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IT 랭킹이다~
ITU에서의 2004 IT 랭킹
(global index to rank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평가요소-affordability of access(접속비용),level of IT skilled education(IT 분야 인력 교육도), quality of service(서비스의 품질),infrastructure(인프라),level of internet use(인터넷 사용 수준), efficiency of technology(기술의 효율도),decent technology(기술 성숙도), advancement of technology(기술의 진보도)
ITU 2004 WORLD RANKING
1위)Korea, South 0.91
2위)Sweden 0.87
3위) Denmark 0.86
4위) U.S.A 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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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15위)Japan 0.75 -..기술도 나쁘고, 서비스도 나쁘고, 인프라도 나쁜 IT후진국..
우리 나라가 절대적으로 1등한 세계 무대제품만 모은거다~
1. D램
98년 이후 D램 생산 세계 1위
□ 한국의 D램 세계 시장점유율은 93년 23.9%에서 2000년 38%로 급상승
- 98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
·일본의 시장점유율은 90년대초 60%대에서 2000년 23%로 급락
·D램 성공에 힘입어 한국은 2000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7.7%를 점유(세계 3위)
□ D램 업계 순위에서 한국업체가 선두권에 포진
- 삼성전자가 92년 이후 계속 정상을 지키고 있고(2000년 21% 점유), 하이닉스는 2위 자리를 놓고 마이크론과 경쟁
□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력을 보유
- 92년 64M D램에서 미, 일 등 선진국을 추월한 이래, 차세대 제품을 선행개발하는 등 기술품질에서 우위
- 삼성전자는 0.1㎛ 이하 초미세 공정을 개발하기 위한 일본의 아스카 및 미라이 프로젝트에 참여
도전정신과 과감한 투자가 성공 요인
□ 국내 여건에 맞는 메모리 제품을 전략적으로 선택
- D램에 진입하면서 성장성이 기대되고, 후발국도 공정기술만 확보하면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 적중
·당시 첨단 반도체 중 일본이 미국을 능가하고 있던 유일한 제품
·원천기술 못지 않게 응용기술과 숙련인력이 큰 비중을 차지
- D램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투자회수기간이 짧기 때문에 리스크는 높지만 성공시 수익률도 높은 분야
□ 후발자 이익을 극대화했으며 과감하고 시의적절한 투자로 선두를 차지
- 미일의 앞선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소화하였고, 일본이 반덤핑 규제로 대미수출에 제동이 걸렸던 87년 전후의 상황을 적절히 활용
·기술의 원천지인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국인 고급두뇌들을 스카웃
- 87년, 90년 반도체 불황시 대규모 선행투자를 실시하여 흑자전환과 선두권 도약에 성공
□ CEO의 집념과 도전정신이 없었더라면 성공하기가 어려웠음
- CEO의 진두 지휘로 전망이 불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투자(일본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투자 타이밍을 놓침)
·CEO가 발빠르게 결단을 내려 실천에 옮겼고, 대기업체제 내부에 축적된 경영자원들을 집중 투입
□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등락 폭이 커지면서 사업 리스크가 확대
- 64M 현물시장 가격이 2000년 2월 5달러에서 7월에 9달러까지 상승했다가 최근 1달러 수준으로 급락
·국내 반도체 수출은 작년 38% 성장에서 올해 30% 이상 감소 예상
-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기대난
·불규칙한 경기주기, 경기회복 기간의 단축, 수요기기의 성장세 둔화 등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
·반도체업체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수준의 가격 형성기간 단축
2. TFT LCD
90년대 후반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급부상
□ 삼성과 LG가 1995년 TFT LCD 양산을 개시한 이후 현재 세계 1, 2위로 도약
- 삼성전자는 98년 이후 1위, LG필립스LCD는 99년부터 2위를 고수
- 국내업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6년 9%에서 2000년 36%로 급신장
□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PDP에서도 일본업체들을 바짝 추격
- 2001년 들어 LG전자와 삼성 SDI가 잇달아 양산라인을 가동
·삼성 SDI는 지난 4월 세계 최대인 63인치 PDP패널 개발에 성공
과감한 투자로 선발 일본업체를 추월
□ 대규모 적자를 감수한 적극적 투자로 세계시장을 선점
- 반도체 최대 호황기였던 1994∼95년에 TFT LCD를 전략품목으로 선택하고 여유자원을 투입
·기 보유한 반도체 공정기술을 접목하여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에 성공
- 일본업체들이 12.1인치를 주력으로 하고 있을 때 13.3인치 이상 대화면 제품에 도전
- 초기부터 일류업체를 납품처로 잡고 최고 브랜드를 지향
□ 핵심부품의 국산화와 대만업체의 추격에 따른 대응이 향후 과제
-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30%, 장비 국산화율은 20% 수준
- 대만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999년 2%에서 2001년 23%로 급상승
3. CDMA 단말기
세계 최초로 상업화하여 현재 표준을 주도
□ CDMA 단말기는 우리나라가 9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현재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
- CDMA 기술을 처음으로 상용화하여 종주국의 지위를 확보
·CDMA 방식은 2000년말 현재 전세계 47개국 130개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GSM과 함께 이동통신 양대 표준으로 성장
- 2000년 세계 CDMA 단말기 생산의 53.7%를 차지
- 국산 단말기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0%를 밑돌았으나, 2000년 말에는 95%에 육박
정부기업이 협력하여 無에서 CDMA 시장을 개척
□ CDMA 단말기의 개발로 이동통신 기술에서 일약 세계 수준으로 도약
- CDMA는 90년대 초만 해도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기술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은 직원 5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으로서, 한국이 상용화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성장이 불가능
- CDMA 시장은 2000년에 290억 달러(단말기와 시스템 포함)로 성장
·이 과정에서 퀄컴은 단말기용 모뎀칩 생산과 로열티 수입에 힘입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
- 정부의 강력한 지원, 국책연구소인 ETRI와 기업체 연구소의 공동 연구개발이 만들어낸 합작품
·기술의 불확실성이 컸던 관계로 정부의 개발정책은 상당한 모험
·내수시장에서 단말기 업체들이 품질 우위를 놓고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
□ 단말기의 원천기술과 핵심부품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한계
- 국내업체들은 단말기 가격의 5.25~5.75%의 로열티를 퀄컴에게 지급
·상용화 이후 국내업체가 퀄컴에게 지급한 로열티는 1조원을 상회
- 모뎀칩, 전력 모듈 등 고가의 핵심부품을 전량 해외에 의존
4. 셋톱박스(STB Set Top Box)
유럽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 점유율 1위
□ 한국은 셋톱박스의 전세계 open market에서 1위를 차지
- 개방시장(open market)은 소비자가 구매하는 시장으로, CATV업체 등이 가입자에게 기기를 임대하는 폐쇄시장(closed market)과 구분
- 한국은 필립스, 노키아 등을 제치고 open market에서 50% 이상을 점유
-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
·CAS(수신제한장치)가 장착된 위성방송 셋톱박스를 10여종 이상 출시
□ 특히 고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 강세
- 디지털 셋톱박스가 성장세에서 아날로그 방식을 압도
·시장성장률(97~02년) 디지털(16.0%), 아날로그(-20.6%)
- 96년 개발에 성공한 이후 4년만에 세계 디지털 셋톱박스 생산의 11%를 차지
·유럽지역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은 휴맥스 등 한국업체가 주도
정확한 시장예측과 조기 기술 확보가 성공의 원천
□ 셋톱박스 성공의 핵심은 사전에 시장을 예측하여 기술을 미리 확보한 결과
- 디지털 방송에 따른 디지털 셋톱박스의 시장확대 가능성을 앞서 예측
- 해당 지역의 디지털 방송 표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최초로 상용화
·유럽 표준규격인 DVB(Digital Video Broadcasting)를 채택한 셋톱박스를 아시아에서 처음 개발
- 80년대부터 축적한 아날로그 위성방송 수신기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TV내장형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 모듈을 가장 앞서 개발
《 셋톱박스 시장의 총아, 휴맥스 》
□ 생산되는 전량제품을「휴맥스」고유브랜드로 유럽과 중동에 수출
- 코스닥 벤처중 처음으로 2000년 단일품목으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
□ 디지털 셋톱박스 제품으로 매년 2배 이상의 매출 신장을 계속
- 140억원(97년) → 280억원(98년) → 540억원(99년) → 1,425억원(2000년) → 2500억원 이상 예상(2001년)
□ 세계 셋톱박스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의 진입은 아직 초기 단계
- 일반 소비자가 아닌 대형 방송사업자를 고객으로 확보할 필요
·미국은 방송사업자가 사전에 복수의 셋톱박스 업체를 선정하고 공급을 받는 형태인 closed market이 주류
- 미국 멀티미디어 케이블 네트워크 서비스(MCNS)의 표준규격에 부합하는 셋톱박스 개발이 시급
5.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도입 3년만에 보급률에서 세계 최고 수준 도달
□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
- 1998년 7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처음 도입되어 3년이 지난 현재 이용자수가 625만명에 도달(2001년 6월말 기준)
- 2000년말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9.2%로 세계 1위
·특히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 비대칭디지털가입자망)은 우리나라가 종주국
- 국내 초고속통신 인프라와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각국의 관계자들이 대거 방한할 정도
·2001년 7월 일본 국회의원들이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들을 방문하고 사업현황과 시설 등을 견학
▷ 일본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현재 100만명으로 보급률이 2%에 불과
▷ 최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의욕적인 초고속 인터넷 보급계획을 피력했고 소니 회장도 초고속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
□ 국내 초고속 인터넷 장비와 서비스의 수출도 빠르게 신장
- 국내 하드웨어 업체들은 ADSL 관련 장비와 기술을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수출
- 한국통신 등 사업자들도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통신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서 현지시장을 공략
IT 열기와 기업간 경쟁이 보급 확대의 요인
□ 90년대말 불어닥친 IT열기와 업계의 공격적 대응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확산을 촉발
- 1998년 시작된 인터넷 붐, 데이터통신의 수요 급증에 따라 전송속도가 문제로 부각되었으며, 초고속 인터넷이 그 대안으로 각광을 받음
·현재 25,000개인 PC방이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크게 기여
- 아파트 거주인구가 많은 관계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가입자망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
·아파트LAN 방식이 초고속 인터넷의 13%를 차지하는 것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
- 하나로, 한국통신, 두루넷 등 다수의 사업자가 인구밀집지역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한국통신(메가패스), 하나로통신(하나포스), 두루넷(멀티플러스) 등이 브랜드 인지도를 놓고서 경합
□ 세계 최고의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일부 문제점들이 노정
- 중대형 라우터 등 초고속 인터넷 전송장비의 국산화율이 낮음
- 인터넷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 기업경영 효율화, 지식창출 등에 활용되기 보다는 게임, 성인사이트 등 감각적인 용도에 주로 이용됨
- 과당경쟁과 중복투자로 사업자들이 심각한 적자 상태
6. LNG선
전세계 발주물량의 64%를 점유
□ 2001년 7월 현재 전세계에서 건조 중인 75척의 LNG선 가운데 한국이 64%인 48척을 차지
- 특히 대우조선은 33척(옵션 11척 포함)을 확보(세계 1위)
□ 일본, 유럽 등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월등
- 선발 경쟁국보다 우수한 품질의 기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고, 또한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음
- 선가 하락으로 선발 경쟁업체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국내 업계는 월등한 가격경쟁력으로 수년 치 물량을 확보
·LNG선가 2억 3천만달러(97년) → 1억 7천만달러(2001년)
정부의 육성책과 업계의 발빠른 대응이 주효
□ 정부가 LNG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채택하고 국내 업계에 LNG선 건조를 의뢰함으로써 시장참여가 본격화
- 국내 조선업계가 해운업계와 연계하여 건조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회를 부여
·현대중공업은 92년 현대상선으로부터 처음 수주
·삼성중공업은 96년, 대우조선은 97년에 각각 SK해운의 물량을 확보
- 99년 현대중공업은 국내업계 최초로 해외 선주로부터 LNG선을 수주
□ 업계가 LNG선에 조기에 과감하게 투자했던 것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요인
- 현대중공업은 82년 노르웨이 모스 로젠버그(Moss Rosenberg)사와 모스型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
- 삼성과 대우는 90년 프랑스 GTT사로부터 멤브레인型 기술을 도입하여 시장에 참여
7. 냉연강판
국산 냉연강판의 원가경쟁력은 세계 톱 수준
□ 한국 냉연강판의 2000년 생산량은 627만톤으로 세계 4위
- 2000년 냉연강판 수출은 18억 달러로 철강 수출의 23.7% 차지
- 한국이 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2%로 미국(19.8%), 중국 (13.1%), 일본(10.4%)에 이어 4위(1999년 기준)
□ 냉연강판 원가에서 한국은 경쟁국인 미국, 일본, EU보다 훨씬 낮음
- 국산 냉연강판의 원가는 톤당 350달러로 경쟁국들보다 최대 130달러 낮음
□ 지속적인 생산능력 증강과 설비합리화가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 IMF사태 이후에도 포철, 현대, 동부 등이 꾸준히 생산능력을 증강
·포철 180만톤(1997), 현대 180만톤(1999), 동부 130만톤(2001) 등
- 동부, 연합 등은 설비합리화를 통해 원가를 상당 폭 절감
□ 국내시장 협소로 인한 공급과잉 해소, 포철-현대간 분쟁 해결이 시급
- 생산능력이 1,400만 톤을 넘어 국내 수요인 7백만 톤을 크게 초과
- 자동차용 냉연강판 생산에 필요한 열연강판 공급을 둘러싸고 포철과 현대간 분쟁이 장기화
8. 폴리에스터 섬유
폴리에스터가 90년대 섬유 수출을 견인
□ 폴리에스터가 90년대까지 섬유 수출을 견인했으나, 최근 경쟁국 부상, 원가경쟁력 약화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
- 섬유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초 20% 이상이었으나 2001년 상반기 10.3%로 급감
- 90년대 의류 수출이 경쟁국에 밀려서 계속 감소했는데, 폴리에스터를 중심으로 한 직물이 섬유 수출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
- 국내 폴리에스터 생산은 중국, 대만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수출은 12억 5천만 달러로 세계 1위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으로 대만(30%)보다 우위
□ 섬유(의류, 직물, 혼방사 등), 석유화학(화섬원료) 등 연관산업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 폴리에스터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 직물 수출이 급증하면서 그 소재인 폴리에스터의 수요가 크게 확대
- TPA 등 화섬원료가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었음
·한국은 세계 최대의 TPA 생산국
□ 중국시장의 급신장이 국내 폴리에스터 산업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
- 중국은 세계 최대의 폴리에스터 생산국이지만 국내 수요가 워낙 커서, 자국 생산량만으로는 수요 충당에 어려움
□ 그동안 양적 성장에 치중하여 설비를 경쟁적으로 증설한 결과 공급과잉, 가격 교섭력 약화 등을 초래
- 90년대 후반 공급과잉, 국제가격의 약세가 두드러졌음
·한국을 비롯한 중국, 대만, 동남아 국가들이 모두 설비를 증강
- 구조조정을 통한 업계 재편이 진행 중이나 노사갈등이 걸림돌로 작용
·만성적인 적자로 고전하던 SK와 삼양사가 화섬부문을 통합한 이후(회사명 휴비스) 최근 흑자로 전환
- 연구개발로 차별화된 고부가 소재를 개발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움
·최근 중국이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는 등 견제가 강화
9. 인삼
오랜 역사와 뛰어난 효능에 비해 수출실적은 기대에 못 미침
□ 한국 인삼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재배가공 기술, 약리효능 연구 등에서 세계 톱 수준
-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삼 종주국
□ 뛰어난 명성에 비해서 수출은 연간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함
- 인삼 수출은 90년 1억 6,500만 달러에 달했으나, 이후 매년 감소하여 2000년에는 7,900만 달러에 그쳤음
·96년까지 전매제로 묶여 있었고, 공기업인 인삼공사가 다양한 1, 2차 가공상품을 개발하지 않았던 것이 수출 위축의 요인
- 미국, 카나다 등에서 생산된 인삼이 저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
·국산 홍삼의 가격은 중국삼의 14배, 미국삼의 4배
·2004년 국내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어 내수까지 빼앗길 우려
전매제 폐지, 생산기반 확충 등으로 회생 기미가 보임
□ 97년 홍삼 전매제가 폐지된 이후 민간의 참여가 늘어나고 생산기반을 확충하기 시작
- 각종 법령 및 제도의 정비로 신제품 출시와 브랜드 경쟁이 자유화
- 기업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어 수출의 증가세 반전 기대
□ 인삼 효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수출시장이 급신장할 전망
- 인삼의 다이옥신 방어 효능이 증명되면서 수요가 급증
- 지난 10년간 세계 인삼시장은 물량 기준 5배, 금액은 2.4배 증가
□ 재배가공기술 혁신, 수출마케팅 고도화 등이 이루어진다면 회생의 가능성이 큼
- 한국의 전통 농산물이라는 상징성, 건강식품의 이미지가 강점
- 청정 신산지 개발 및 연작장해 해소로 우량 인삼의 생산면적을 확대
- 가공제품의 다양화, 수출시장 다변화, 수출 업체의 지원 등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