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십이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것
1988년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쇠퇴를 예견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이 발표됐을 때 세계는 흔들렸다. 예일대 역사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미래학 석학(碩學) 폴 케네디(62).
그의 저서가 발표 됐을 때 미국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명실상부 최고 강대국이었다.
꺾일 줄 모르던 미국의 콧대를 향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는 갔다’는 거침없는
메시지를 던진 영국 출신의 학자.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쇠퇴를 역사적으로 고찰·분석해 당시
미국 정부와 관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국의 쇠퇴가 이미 1945년부터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강대국의 흥망’이 발표된 1988년은 미 대선(大選)이 있던 해. 저서가 발표된 후 조지 슐츠(George Schultz)
미 국무장관(당시)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폴 케네디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급히 아시아 6개국 순방에 오르기도 했다.
‘강대국의 흥망’에는 그의 모국(母國)인 대영(大英)제국의 쇠퇴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일생일대 연구가 깊이
있게 녹아있다. 그는 “한 국가의 부(富)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를 지켜내기 위해 그만큼의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부와 군사력. 이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면 ‘몰락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1993년 발표한 ‘21세기 준비(Preparing for the Twenty-first Century)’. 역사적인 과정을 고찰한
‘강대국의 흥망’에 비해 좀 더 미래 지향적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화두(話頭)인 인구·환경·생명공학 문제와
‘무역적자·재정적자’라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로 인한 딜레마, 금융 혁신 문제, 브릭스(BRICs)문제 등을
통찰력 있게 서술했다.
2006년. 4년간의 UN(국제연합)연구를 고스란히 녹인 ‘인류의 의회(The Parliament of Man)’란 책이
나오기까지 그는 10여 년 넘게 침묵을 지켰다.
간간이 연구 보고서, 신문 칼럼·강연을 통해서만 폴 케네디 사상(思想)의 편린(片鱗)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의 통찰력이 유감없이 녹아있는 저서가 나오기 까지 13년의 공백이 있었다.
거기엔 그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이유가 있었다.
1993~1996년 4년간의 UN 연구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음 저서를 준비하던 어느 날.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부인의 ‘췌장암(癌)선고’. “아내는 1년여의 투병 생활 끝에 결국 떠나갔어요. 그 후 몇 년 간은 찬찬히 앉아
깊이 생각에 잠긴 채 통찰력을 풀어내기가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국제 정세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유감없이 강력한 주장을 펼치던 그도 사랑하는 부인이 세상을 떠나간 뒤엔
한없이 나약해졌다고 회고했다.
‘인생의 흥망’을 경험한 그 역시 인간이었다.
2001년 재혼하면서 그는 다시 일어났다. 한없이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어 6년간 미뤄왔던 안식년 휴가도
썼다고 했다. 2006년 ‘인류의 의회’ 발간 후 현재 한꺼번에 두 권의 저서를 준비 중이다.
영국 북부 액센트가 간간이 배어 나오는 차분한 말투.
그에게는 ‘영국 노(老)신사’의 풍모, 향취가 그대로 묻어 나왔다.
케네디교수는 ‘2012 여수(麗水) 세계박람회 국제심포지엄’에서 ‘바다와 연안(沿岸)이 인류에게 주는 의미와
중요성’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 8일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 후 기조연설을 위해 곧바로 여수행에 올라야 하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재촉하는 일행에게 “버스 앞에 누워 있으라”는 농담을 던지며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풀어놨다.
석학 폴 케네디가 보는 한국의 현실과 세계 정치의 미래, 국가를 이끌어 갈 리더십은 무엇일까?
■“최근 저서는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강대국의 흥망’ ‘21세기의 준비’라는 대작을 내놓은 이후 10여 년 가까이 저술작업이 중단됐습니다.
작년에 나온 새 책(인류의 의회)은 국제문제 해결에서 UN의 역할을 강조했더군요.
힘을 통해 국제질서가 유지된다던 현실적 접근에서 이상주의적 어프로치로 넘어간듯한 느낌입니다.
“1993년 당시 UN 사무총장이던 부트로스 갈리가 제게 ‘UN의 미래에 관해 연구해 보지 않겠냐’고 제의하더군요.
그래서 4년간 포드재단에서 ‘유엔의 향후 50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의회가 큰 변화에 휩싸였던 시점이었고 클린턴 행정부의 영향력 역시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UN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국제 정치에 대해 극도로 현실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UN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제정세를 보는 또 다른 안목을 키웠습니다.
이상주의적 어프로치로 바뀐 것은 아니고….”
―UN 프로젝트가 박사님의 새 면모를 세계인들에게 알려주게 됐군요.
“책을 쓰게 됐다는 점에서는 그렇습니다. UN은 국제 영향력을 가진 거의 유일무이한 조직입니다.
당시 UN의 국지적인 면들에 대해 나온 저서들은 많았지만 국제 정치와 관련해 포괄적으로 UN에 대해
기술한 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UN에 관한 나의 총체적인 4년간의 연구를 아우를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박사님에게는 잊힌 10여 년이 있었습니다. 첫 부인과의 사별과 관련이 있나요?
“(눈시울이 붉어지며)청천벽력이었어요. UN 관련 책을 쓰려 할 때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다른 일은 놓은 채 하루하루 아내 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년의 투병 생활 끝에 결국 아내는 세상을 떠났어요. 세 아들과 저를 남겨 둔 채….
그 이후 찬찬히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 해서 책을 집필하기가 불가능해졌어요.
아내를 떠나 보낸 마당에 거대 사상을 떠올리는 게 심리적으로 어려웠단 뜻입니다.”
―재혼과 최근의 왕성한 활동이 관련이 있습니까?
“첫 아내를 보낸 지 몇 년 후 한 미국 여성과 마주쳤습니다.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주 똑똑하고, 나와 잘 맞는 친구였어요.
처음엔 강아지들끼리 먼저 친해졌습니다. 강아지 산책이 인연이 됐지요. (웃음)
어쨌든 2001년 결혼을 하고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저서를 완성할 수 있으셨군요.
“아내를 떠나 보내는 와중에 놓아버린 일이니만큼 이 책이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2002년 가을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연구원으로 안식년을 보냈을 때 앞부분 세 장(章)을,
2005년 봄 두 번 째 안식 휴가를 보내며 나머지 다섯 장을 썼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번역 출간이 안된 것 같습니다.
“현재 영국, 미국에서 출간됐어요. 일본·이탈리아에서는 발간 예정이고….
이 책에는 국제 연합 사무국에서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며 발굴한 내용들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셨군요?
“그럼요. 현재 책 두권을 한꺼번에 쓰고 있어요.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책과 흔히 제국주의를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작가 키플링(Kipling)에
대한 것입니다.”
―박사님에게 가족은 어떠한 존재인가요?
“나는 아일랜드계 이민가정 출신입니다. 아일랜드 이민계들에겐 가족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희 부모님은 각 여섯 형제·남매가 있습니다.
저에게 사촌들만 36명에 달합니다.”
폴 케네디는 깔끔한 '영국 노신사'였다. 이른 아침,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차분한 말투로 인터뷰를 풀어갔다.
■“이라크와 전쟁 중인 美, 키플링 전쟁 詩 논쟁 있을 것”
―키플링에 대한 저서는 좀 의외인데요?
“키플링은 1900~1910년 사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작가입니다.
특히 영미 문화권에서 유명한 작가죠. 시·칼럼·에세이·소설, 심지어 동화까지 썼어요.
7000여 편의 문학 작품에 자신의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죠.”
―특별히 키플링이 흥미로운 이유는?
“키플링은 하루에 3개 이상의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 들었어요.
1900년대 초반의 어느 조용한 아침 키플링은 타임(Time)지(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아요.
당시 영국군은 남아프리카 대전에서 패했을 때였고,
이에 대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시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었어요.
키플링의 시는 늘 활력이 넘치는 운율로 유명했습니다.
11시30분쯤 그는 시를 바로 타이핑했고 우편으로 타임지에 보내게 돼요.
그리고 역사상 길이 남을 서사시 중 하나로 남게 되죠. 점심을 먹은 후에 그는 바로 동화를 씁니다.
‘왜냐고 묻는 딸을 위해 쓴 키플링의 바로 그 이야기들’
(국내 번역서 제목·원제는 Just so stories for little children)이라는 동화예요.
동화의 모티브는 다음과 같습니다. ‘코끼리는 왜 코가 길까?’ ‘낙타는 왜 혹을 등에 달고 다닐까?’
‘얼룩말엔 왜 줄이 가있을까?’ 등 아이들의 소소한 호기심을 매우 낭만적인 말들로 풀어냈죠.
이 책은 발간과 함께 100만부 이상 판매됐고, 5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소위 ‘멀티플레이어’ 군요.
“(웃음)그는 월트 디즈니 만화에도 등장하고, 정치시인으로,
1차 세계 대전 때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동화작가·에세이 작가로 활동합니다.
마치 오늘날 다시 화두가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 인간을 보는 것 같죠.
현재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에요. 미국의 신제국주의가 화두가 되면서
키플링의 전쟁 시에 관한 논쟁이 다시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끝까지 바다로 눈을 돌려야”
―한국을 ‘강대국들 사이에 낀 개미’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만….
좀 심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전 인터뷰들에서 제가 말한 부분이 제대로 번역이 안 된 것 같아요.
나는 ‘한국이 개미다’라는 비유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한국과 매우 정치·경제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네덜란드에 비유한 적은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네덜란드와 비슷한가요?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독일·영국 등 유럽 최강국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강대국 의사에 따라 생존의 기로(岐路)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네덜란드는 이 때마다 적절한 외교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한국은 반도(半島)국가 입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 끼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 세계에는 세가지 종류의 국가가 있어요. 스위스·카자흐스탄과 같은 대륙의 (내륙)국가,
영국·일본 같은 해국(海國), 마지막으로 내륙으로 다른 나라와 국경을 접하면서
동시에 해안선을 가지는 나라가 있죠. 이것이 바로 내가 한국을 네덜란드에 비유한 이유입니다.
네덜란드는 한국에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네덜란드를 배우자는 소리는 높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참고해야 할까요?
“개방성, 국제화라고나 할까. 네덜란드는 처음에는 수산(水産)강국이었어요.
하지만 곧 한계를 느끼고 목재와 밀·와인 등을 수출하는 무역국가로 발전했어요.
그리고 전세계 바다로 나갔어요. 동인도제도·서인도제도·필리핀까지…. 여기가 끝이 아니에요.
다시 금융 강국과 조선업에서 큰 돈을 법니다.
결국 식민지보다 강력한 해군과 조선업을 기반으로 탄탄한 무역거래를 가능하게 한
해양주식회사가 된 것이지요.”
―한국은 거꾸로 최근 중국·북한 등 대륙 쪽으로 기우는 듯 합니다.
“한국의 현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북한에 정신 나간 정권(crazy regime)이
버티고 있어요. 중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졌고…. 하지만 한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 중
하나입니다. 조선업은 세계 1위에 세계 8~9위의 함선 보유국이죠.
한국은 바다를 버리면 안됩니다.”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와 관련한 갈등이 있습니다.
“일본은 해양 세력의 변화에 따라 출렁거린 역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의 소중함을 잘 알아요.
해양오염과 기후 변화 문제에 관해서 지속적인 연구 작업을 하고 있고. 한국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 국제협상들에서 의도적으로 앞서가는 역할을 해야 하고, 해저탐사나 자원발굴 작업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바다는 미래경제의 최대 성장 동력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바다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의 토대를 미리 다져놔야 하겠죠?”
■“차베스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읽어야”
―국가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오랫동안 연구하셨습니다. 한국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나요?
“내가 주로 연구한 것은 ‘강대국들(great powers)’의 흥망이었지요. 중(中)규모 국가들의
사이클은 깊이 연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오래된 정신·문화 유산과 유서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국가들은 흥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부활의 최대 견인 파워는 무엇일까요?
“교육이에요. 오래된 정신, 문화 자체가 교육받은 민족을 뜻합니다.
한국은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현명한 경제 전략을 통해 ‘상승(rise) 사이클’을 탔어요.”
―흥망의 사이클에서 다시 부활(復活)한 국가가 있나요?
“스페인은 16~17세기 세계 최강국이었어요. 하지만 1700년대 영국·프랑스군에 차례로 패하면서
쇠퇴(deteriorate)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심지어 신생국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패하면서 계속해 나락으로 떨어졌죠.”
―부활의 사이클을 구체적으로 들어보시죠?
“20세기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면서 스페인은 겉으로 보기엔 소생(revive)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한 인공적인 부활(artificial revival)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다시 꽃을 피우고 산업 구조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됐지요.
종합적으로 융성해 지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날 바르셀로나를 가든 마드리드를 가든,
스페인 사람들은 자신감에 차 있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예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아일랜드를 보세요. 한 세기 전만 해도 아일랜드는 가난한 소작농(poor peasant)의 땅이었어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미국·호주 등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이민국가였고, 서유럽의 최빈국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다시
뿌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나는 ‘강대국의 흥망’에 애덤 스미스 ‘국부론’의 한 구절을 인용했어요.
‘국가를 빈곤과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안정적인 정부(stable government), 예측 가능한 법들(predictable laws),
그리고 공평한 조세(absence of unfair taxation), 이 세 가지만 지켜지면 됩니다.”
―세 조건이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나라가 있나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엔 안정적인 정부가 있고, 상식적인 법이 있고, 조세제도도 공평합니다.
유럽의 많은 부자들이 스위스로 몰려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이 세가지를 갖췄기 때문에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국민들이 높은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모든 것에는 정반대가 있다는 점입니다.
“끔찍한 빈곤 상태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세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차베스는 예측하기 힘들고, 불안정하며 독재 정치를 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몰아내고 있지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차베스가 국부론을 읽지 않은 것만은
정말 분명해요.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그 어느 하나의 조건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니까요.
차베스는 분명 베네수엘라를 파멸의 길로 몰아 갈 것입니다.”
―하지만 차베스의 경우 ‘남미의 영웅’으로 불릴 만큼 남미 전역에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요?
“포퓰리즘 정치라는 게 그런 것입니다. 남미 국가들의 경우 부(富)를 소수가 독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웃 국가 브라질에선 5%의 인구가 95%의 땅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지난 28년간 극도의 불평등 상태가 지속돼 왔습니다.
빈곤층의 분노(resentment)가 대단하지요. 따라서 그가 외치는 구호들이 달콤하게 들릴 수 있겠죠.”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차베스는 노동자층을 등에 업은 인기 많은 리더일 수는 있지만 바보 같은(stupid) 정치인입니다.
체코의 하벨 대통령이나 폴란드의 바웬사 대통령은 인기 있는 리더인 동시에 현명한 정치인이기도 했죠.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리더가 필수적입니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고 계신가요?
“차베스는 노동자 계층이나 극빈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지만,
남미 지역 정부들과 기업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강연을 위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미 뉴욕에서 열린 UN 총회에서 극도로 선동적인(demagogue)
연설을 했습니다.
미국은 악(惡)의 제국이며, 입에서는 악마의 냄새가 난다는 요지의 연설이었죠.”
―당시 브라질·아르헨티나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지지자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시 내가 만난 남미의 기업가들의 반응은 ‘맙소사(oh my god)!’였어요.
중도국으로 돌아서고 있는 브라질·코스타리카·칠레·과테말라 등지 기업인들은
차베스의 발언으로 인해 남미 지역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러니 경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도자의 생각 없는 행동 때문에 남미 국가와
남미 기업의 이미지를 흐리게 했지요.”
■“트루먼은 투박했지만 모두를 감동시킨 리더”
―다른 인터뷰에서 트루먼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셨더군요.
“1949년 4월 루스벨트 대통령의 타개 후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부유한 국가의 수장직(職)을 물려받게(inherited) 됩니다.
그의 고향 미주리(Missouri)주(州)는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동네’였죠.
그는 루스벨트 정권의 중심부 인물(central player)도 아니었어요.
부통령이었음에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속내와 정권 실세들의 거대한 비밀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했죠. 실세가 아닌 인물이 큰일을 했으니, 그 리더십을 인정할 밖에요.”
―어려운 여건이었을텐데, 그를 훌륭하게 만든 원동력은 뭔가요?
“그는 세계사에 여러 획을 그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통해 UN이라는 세계 최고 국제기구를 탄생시켰고,
냉전 시대 서방 진영의 방향을 정하는 리더가 돼 트루먼 독트린을 탄생시켰습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마셜이 바로 그 유명한 ‘마셜 플랜’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서독을 보루로 서방 세계를 수호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했어요.
6·25 휴전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처럼 세련된 지도자는 아니었어요.
모두를 감동시킬 줄 아는 뚝심있는 부지런한 리더였습니다.”
■“부시 정권은 비전이 없다”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지만, 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시 정권은 국제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고, 스스로도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부시 정권의 정책은 비생산적이며 미국 경제의 미래에 해가 되고(harmful) 있어요.
현재 부시 대통령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의 세계 리더’에게 도전하는 위협 요인들은 너무도 많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이 있을까요?
“일단 정신 나간(crazy) 북한정권이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고,
이란·레바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 정권 비슷한 정권이 고개를 들고 있고,
이라크와 아프리카의 끊임없는 내전과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불씨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았고, 아까 말했듯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역시 국내·국제적으로 끊임없는 선동 정치를 펴고 있습니다.
러시아 푸틴은 천연가스로 유럽을 볼모로 잡아 넣는 등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중국의 리더십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트루먼과 부시의 리더십을 비교한다면?
“트루먼 정권처럼 부시 정권엔 비전과 분명한 특징이 없어요. 특히 민감한(delicate)
문제들을 다루면서 둘 사이의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제투명지수가 훌륭한 투자처 선정의 나침반”
―얼마 전 존 나이스비트가 한국에 왔을 때
신문에 미래 예측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하더군요.
세계 정세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정보를 주로 어떻게 얻으시나요?
“지난 11월 아르헨티나 방문 때를 예로 들죠.
아르헨티나에 가기 전 나는 일단 파이낸셜타임스·이코노미스트·월스트리트저널의
아르헨티나 기사들을 모두 읽습니다. 1차 정보는 정보의 경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분류된 신문을 이용한 것이죠. 그 다음은 세계은행의 웹사이트를 이용해요.
세계 각국의 최근 6개월 경제 지표 데이터들이 있어요.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경제연구소(EIU)에서 발표하는 보고서들과 순위 역시 참조해요.
그리고 구글! 구글에서 아르헨티나와 관련한 크고 작은 모든 뉴스들을 검색해요.
이쯤 되면 책상 위엔 프린트된 읽을거리들이 한 뭉텅이로 쌓이죠.”(웃음)
―또 다른 것들은 없나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러 지수들, 순위들도 참고합니다. 1인당 GDP는 기본이고,
UNDP(UN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도 참고하죠.
여기엔 국가의 교육 수준과 평균 수명이 포함돼요. 또 스위스 WEF(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순위 역시 매우 유용합니다.”
―새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나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CPI(부패지수)가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효율적인 경영환경에서 투자를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겠죠.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의 WFI(World Freedom Index)도 있습니다.
이 지수들은 한 국가가 제공하는 경제적인 기회들과 투자처를 모색하는 데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높은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부패지수가 급격히 안 좋게
나온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는 세계를 한두 가지 비유를 통해 촌철살인(寸鐵殺人)식으로 설명하는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실타래같이 얽힌 강대국들의 관계 역시 그의 비유를 통하면 쉽게 풀리는 일종의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의 비유는 빛을 발휘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늘 이런 미국 속담이 적힌 쪽지를 놓아 두었다고 해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벅(buck)’과 발음이 비슷한 퍽(puck)은 아이스하키에서 쓰는 공을 말하죠.
아이스하키 게임을 보면 퍽을 잡자마자 정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기 급급하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예요.
당시 유럽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던 표현이 ‘책임을 회피하라(pass the buck)’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트루먼은 달랐습니다.
그는 모든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렸으며 책임을 질 줄도 알았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그런 겁니다.”
“한국에 간단한 ‘처방’ 하나 내려볼까요?
서양의 의사들이 남발하는 처방 중에 ‘해가 되는 행위는 삼갈 것(Do no damage)’
이라는 게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환자들이 때로는 코 웃음을 치기도 하죠.
애덤 스미스 역시 각 국가의 정부에 이 당연한 말을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中)규모 국가들의 경우 최대한 이 말을 잘 새겨 둬야 합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최대로 ‘매력적’으로 변모시켜야 하니까요.”
“동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코끼리들이 땅을 터벅터벅 걸을 때 개미들은 혼비백산한다’.
이 속담의 핵심은 코끼리들이 ‘언제’ 땅을 터벅터벅 걷기 시작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즉 중국·일본·미국 등 세계 초강대국들로 둘러 싸여 있는 한국의 경우
이 국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를 예민하게 포착해야 합니다.
관심의 레이더가 강대국들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좇아야 하겠죠.”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1988)
“가장 중요한 사회 발전의 한 가지는 제3 세계 국가들 중 한국·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이른바 ‘무역국가’들이 속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공산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일본·서독·스위스를 모방했다.”
“1945년 이후 일본의 경제적 변모야말로 지속적인 근대화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다.
일본은 통상 및 기술 분야의 경쟁국이었던 기존의 거의 모든 ‘선진국’들을 능가했고,
아시아의 다른 무역국가들에게 모방해야 할 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영국은 ‘영국병(English disease)’에 걸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호전적인 노동조합,
빈약한 경영관리, 정부의 ‘스톱 고(stop-go)’ 정책,
그리고 근면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부정적인 문화적 태도 등이 그것이다.”
“중국은 ‘강대국’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인 데다 전략적 여건도 가장 좋지 않다.
그러나 중국은 물질적 압박이 크지만 이를 경제성장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노력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강대국의 대전략’(Grand Strategies in War and Peace, 1990)
“전시(戰時)나 평화시를 막론하고 한 국가의 위치(승리)를 높이기 위한
외교의 궁극적 역할은 연합국 결성, 중립국의 지원확보, 적대국가들의 감소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국민의 사기와 정치문화는 전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전쟁의 책임과 그 목표(또는 평화시의 막대한 방위비용 부담)를 기꺼이 수행하려는
국민의 의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실패 원인이 막대한 자원과 군사력의 개입에도 불구,
국민의 전체적 호응이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 전쟁의 목적은 최선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
자기가 원하는 평화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전쟁 수행의 기본 과제다.”
‘21세기 준비’(Preparing for the Twenty-first Century, 1993)
“농업부문이 각각 전체 노동인력의 약 3분의 2, 5분의 4를 고용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이
지금처럼 기술변화의 속도가 빠른 때에 과연 변화를 감당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프랑스·한국 농민들 사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격렬한 불만이 터질 것이다.”
“1960년대에 1인당 GNP 규모가 가나(Ghana)와 똑같았던(230달러) 한국이
오늘날 10~12배나 더 잘살게 된 사실 이상으로 개발도상국들 간에 생겨나고 있는
격차의 확대 경향을 훌륭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중국의 수억대 냉장고가 일제히 프레온가스(CFC)를 대기 중에 배출할 경우
지구를 덮고 있는 오존층 훼손은 엄청날 것이다. ‘중국의 공업화 야망은 지구행성에 위협을 제기한다.’
인도의 공업화 야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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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경제부장 jh-park@chosun.com
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