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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훈의 "Corea Focus"]한반도 비핵화의 입구는 마련되었나?

윤지훈 |2007.02.15 18:49
조회 38 |추천 0

“달걀이 부화하기 전까진 병아리를 세지 말라”

이번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6자회담의 앞날을 두고 한 이야기이다. 다자회담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협상 과정이라는 것을 압축적으로 설명한 비유일 것이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가 방북하여 고농축우라늄(HEU) 의혹 제기 이후 4년 4개월,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17개월, 그리고 작년 10월 북의 핵시험 이후 130여일이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와 ‘대북지원 부담의 분담에 관한 합의 의사록’을 채택하며 ‘말 대 말’의 선언에서 ‘행동 대 행동’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회담의 핵심적인 내용


총 7개항으로 이루어진 이번 성명에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상호 조율된 초기 조치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성명의 핵심적인 내용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 사찰 요원의 검증 절차를 수용하면, 다른 참가국들은 최대 중유 100만 톤으로 환산되는 북에 대한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북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기로 했으며, 6자회담 산하에 5개의 실무그룹(한반도 비핵화, 대북 에너지 경제 협력,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을 구성하여 해당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한편 이번 성명에서 초기 조치의 이행 기간을 60일로 설정하고, 5개의 실무그룹 회의 개시를 30일 이내로 하기로 한 점 등은 회담 참가국들이 실질적인 행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 외에 이번 성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초기 조치 직후 6개국 외교장관 회담의 개최 합의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직접 관련 당사국의 별도의 포럼 재확인, 그리고 6자회담 최초로 차기 6자회담의 날짜를 확정한 점 등이다.


각국의 손익계산


이번 회담에 대해 내외신 보도와 관련국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환영성명을 발표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참여국들의 공동약속”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고, 중국도 자국의 중재로 6자회담의 모멘텀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분위기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지원에 대한 균등 부담 원칙을 관철시키고 이번 회담 타결의 결정적 산파역을 했다며 자축하였고, 러시아 또한 대북 부채 탕감 약속 등으로 회담의 분위기를 만들며 ‘동북아 평화 안보 체제’ 실무 그룹 의장국을 맡은 것에 대해서 한껏 고무된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 없인 대북지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여 회담 참가국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번 초기 조치에서 일본은 에너지 지원 의무를 포기하여 향후 6자회담에서의 발언권 약화가 예상된다.


합의문 해석에서의 논란


한편 이번 2.13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일각에서는 합의문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불능화(disabling)’의 범위와 시점에 대한 문제, 이미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이 의혹으로 제기한 고농축우라늄(HEU)에 대한 처리 문제, 납치 문제로 악화되어 있는 북일 관계 문제, 대북 에너지 지원의 비용 분담 문제 등은 언제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다.


당장 북한은 13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6자회담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회담에서 각 측은 조선의 핵 시설 가동 ‘임시 중지’와 관련해 중유 100만 톤에 해당하는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합의문에 대한 온도차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북미 관계 정상화


언론에서는 이번 회담의 포커스를 ‘동결(freeze)’, ‘폐쇄(shut down)’, ‘불능화(disabling)’ 등 전문 용어를 동원하며 북핵 폐기 ‘범위’와 그에 따라 북한이 받게 되는 경제적 이득 문제에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의 본질을 비켜가는 현상적인 분석과 전망이다.

 

사실 이번 회담은 ‘동결(freeze)’과 중유 50만 톤 제공을 약속했던 94년 북미기본합의의 변형에 불과하다. 미국은 94년 북미기본합의가 실패한 합의라는 인식 하에 이번 2.13 합의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며, 북한에 엄격한 의무 상황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회담 참가 주체, 시기, 지원 내용 등에 차이가 있지만 13년이 지난 2007년 북한의 핵시험과 핵무기 보유상황을 대입시킨다면 별다른 외교적 진전 없이 94년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의지를 공식적으로는 표명하고 있으며, 그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인식에서는 94년 북미기본합의, 2000년 조미공동선언 등 북미관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합의 들이 있었지만 ‘정권’과 ‘정책’의 변화 등으로 언제든지 합의가 무효화 될 수 있기 때문에 합의문을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미국의 조치들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 해결이나 테러지원국 삭제 요구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정책 전환 의지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점으로 이것들을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2.13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2항 세 번째에 있는 ‘전면적인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 개시’ 약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북핵 폐기나 에너지 지원, 동북아 평화 안보체제 등은 진전될 수 없는 의제들이다.


크게 주고 크게 받자


다행히도 미국이 6자회담 진전을 통한 북미관계 개선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향후 북미관계 개선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중간 선거 패배와 이란과 이라크 문제 등으로 외교적 위기에 있는 미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큰 외교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북한 문제를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해결하고 싶어한다. 북한 또한 이번 2.13 합의를 통해 기존의 자세보다 한 단계 진전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행동’의 출발점이 결정되었다면 결과를 원숙하게 이끌기 위한 더욱 과감한 상호 조치들이 필요한 때이다. 우선 5개 실무그룹 회의가 개최될 시점인 3월 중순에 예정되어 있는 한.미 전시증원연습(RSOI) 훈련을 일시 연기 중지하거나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회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질적인 관계 변화를 위한 중대한 회담을 앞두고 한 쪽에서는 ‘적’을 상정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한다면 북한을 자극할 수 있고, 회담에 대한 진실성을 의심 받을 수 있다.


또한 관계 정상화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도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2000년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국교 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북미관계의 복원을 의미하며, 북한에게는 미국의 관계 정상화 의지를 확실하게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 또한 이번 회담에서 합의한 초기조치를 성실히 수행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상응조치를 취해 나갈 필요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정상회담 추진하자


‘2.13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 조치들이 합의됨에 따라 남북관계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6자회담의 출구가 보이면 남북관계 복원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다. 우선 중단된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함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여 예정되어 있었던 철도연결, 경추위 회담 등을 재개해야 한다. 개성공단 추가 분양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이다. 국내 정치 상황과 임기 말이라는 노대통령의 한계가 존재하나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가 고려되지 않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6자회담이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6자회담과 남북관계는 동시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최고위급이 만나 정치적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항들이 산적해있다. 남측의 정권 교체 유무를 떠나 민족적 입장에서, 미래의 통일과 통합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현 시기 남북정상회담은 필요하다. 미국의 입장 변화와 맞물려 중국 등 제 3국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선언’을 동시에 진행하는 창조적 발상도 필요한 때이다.


이번 2.13 공동성명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질서 안정’을 위한 긴 터널의 입구는 마련된 셈이다. 최종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성과를 얻기 위한 과정에 대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이번 성명이 나오기도 전에 대표적 ‘네오콘’ 가운데 한 명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부시 대통령이 6자회담 합의사항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된 내용을 쉽게 깰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 힘은 남북한 칠천만 민중의 단호한 평화에 대한 의지에서 나올 것이다. 지난했던 북미 갈등을 종식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실현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2월 14일)

 

윤지훈  hangil2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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