부재 시대의 리더십

                              

                                      유성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에서 고전이 된 우스개말에 손자와 할아버지의 목욕탕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가 온탕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탕에 들어간 손자가 하는 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이야기다. 이 조크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가족간의 신뢰가 없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웃어른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생뚱맞고 천박하고 불경스러운 조크가 대한민국 4천8백만에게 확산됐다고 하는 것은 코드가 정서에 맞아 들어갔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회자된 개똥녀 사건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사건이다. 무슨 절박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가 무시됐던 사건이다.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미래를 살기 좋은 나라, 선진국의 모범을 이끌어낼 모든 국민들의 행동을 지배할 윤리적 가치관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리더급에 있는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철학자, 사회학자가 아니므로 이런 과제를 다룰 사람이 자격이 없지만, 경영학도로서 보는 시각이 있다. 경영학적 시각에서 윤리적 가치관, 리더십 발휘의 방향과 필요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기업은 사람의 집단이다. 현대 기업은 사회와 국가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사회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기업은 이윤동기에 의해 작동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국민적 열망으로 기업을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은 이윤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만, 개인은 무슨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가? 개인을 지배하는 행동 원리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개인 행동의 두 가지 지배 원리

첫째,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에 잘 설명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복잡한 세포 조직과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유전자 종합시스템으로서 개체, 이것을 지배하는 최종의 궁극적인 요소는 유전자의 논리라고 한다.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존 논리, 종족 번식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이타적 행동을 하지만, 이타적 행동마저도 이기적 동기를 안에 담고 있다. 이기적 행동이 이타적으로 나타나도록 유인하는 사회적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장치를 따라 하다 보면,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 장치가 이기적 만족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둘째, 출세, 성공이라는 동기 요인이다. 명예, 돈, 권력에 대한 성취 동기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보통 수준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명예 권력 부는 최고의 상태이다. 대학은 스카이(sky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가야 하고, 취직은 재벌 기업이 되어야 명함 내밀 수 있고, 연예 진출은 탤런트 반열에 올라야 하고, 스포츠 역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 챔피언십을 차지해야 하고,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손꼽는 기업을 해내야 성공한 것이고,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인정해 준다. 부를 가지는 것은 벤츠 정도는 타고 다녀야 하고, 권력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이나 장관쯤은 되어야 하고, 사는 집은 강남의 노른자위에 살아야 인정받는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성취 동기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이다. 최고 수준의 성공 지향이 나쁜 것인가? 나쁘지 않다. 최고의 성공 지향성이 절제되지 않고 무조건적이고, 다른 사람의 복리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무형의 폭력성에 문제가 있다. 최고에 대한 경제적 수요는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최고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 공간, 돈, 이런 것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없이 적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저절로 과열과 투기와 정글 법칙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생존논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과열이다. 우리 사회의 최상위 지배 논리는 윤리가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는 출세와 성공이 기준이다. 이것이 더 높은 행동 규범이다. 행동규범으로서의 윤리적 가치는 더 높은 출세나 성공의 하위 개념으로 자리매김된다.

경제개발에 진력하던 70년대에 흔히 듣던 말이 ‘잘 살아보자’는 유행어였는데, 이 말이 착하게, 바르게 살자는 뜻은 아니다. 잘 사는 것은 부유하게 사는 것과 동의어이며, 그 과정에 도덕이나 정신 등의 비실용적 가치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진화 발전하면서 안게 된 여러 가지 병리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신문에서 20여 가지를 찾아봤다. 아는 것이지만, 언급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인 것, 정치적인 것, 회계 부정과 같은 큰 것은 아예 넣지 않았다.

어떤 일간지 시론에서 소개된 우리 사회의 모양에 대한 글에서, 욕하고 욕먹고, 저주하고 저주당하고, 때리고 맞고, 속고 속이고, 밟고 밟히고,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재학 중인 자기 학교에서 학생이 교수를 폭행하고, 재산 싸움으로 형제가 갈라지고 소송하고, 경영자나 전문인이라도 부패, 비자금, 장부 조작 등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범한다. 극에 달한 주부도박단, 여고생 애인을 살해한 남자 친구, 사연에 빠져 자식을 내팽개친 부모, 버려진 아이들, 부부간에 인내 사랑보다는 이기적 욕구가 앞서고, 안 되면 훌쩍 이혼한다.

승객은 택시를 탈 때 목적지를 구걸하다시피 하고, 고객은 식당 종업원의 눈치를 살피며 특정 음식의 수량을 주문하고 강요하는 사회에 예의, 미와 상도덕은 없다. 원서접수를 둘러싼 수험생의 사이버 테러, 내가 성공할 기회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이버 테러가 있었다. 근로자 들은 사생결단하듯 노동쟁의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좌경이념과 자기 집단의 권익, 그것을 얻기 위한 극한의 투쟁, 삭발과 몸싸움은 일상적인 모습이고, 민법이나 형법보다 더 무서운 떼법이 관습으로 자리잡는 동안 권위와 상식은 무너졌다. 투쟁과 쟁취의 속에서 국민정서는 황폐화되었으며, 얻은 것은 이긴 쪽의 전리품이고, 잃은 것은 진쪽의 분노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왜곡된 직설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맹독성 화공 약품을 음식에 넣고, 식품의 유효기간을 조작하고, 심지어 과학 연구에서도 부정이 있었다. 줄기세포가 있다 없다, 봤다 못 봤다, 나는 모른다, 누가 훔쳤다 등, 거짓말은 때로는 개인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일상에서 늘 부딪치는 보통사람들의 무심한 표현 방식이다.

아름다움도 돈을 주고 산다. 생존논리가 더 급하다. 한국은 성형공화국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놓은 비율이다. 성폭력은 이제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다. 겸허한 자세는 패배와 실패의 첩경으로 치부된다.

승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축구나 테니스처럼 상대가 지고 내가 이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라톤이나 골프처럼 자기 혼자 잘하면 되는 것이다. 경제는 마라톤이나 골프와 비슷하다. 목표를 정해놓고 자기가 열심히 뛰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다 잘 될 수 있고 다른 기업을 망하게 해야 내 기업이 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시장 경제를 마라톤이나 골프로 생각지 않고 축구나 테니스 식으로 남이 망해야 내가 이익을 얻는 것으로 착각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의리마저도 생존 논리의 우선 순위의 밑에 고착화되어 있다. 의리는 불의를 미워하고 거부하는 강인하고 꼿꼿한한 마음이다. 의리가 강한 사람은 개인적 이해 득실을 떠나서 희생을 감수하며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기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의 보편적 의리 개념은 예를 들면, 출세한 동창에게 찾아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부탁했을 때, 출세한 동창이 그 부탁을 들어주면, 이익을 얻은 동창이 그 친구 의리 있다고 말하고, 부탁을 안 들어주면 의리 없는 놈으로 치부한다. 의리도 자기 좁은 집단 안에서의 의리일 뿐, 더 큰 집단에서의 의리, 본래의 의리는 아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수신(修身)을 이기적 생존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이 치국평천하한다고 하는 상태다. 정치권 이전투구, 교육 문제, 지역갈등, 끼리끼리 문화, 부정부패 등 들여다보면 이기적 생존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상대방도 이기적 생존논리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는 전제가 믿음으로 차 있다.

지도층도 이기적 생존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투명사회실천협약에서, 사회지도층 청렴 조사를 했는데, 국민의 82%가 지도층을 불신한다. 지도층이 일반 사람보다 더 청렴하다고 믿는 사람은 1.8%에 불과하다. 지도층이 병역, 납세 등 국민의 기본 의무를 잘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답이 83%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4%. 이것이 우리나라 지도층에 대한 인식 실태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온 공무원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 ‘한국 사회가 어떻냐’고 물었다. 물어본 사람이 기대한 답은 ‘한국 보고 놀랬지?’ 하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산다. 그런데 그 인도네사이 사람의 대답은 한국은 배려가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출입문을 열 때 상대방이 밀고 나와서 양보했는데, 나오는 사람은 자기가 당당히 나올 권리가 있는 것처럼 눈길 한번 없이 그냥 가 버린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꼭 고맙다고 인사한다. 배려, 사회적 에티켓 같은 것이 국민소득과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 한국 경제의 불투명성, 불확실성을 근거로 외국인들이 한국의 주가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는 일)가 있다. 한국적 안보 불안도 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의 신뢰 결핍증에서 나온 것이다. 신뢰가 약한 사회가 만들어낸 정보는 불확실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높은 재무제표, 정보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다 보니 디스카운트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26개를 열거했는데 하나하나가 하나도 이상하다거나 특이한 예라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의 자화상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책에, 이혼 문제, 가정폭력, 노인 문제, 청소년 비행, 약물남용, 성차별, 사이버 성폭력, 환경 문제 등 이러한 사회 문제의 공통적 원인 요소로서의 윤리적 가치관의 문제가 심층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회학적인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공통 요인은 윤리적 가치관이다. 윤리적 가치관이 높았다면 이전 사회적 문제가 훨씬 적게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선진국에도 다 있지만, 우리보다 강도가 낮고 범위가 좁고 빈도가 낮다. 왜 우리나라는 유독 이것이 크게 나타나는가. 경영학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면, 우리나라는 여백의 미학이 있다. 단순함의 미학이다. 이것은 이어령 선생님의 관찰이다.


여백의 문화

여백의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동양화를 보면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농부가 소를 끌고 밭을 가는 모습, 농부와 산 사이에 반드시 하얀 여백이 있다. 그 여백이 거리를 뜻할 수 있고 보는 사람의 상상을 유도한다. 정의되지 않은 공간이다.

만화도 그렇다. 우리나라 정서가 담긴 고바우 만화의 경우를 보면, 선 몇 개, 머리카락이 코부라진 것과 꺾어진 것, 똑바른 것이 뜻이 다 다르다. 서양 만화는 자세하다.

법규도 우리나라 법은 포괄적이고 간단하다. 단서 조항을 붙인다. 미국 법은 복잡하고 두껍다. 계약서도 영미 계통의 계약서는 자세하고 촘촘하게 되어 있다. 학생 시절 미국 경험할 당시, 단칸방 계약에도 20페이지 정도 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천만원 짜리나 5억 짜리 전세계약이나 똑같이 한 장이다. 윗부분에 전세자 주소, 아랫 부분에는 중개업자 도장, 가운데 부분에 몇 항목의 계약 조건이 들어 있다. 분쟁이 나면 해석을 해야 한다.

교과서를 봐도 보통 200쪽 내외다. 미국은 보통 3-400페이지이며 글씨가 작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참고서가 나와 있다. 정책보고서도 큰 말만 있고 디테일한 내용은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여백의 문화다. 여백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의해 그 안에 뜻과 아름다움이 마음 속에 만들어진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유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의되지 않은 영역에서의 불확실성이 많다. 여백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화가 되었다.

여백이 많기 때문에,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자기 이익에 의해 결정한다. 동네나 길을 보면, 강남도 잘 정돈된 것 같지만, 뒷길에 운전해 들어가면 제대로 빠져나오기 어렵다. 정의되지 않은 공간이 있다. 어느 동네에 가나 편리하다. 미용실, 약국, 학원, 모든 것이 다 있다. 널려 있는 간판을 보면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규정이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고 많은 것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정의되지 않은 공간에서의 행동 윤리

이렇게 정의되지 않은 공간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는 이기적 행동이 어떻게 활동하는가? 자연스럽게 생존 논리가 작동하는 염치없는 사회, 이치와 도리를 벗어난 행동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가 된다.

앞에서 20여 개의 예들이 왜 그것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가? 정의되지 않은 영역이 많고, 이렇게 정의되지 않은 영역에서 이기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생존 논리, 정글의 법칙으로 뛰기 때문이다. 저절로 이런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사회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적 견제장치를 만들어놓았다. 이런 견제 장치 중의 하나가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는 가치관, 도덕관, 윤리관이다. 이런 것으로 정의되지 않은 부분을 관리해 왔다. 이런 가치관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상호 구속력을 만들어내며, 이 구속력에 대한 상호 인정이 가치관의 힘이다. 공중도덕, 부패에 대한 인식, 인권에 대한 인식, 정직에 대한 인식, 배려에 대한 인식 등 모든 것이 종합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행동지배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가치관이다.

전통적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 신의예지(信義禮智) 등의 가치관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해 왔다. 삼강은 군위신강, 부위부강, 부위자강, 오륜은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등이다. 또 신의예지인, 즉 신뢰, 의리, 예의, 지혜, 어짊을 강조하였다. 유교의 근본 원리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였다. 이런 가치 체계의 이치에 어긋나면 무리(無理)라고 한다. 도리에 어긋나면 비리(非理)다.

이런 가치 체계가 조선의 망국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나라를 구하지 못한 가치관, 서양 문명에 뒤떨어진 가치관, 예부터 내려온 삼강오륜은 경쟁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가치관으로 파괴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대신 들어와야 되는데, 서양의 가치관이 얘기되지만 체화되지 않은 채, 경쟁논리만 들어왔다. 일제 시대 식민지 체제에서 요구하는 법이 있었지만, 이 법은 안 지키는 것이 자랑이다. 해방 공간, 6.25 시기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상황이었으므로, 윤리적 가치관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즉 생존의 한계 상황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었다. 생존은 다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전제이고 본능이므로, 이치와 도리 요구는 무리인 시대를 살아왔다.

이 때 생성된 무리와 비리가 사회적 관행으로 우리 사회에 석화되어 있다. 그 후 정치적 변화, 안정,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절박성은 약화되었지만, 동물적 생존 논리, 출세, 돈, 명예 논리로 변형되었다. 본질에 있어서 생존 논리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동물적 본능이 지배하는 생존 논리를 윤리적 도덕이 지배하는 공생의 논리로 비약시키지 못하였다. 상생의 논리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상생 논리의 개발과 교육에의 접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효사상, 국민교육 헌장 등 정신 운동이 있었지만, 독재를 위한 상투적인 구호로 폄하되었다. 그 후 등장한 운동권에 있어서도 민주주의 정의감은 있었지만, 휴머니즘은 찾기 어려웠다.

여백의 문화는 ‘적당히’ 행동 양식을 가져왔다. ‘적당히’는 원래 알맞고 마땅한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적당히’는 대충, 우물쭈물, 건성으로 등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적당하게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면 도적적 해이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커진다. 적당한 비리가 숨어 들어온다.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 이기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한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어른들이 하는 것 보면서 이기적이 되어 간다. 학교에서는 윤리적인 것을 별로 못 배우면서 고3이 되면 완전히 자기 중심적인 배타적인 인격체로 석화된다. 가정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며,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절대권력자로 부상한다. 여기에 대해 아무도 반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3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원상 복구되어야 하는데, 대학가면 자유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기적 행동 패턴이 대학 가면서 완전히 굳어진다.

그렇게 해서 자란 청년, 장년이 지금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생존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나쁘다는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생존 논리에 따라도 이치나 도리를 어기면 나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나쁘다는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한다. 성경 로마서 4:15에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다’고 한 말씀이나 로마서 5:13에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나와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윤리적 도덕관,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는 인식을 못하고 산다.

선진국도 범죄, 비리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약하다. 우리와 다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윤리적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백의 문화는 고칠 수 없다. 이것은 유전인자 안에 거의 들어 있는 정서다. 따라서, 그 여백의 문화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관건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자유스런 여백에서 활동할 때 강력한, 건전한 윤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는 상당히 좋은 사회다. 창의적인 상상력이 작동한다.


도덕 교육의 문제점

우리가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를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리더십, 어떤 방향으로 젊은이들에게 그런 리더십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며칠 전에 교보문고에 가서 초등, 중고등 학교 도덕책을 보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도덕은 효도, 예의, 양보, 정직, 절제, 성실, 생명, 너그러움, 이웃, 우리 학교, 고장, 법 지키기 등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

중학교 1학년 도덕책은 삶의 의미와 도덕, 도덕의 필요성, 양심과 도덕, 자아의 발견과 시련, 훌륭한 인격, 인간다운 삶의 자세 등이며,

중학교 2학년의 제목은 현대 사회와 전통 도덕, 현대 사회와 시민 윤리, 민주적 생활태도, 민족 발달과 민족 문화의 창달이고,

중학교 3학년은 삶의 설계와 가치 추구, 인간의 삶과 가치 갈등, 도덕 문제와 도덕 판단, 진로 진학과 도덕 문제,

고등학교 교과서는 현대 사회의 도덕 문제와 환경 문제, 청소년 문제와 청소년 문화, 도덕 공동체의 구현과 공동선의 추구, 민족 분단과 남북의 현실 등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근사하다. 하지만, 두 가지 큰 결함을 발견했다.

첫째는 도덕을 인생의 핵심 가치로 가르치지 않고 교과의 한 과목으로 가르친다. 학문의 한 과제로. 시험 봐서 점수 잘 받으면 끝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마음에 담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이런 것이 있다, 답이 뭐야. 답을 맞추면 좋은 점수 받는 것으로 가르친다.

윤리적 도덕관은 어려서부터 무조건적인 가치관으로 몸에 체화되게 해야 한다. 윤리적 도덕관이 모든 것의 상위 조건이어야 하는데, 요즘 배우는 도덕은 그렇지 않고, 필요하면 하위 조건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것으로서 가르친다. 그저 교과의 한 과목이다.

둘째는 아직도 과거의 전통적인 도덕관의 테두리에 머물러 있다. 학교, 우리 가족, 우리 이웃 등 내가 속한 조직에서 끝난다. 그러니 배타적이 된다. 이웃, 우리 학교를 어떻게 챙겨야 하는가가 강하게 나와 있다. 우리 학교만 챙기면 다른 학교에는 덜 관심을 가진다.

적어도 21세기 개념들, 인정의 개념, 신뢰의 개념, 배려의 개념, 환경의 개념, 인종을 초월한 인격의 개념 등이 한 마디 없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배우는 것이 한정된 자기 조직, 연이 닿아 있는 커뮤니티의 이익이나 이해를 좇아가는 것까지만 배운다.


윤리적 가치관의 집중적 내면화

그래서 우리가 리더로서의 할 일은 우선 21세기 글로벌라이징화된 세계에 살아야 한다. 거기서 세계적 리더가 나오고 우리 사회가 안정돼야 하는 윤리적 가치관을 찾아야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쓴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가치관에 하나 넣고, 배려(care)도 필요하다. 후쿠야마는 한국, 이탈리아, 중국은 신뢰가 낮은 나라이며, 일본, 독일, 미국, 영국은 신뢰가 높은 사회라고 한다. 신뢰가 낮으므로 불확실성이 높고, 경제 경쟁력이 오래 견디지 못한다. 신뢰(trust)와 경제적 역량과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는 신뢰가 없으므로 경쟁력 있는 경제 성장을 못한다는 뜻이다.

독일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지만, 독일은 모두가 존경하고, 이태리 사람은 모두 좋아하지만, 이태리는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은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나라도 존경하지 않는 것 같다.

윤리적 가치관으로 만들어낸 것이 경영학적인 시각에서, 많으면 안 된다. 7개 정도나 10개 이하로 한다. 십계명은 10개이며, 삼강오륜은 8개다. 회사에도 5개 내외의 규칙이 있다. 이런 간단한 것을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내면화한다. 거기에 리더십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우리나라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ity)이 된다. 우리나라는 사회 자본이 엄청나게 취약한 상태다.

긴 이야기에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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