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했다.
단 두시간여만에.
3년을 몸담았던 학교에서
단 두시간만에 떨어져 나왔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렇게 허무하게.
내 품에 남겨진 것은
열명이 채 안되는 진짜 친구들과
마음에 깊이남은 단 한분의 선생님,
그리고 교정 곳곳에 열매로 자리잡은
나의 추억들이 전부였다.
작지만 의미있고,
눈에 띄지 않지만 소중한 일들이
가득 있었다.
우리는 꽃처럼 빛났고,
그 빛깔처럼 아름다웠었다.
가끔은 싸우고,
결국은 깨지고,
서로 상처주기에 급급하기도 했었지만.
꽃잎이 하나씩 떨어질때마다
우리는 성숙해졌고,
어른이 되어갔다.
길다고 생각했던 3년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은사이에
나에게 알리지도 않은채로
3년은 지나가 버렸다.
처음 1년은 관계에 급급하느라 잊었고,
다음 1년은 그 관계를 지켜내느라 잊었고,
마지막 1년은 인생의 첫 관문에 온 정신이 쏠려서 잊었다.
내게 고교시절은
오로지 달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쓰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떤 친구를 얻은 대신
또다른 친구를 잃어야 했다.
웃음으로 대처해도
얼굴에 침을 맞는다는것을 알아야했다.
그래도 웃는게 울거나 화내는것보다는 낫다는걸 알았다.
가끔 어른들은 엄청나게
속물이라는것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그 어른들처럼
속물기질이 보인다는것도 알았다.
가끔 어른들이 아기보다
더 순수할 수도 있다는것도 알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순수함이
있을거라고 짐작했다.
별 시덥잖은 소리에 울기도 헀고.
삶에 대해 미친듯이 고민했고.
웃기지도 않은 하찮은 일로 절망했다.
말도 안되는 일에 뒤집어지며 웃었고.
0.7점짜리 한문제때문에 기뻐했고.
친구와의 일상적인 만남덕에 즐거웠다.
2월 8일 12시 30분.
마지막 꽃잎이 떨어졌다.
모든것이 추억으로 멀어졌다.
다시는 발 딛을 수 없는
10대가 끝났다.
우리는 이제 교복과
소속을 벗어던지고
20대라는 미지의 세계에
홀로 발을 내딛을 것이다.
늘 누군가와 함께
울타리 안에서 살았던 우리에게는
어쩌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울타리 밖, 길이 없는 세상에도
우리는 결국 새로운 꽃을 틔우고
다시 그 꽃잎을 떨어뜨리며
살아갈 수 있을것이다.
가끔 떨어져버린 꽃의 자리가
허전하겠지만
늘 그렇듯이 꽃이 진 자리는
열매가 채울테니까.
탐스럽고 달콤한 향내가 나는 열매가.
그렇게 끝이 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
끝과 시작의 경계.
그 안에 내가 들어있다.
지난 몇달간
나는 뒤돌아서서 끝나버린
추억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젠 다시 제대로 앞을 보고
시작을 잡아야 한다.
두렵다고 고개를 돌릴수도,
힘들다고 물러설수도 없다.
정말로 나의 학창시절은
끝을 맺었고,
시작은 코앞이기에
마주하고 노려보는 수밖에 없다.
졸업을 기점으로
나는 시작을 향해 힘차게 돌아섰다.
추억이 정말 추억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럽고 서운하지만,
혼자서 막막한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렵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곧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시작했던
고교 3년을 즐겁게 마쳤고.
그 3년을 추억으로 여길만큼 자랐으니까.
나는 이미 무적이다.
수많은 시작을 받아들이고
나의 결과로 만들수 있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