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금지
2004년,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 회사 앞에 세워진 한 표지판을, 한국의 관광객이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 곧 이 표지판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까지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좌절금지' 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이다.
이 표지판이 담고있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살다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라.' 시험에 떨어진 재수생, 사업에 실패한 사업가, 연인과 헤어져 슬픔에 겨워하고 있는 사람들... 좌절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좌절금지' 표지판은 '화이팅! 힘내자!' 라는 격려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하지만 '금지' 라니, 안그래도 어렵고 힘들어서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그나마 여유롭게 '좌절' 할 자유조차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압박스러운 빨간 동그라미에 사선하나 좍 그려진 표지판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목표를 향해 '좌절' 할 자유도 없이 매진해야 하는 서러운 현대인의 실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물론 시련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힘내자!' '화이팅!' 하는 말은 매우 힘이 되는 격려의 말이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리던 사람들이 겪는 좌절의 시기에 다시한번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러한 격려는 굳이 '금지' 라는 심하게 '몰아부치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궁극적으로 격려를 받는 대상의 목표 '달성' 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프리허그
외국의 누군가가 시작해서 인터넷 UCC동영상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되더니, '우리 나라에서 정서상 가능할까' 라는 우려를 떨쳐내고 소위 '개나소나' 피켓 하나 들고 '프리허그' 를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아주 '반짝' 선풍적이었다.
위의 '좌절금지' 가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간 편이라면 이 '프리허그' 는 대한민국에서는 일종의 '유행' 이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에서의 '허그' 와 우리나라에서의 '포옹' 은 인간간의 관계의 밀도에 있어서 조금은(어쩌면 조금 이상으로)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준수한 용모의 남자가 프리허그를 하면 '감동적이에염' '훈훈하군염' '아 나 언제언제 저기 있었는데 아쉽네요' 등의 댓글이 달리지만, "안여돼 오덕후(주1)" 로 분류되는 사람이 프리허그를 하고 있으면 "저거 어쩌다 미소녀 하나 건져서 안아보려는 수작이라는" "ㅉㅉㅉ" 등의 댓글이 달린다. 여기서 외모 지상주의를 들먹이기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허그' 가 가지는 일정 수준의 '성적 접촉' 인 요소가, 이 '프리허그' 를 단순한 유행, 또는 수작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세' 타는 거지같은 연쇄작용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위로' 로서 2006년 '프리허그' 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2004년의 '좌절금지' 가 가진 '격려' 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좌절금지' 가 '프리허그' 보다 더 좋다는 것이 아닌, 그 둘을 '성격이 다른 동일선상' 에서 보거나 혹은 '더 발전된' 위로의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좌절금지 vs 프리허그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좌절금지' 는 '화이팅' '힘내자' 류의 '격려','독려' 로서 궁극적으로 위로받는 자의 목표달성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일종의 '채찍질' 인 샘이다. 그러나 '프리허그' 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왜 좌절했니, 왜 힘드니, 지금 좌절하지 말고 힘내서 다시 일어서라" 따위의 무언의 압박도 없다. 위로 받는 사람이 힘든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심지어 힘든지 힘들지 않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서로가 "Hug"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냥 서로 마음이 '편안' 해지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이다.
지금은 무한경쟁시대다. 아니, 세삼스레 언제는 경쟁 안하고 살았던 시기가 있었겠냐만은, 인간은 항상 자기들이 겪고있는 지금 이 순간이 치열하기 때문에 어쨌든 지금은 유래없는 가장 치열한 경쟁시대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은 끊임 없이 무언가를 향해 다람쥐 챗바퀴 돌듯 달리고, 경쟁하고,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고,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당연히 지친다, 피곤하다. 이 상황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휴식이며 위로일까? "조금만 더 해! 지금 좌절하지마!" 하는 '좌절금지' 일까, 아니면 "뭐든간에 다 잊어버리고, 요즘말로 닥치고 포옹" 하는 '프리허그' 일까?
격려 [激勵]
[명사]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줌.
[명사]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명사]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편안 [便安][명사]편하고 걱정 없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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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안여돼 : 안경 여드름 돼지, 흔히 말하는 '오타쿠' 들의 필수 3요소. 비슷한 말로는 '안여멸' 이 있다. 안경 여드름 멸치. 뜻은 뭐..
오덕후 : '오타쿠' 를 국어식으로 약간 순화시키는 척 바꾼 말. 비슷한 예로 "빠순이->박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