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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형님 전데요 -누구 -섣달 그믐 승길

전병노 |2007.02.15 10:30
조회 53 |추천 0

섣달 그믐날

 

-형님 전데요

-누구

-섣달 그믐 승길이유

-아이구 반갑다.그래 웬일이야

-낼 모레가 설 아니유,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하고 고향도

 볼겸 왔네유 

섣달 스무나흘날 (2월 11일 )점심때도 한참 지나

티브이를 한가롭게 보고있는 데 어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동생 친구 승길이는 전화를 하여 지금 바쁘냐고 한다.

 

옛 우리 마을은 변변한 정자나무하나 없는 허허로운 벌판에

초가집들만의 옹기종기 열다섯집이 모여 사는 마을 이였다

읍내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농장벌이라 불렀고,

일제 때 벌판에 비행기가 떨어져 비앵기 벌판이라고도 했고,

벌건 황토흙이 비만 조금 와도 발에 늘어붙어

검은 고무신이벗겨지고,종내는 검정고무신을  들고

바짓단을종아리가 다드러나도록 올려야 했다.

검은 색의 티티한 바지엔 언제나 빛바랜 황토색이 지워지지않아

 우리마을 사람임을 사람많은 약장사속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 사는 마을 이라고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방석에 앉아 생전 햇빛 한번 못 본듯한 왼손

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다른손엔 불붙힌 담배가 연기를 피어내고 있다

옆엔 키가 훌쩍하고 눈이 작고 머리숱이 노오란  청년이

앉아있다가

-애,이아비가 젤 좋아하는 고향 선배님이시다 인사드려라

승길이 말이 떨어지자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한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면 누가 방석을 빼앗아갈까

 

-형님 이게 광어요 가지미요

상위엔 이미 젓가락이 오간 듯한 회접시가 놓여있는데

젓가락으로 생선의 눈을 가르키며

- 눈이 왼쪽에 있는 놈이

광어인가 가지미인가 모르겠네 

마치 나에게 광어인지 가자미인지를  알려 달라는 듯이

술잔 권 할 생각 보다 주문한 생선이 제대로 들어왔는지가

궁금한가보다

 

안양으로 이사 가서 70년대 부터 80년대까지

마을마다 띁고 부수는 새마을 운동 덕분에

철물첨을 하여 많은 돈을 모았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몇년에 한번씩 스쳐지나듯 만나곤 했지만

마주앉아 밥을 먹거나 술자리를 함께 한적은 없다

 

-형님 이 애가 지금 딱 스뭉일곱인디 안양에 김밥집을 두개나

오픈 했다우,올해 초겨울에 장가도 들고,형님 한데 폐될까

연락도 안 했네유

 

음력으로 세월감을 말하는 승길이의

긴눈썹이 나이들어감을 나태내고 있다 

 

삼십 전에   김빕집을 두개나 갔고있는 바쁜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찾을 걸 보면 착한 아들이

틀림없거나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운전기사로 데리고 왔시유

-형님, 난 형님이 판검사나 아님 경찰이라도 될 줄 알았시유

스장유, 스장(경찰署長),아님 형사라도

권하던 술잔을 이젠 혼자 따라마시며

아직도 시골 아이들 가르쳐 먹고 사는냐고 묻는다.

 

-형님 내가 왜 섣달 그믐인줄 알지유

-그래 알지,잘 알 알지

-형님,어려을 땐 무학 죄고 크니까 ,크니까 무전이 죄유,

-형님 참외 서리한번 하고,섣달 그믐에 나왔잖유.

칠팔월 참외 한개 따먹고. 쓰벌

피우던 담배를 상위에 비벼끄고 흰눈꼽이 드러난 눈꼬리를

바짝 당겨 그때 억울함을 잘 들어야 할것 같은 의무가

나에겐 있다는 듯이 바짝 마른 턱을 당겨  쳐다본다

-알아 우리동네 사람들 알아도 너무 잘 알잖아 

 

읍내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하는 천 씨는 볼 때마다  생선 비늘

묻은 앞치마를 두른 부인에게 둔하다고

생선 뒤집는 깔꾸리를 들어 생선 비린내를 뿌리곤 했다.

내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시장에 나서면 사람들로

발 드틸 틈도 없이 인파로 떼밀려 다닌 곤 했다

시장은 언제나 북적였고,약장사의 북소리엔 만병을 다스리는

소리가 울려 가난한 농부의 호주머니에서 저녁때 사갈 자반

한 마리값이라도 덜어내려 애를 썼다

아침 일찍 감자,고구마 몇알 ,닭 한 마리,수수비몇자루 ,

지게에 장작 몇단,보릿쌀 몇되 

아님 빈손으로 장구경 가는 날, 닷세째 마다,축제였으리라

돼지 새끼라도 한마리 안고가면 신작로 길이 좁아 보였으리라 

 

생선가계 천씨는  농장벌에 남은 생을 산다고  육십가까이

농장벌 머리맏에 집을 짓고 밭에는 참외를 심었다

나보다 한 서너살은 더 먹어보이는

외아들을 앞 세우고 가끔 새로지은 집을 찾곤 햇다

해를 넘기면 생선 가계를 처분하고 이사하기로 하고 빈집 같은

새집에 들러 가난한 딸 시집 들러보듯 힝하니 가버린곤 했다

 

새집이지만 주인이 살지않는 집주위에 심어놓은  참외를 동네 아이들이

그냥 둘리있겠는가 

수수목단이 푸른 고개를 들기도전

참외꼭지엔 단물이 배기전 부터

동네 아이들은 자기네 밭인양 들락 거리며

시시때대 참외를 마음놓고 따먹고는  했겠지

주인없다 싶은 참외밭에 조심성은 이미없이 참외밭을 들랑거리다

붙잡힌 아이들 

단 한번 뿐이였다고 천씨에게 울며불며 용서 해 달라고

매달린 동네 칠명의 서리꾼(?) 아이들과 부모들.

동네 어른들은 지서에 끌려가고, 郡 경찰서에서 법원이 있는 옆 군으로

칠명의 아이들이  옮겨 갈 때는 마을 반장, 이장 뿐 아니라

줄을 댈수 있는 데 까지 댄 모양인데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학생 두명씩은 각각 빠지고

학교 못다닌 세명이 붙합혀 들어갔다.

학교 다니는 네명의 집에서 보상아닌 보상을 하기로 햇는데

그것고 여의치않아 안들어간 집과 들어간집이

반목하고, 마을 갈등이 나타났다 

참외철에  끌려간 아이들은 섣달 하고도 그믐날에

찬바람이 홑바지를 매섭게 훌터내릴때 나왔다.

 

섣달그믐날 설빔을 마련 했을까

설빔이라야 검정 바지저고리에 검정신이 다인 시대였는데

조상을 모신다고 생선도막에,

술도가 몰래 좁쌀술이라도 빚었을까

동네에서 잡는 돼지살 반근이라도 들였을까

 

상놈도 나이로 한몫 하던 구시대는 去하고 바야흐로

자조자립근면의  신시대가 來 한 시대였다

 

 자기동네로 이사 온다고 반가워 자반고등어 한마리를 사도

 천씨네 가게에서  살쓸 동네 어른들의 힘없는 빈가슴에

얼마나 멍들었을까, 한이되었을까

 

60년대 후반 근대화의물결은 비리를 척결 해야하는 시대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 났으니

작은 부정과 작은비리를 용서 해서는 안되는 시대의 사명감이

요원의 불길 처럼 퍼지길 강조하던 시대였다

 참외값을 다 쳐서 줄테니 아이들 나오게 해 달라

손발 모아 빌었을 칠팔명의 아이 부모뿐 아니라

동네 모든 분들의 애태움은

서울 중앙 모신문 지방 주재원기자-지방기자-를

사위로 둔 천씨의 고집인지,사위의 고집인지  아이들은

섣닫그믐에 (경찰서유치장인지, 감옥소인지)

집에 돌아왔는데 집보다  천씨네 빈집을 돌았단다

빈집에 힘없는 종주먹을 내둘르고 눈물을 뿌리며

부모의 힘없는 ,동네분들이 힘없음에 얼마나 어린 가슴을

태웠을까.한을 심었을까

나는 참외사건 나기 두해전에 객지에 나가 공부하는 동네 유사이래

첫 고교 모자를 쓰는 학생이였는 데 

동네 분들은 자기들의 원을 들어줄 만한 마을 기둥으로  보았고,

아버자와 어머니는 낡은 옷에도 객지에 나가 공부

하는 아들이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성님 그 천씨 아들 오토바이 사고 나서 죽었을 때

나 박수 쳤시유

-에이사람

-아뉴, 나 천씨 죽었을 때도 박수첬시유

참외서리사건이 이삼년 지났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집에서 빈둥대던 

천씨 외아들은 오토바이사고로 죽고,천씨도 술병인지,애태움인지  아들죽고

서너달 있다 저 세상사람이 되었다

-성님 조기장사 그 빙신 기자 생각나지유

천씨 사위 생각 나느냐고 묻는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약간 저는 천씨 사위를 소문은 많이들었지만 본적은 없다. 

-성님 ,사람은 유 멀쩡해야되유,

그래야 멍쩡한 생각을 한다니까유

-에이사람 그런 말이 어디있나,그만 일어서지  

--성님 그게 안유,  섣달 그믐에 나온 게 누구

 때문인줄 아슈.조기장사 그놈 사위 때문였유

조기장사는 다리를 약간 저는 사람을 그리 불렀다

-나 ,지금 밭떼기로 참외 살  수 있슈,그치만 참외먹어본지

근 사십년 되네유

 

오랫만에 고향에 들런 섣달그믐 승길이는

길가에 가래침을 탁 하고 내 뱃고는  

-성님, 안양에 꼭 한번 놀러와유, 제가 근사한데 모실께유

마셔도마셔도 취하지 않고 트림 한번 안나는 술도 있시유

하며  새끼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가기만 하면 맘좋고 실없는 과댁이라도 선 뵈려는지

새끼손가락을 까닥 거리기 까지 한다

밥값을  안낸 것이  미안 한지 굳은 약속을 한다

검은 다이너스에 비척거리는  마른 몸을 아들의 부축으로

던져지듯 타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 버린다.

 

아들이 화장실에 간다고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기 전

-글쎄 저  아들 놈이 조기장사 사위놈의 딸, 그것도

연상의 여자와  결혼했다우

서울 공장에서 만난 연놈들이 고향사람들이라고

-인연 ,그것 참 무서운 것 입띠다

속삭이듯 말 할듯 여전히  턱을 당겨 말 하지만 작은 식당을 울린다.

-성님 글쎄 저녀석이 고향 끈나플인 상여집 아래 구렛논 네마지기

논마저 김밥집 늘려야한다고 해서 오늘 계약 했시다 

이젠 고향에 올 이유가 점점 멀어지고 참 그러네요

 

 

다시는 애비고향에 올일은 없다는듯이 흰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검은세단에 그래 누가 뭐라든 건강하게 살아라 

쌀쌀한 날씨에 맨손을 흔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

나자신에 손을 흔드느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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