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의학) Gustav Klimt
Composition project for the University painting , 1897 ~1898.
Oil on canvas, 72 x 55 cm
(*도판출처 : klimt -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
사람은 요사스런 말을 사용할 줄 하는 능력 때문에 동물과 달라 보인다.
말이란 원래부터 요사스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세치 혓바닥'탓으로 돌리다가도
또 어떤 때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등 말을 제법 신중히 모시는 척한다.
'골치 아픈 사람'이란 말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보통 사람들한테는 주변에 있는 '골치 덩어리' 같은 녀석이 우선 떠오르겠지만
신경정신과 의사한테는 두통 앓는 환자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골 때리는 녀석들'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에는 꼭 한둘씩 끼여 있기 마련이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골치 아픈 환자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
우선 두통의 원인을 밝혀내기가 무척 어렵다.
뇌파 검사에다 또 요즘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컴퓨터 촬영까지 다 해봐도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 그때가 더 큰 문제다. 그 비싼 검사까지 다 해보고도 잘 모르겠다는 말하기가 미안하고, 또 머리에 이상이 없다고 말씀드릴 때 몹시 실망하는 환자의 모습을 대해도 민망스럽다.
이래저래 돈 벌려고 쓸데없는 검사를 해댄 것 같은 의사에게 불평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검사만 해달라고 환자를 원망하는 것인지 잘 알 순 없지만, 아무튼 불만이 가득 찬 가족 앞에서 양심을 팔아넘긴 죄인처럼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요즘 의사들의 입장이다. 어떤 가족은 쓸데없는 돈만 퍼들였다며 다짜고짜 괴로워하는 환자를 데리고 불쑥 퇴원해버린다. 집에 돌아가서 구박이나 받지 말아야 할 텐데. 그래서 골치 아픈 환자는 가족한테도 의사한테도 골치 덩어리다.
그렇다면 두통 환자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고 주위로부터 미움까지 받아 더욱 서럽다.
우리는 누군가를 '주는 것 없이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기브 앤드 테이크'다.
말로 주고 되로 받든 되로 주고 말로 받든, 아무튼 미움이란 감정은 서로 오가는 나쁜 정이다.
미운 짓 하니까 미움 받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운 짓 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화나게 만든다. 상대를 화나게 했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한 셈이다. 상대를 미워했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역동 정신 의학에서는 두통이란 말 뜻을 증오심 또는 적개심으로 푼다.
특히나 머리 한쪽함 패는 편두통일 때, 그런 미운 감정이 더욱 또렷하다.
다만 누굴 왜 미워하는지 알지 못할 뿐이다. 오히려 자신한테 그처럼 커다란 미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인정할 수가 없다. 이럴 땐 설명만으로는 치료가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미움의 근원이 됐던 맨 처음의 경험을 불러내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고는 근래에
미운정이 일어났던 인간 관계를 짚어내고 그를 통해서 옛날의 그 억울했던 감정을 다시 씻어내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머리쪽에다 미운 감정을 옮겨놨을까? 그 비밀을 풀어보자.
'머리'는 우리의 신체 부위의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두머리라는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제일 높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프다고 호소할 때면 도와달라는 요청도 그만큼 간절한 셈이다. 더구나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란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딘가 아파야 겨우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다. 그나마 몸이라도 아파야 부모의 사랑을 꺼내올 수 있는 열쇠 구실을 한다. 어린애들이 한 번 아프고나면 어리광이 더욱 늘어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파야 겨우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부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들이 신체화 장애를 더 자주, 더 쉽게 앓는 것 같다.
몸이 아파오면 괴롭다.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자기 학대인 셈이다.
오죽하면 그런 식으로라도 호소하게 될까.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병이 우울증이다.
그러니까 우울증 환자는 두통 말고도 온몸 구석구석에 고통을 느낀다.
그런 식의 고통을 '삭신이 쑤신다.'고 말한다. 우리 어머님들께선 '뇌신'이란 약을 밥 먹듯이 먹어 습관성이 생겨버리기도 했다.
몇 년 전 연변에 갔을 때, 이아무개 교수님이 그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도 약물 중둑이 많다는 비밀일 살짝 알려주었지만, 처음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동포 아주머니들이 아침마다 진통제 몇 알씩을 삼켜야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통을 앓는 사람들에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약국이다. 텔레비젼 광고가 걸어놓은 최면 덕분에 아예 약물 이름까지 줄줄 외우고 다닌다. 오래 되고 심한 환자들 가운데에는 안 먹어본 진통제가 없다시피 골고루 먹어봤다. 새로운 약을 찾아 다니는 것을 당연하다. 진통제의 특성이 처음엔 잘 듣다가 곧장 약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는 골치가 아파야 한다. 그때는 약물이 필요하다.
감기 걸렸을 때도 그 감기가 나갈 때까지 해열진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골치 아픈 일을 다 해결했는데도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다든지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까닭없이 골치가 아프다면 약물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우울증이라면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가 우울증 치료약인 항우울제일 테니까.
물론 머리 속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혹시라도 머리 속이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백약이 무효다. 의사의 말도 약효도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의 뇌파 검사나 뇌 컴퓨터 촬영은 진단 목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적인 효과도 함께 노리고 있다. 정말 어떤 아주머니는 뇌파 검사를 하고나서 시원한 물로 머리를 감았는데 벌써 머리 속이 시원해지더라고 했다. 더구나 검사하게 전에 의사가 뇌파 검사에 별 이상이 없을 거라는 말을 미리
해주고 검사 결과를 함께 보면서 "역시 이상없군요!"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면 그만큼 의사에 대한 믿음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두통이란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가 괴로워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결과로 생긴다.
그러나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은 미운 감정을 녹여내면서 고운 정이 깃들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게 치료다.
진통제는 치료될 때까지만 잠시 필요할 뿐이다.