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라. 그대는 왜 계속해서 문제를 만드는가? 진짜 문제가 있기는 한가? 아니면 내가 계속 문제를 만들어내고 이런 생활이 습관화된 것인가? 문제라도 없으면 고독하기 때문에 문제들을 친구처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은 문제라는 불행에 매달리면서, 문제가 없는 텅빈 자리로 들어가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대는 삶을 문제로 만드는가? 삶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왜 지금 삶을 살지 않는가? 울음도 삶의 몸짓이요 웃음도 삶의 몸짓이다. 때로 그대는 슬프다. 그것 역시 삶의 몸짓이다. 이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때로 행복에 겨워 춤을 춘다. 이 또한 아름답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그러면 삶에서 질문을 만들고 문제를 만들어 내는 습관이 떨어져나갈것이다.
그대가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을 때 삶은 그 신비의 문을 연다. 계속 질문만 하는 사람에게 삶은 신비의 문을 열지 않는다. 삶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대가 문제를 만들면, 문제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대의 눈을 가린다. 그리고 삶에 공격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이것이 과학적인 노력과 종교적인 노력의 차이다. 과학자는 공격적인 사람과 같다. 과학자는 삶에서 진리를 뽑아내려 한다. 빨리 진리를 밝히라고 삶을 강요한다. 총을 들고 말이다. 하지만 종교적인 사람은 삶 앞에서 총을 들고 질문 따위를 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사람은 삶과 더불어 이완하고 삶과 더불어 흘러간다. 삶은 그에게 많은 것들을 드러낸다. 과학자는 테이블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줍는 사람이다. 삶의 손님으로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다. 삶을 사는 사람,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 의문이 아니라 신뢰로 사는 사람이 곧 삶의 손님이다.
오쇼의 '인생의 승리자가 되라 - 인생 EGO'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